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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의 향기를 맡으며! 이베리아 완전 일주-5

아름답지만~ 2014. 2. 13. 13:47

 

5) 1월14일: 모닝콜 기상(04시30분)-<러시아워를 피해 서두른 관광/길가에 이어지는 성벽은 국왕이 거처하는 왕궁이라는데 엄청 큰 면적을 차지하는 듯>-모하메드 5세광장(06시33분~39분)-핫산 메스키나(06시47분~07시04분)-<차창투어: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나왔던 릭스카페>-휴게소(07시44분~08시)-A3-라바트(08시28분~09시12분)-A2-페즈(12시14분~14시13분)<왕궁, 메디나 및 옛거리>-되돌아-A2-A1-휴게소(18시10분~42분)-A1-탕헤르숙소<Chellah Hotel>(19시57분~<호텔식 저녁>)

✍ 버스를 경비가 밤사이 지키고 있어 수없이 몰려 다니는 밀입국을 시도하는 청소년들을 쫓기위한 노력을 하고 있었으며, 그로인해 밤에는 방콕, 이른아침 나가서도 목격할 수 있었던 곳이다.

                               휴게소 옆의 작물밭이 묵은 듯하고, 휴게소의 새벽은 황량<07시46분>

                         고속도로를 횡단하는 휴게소간 다리가 거창하고, 길가의 주택은 유럽적이라 해야 할 듯

                             하산탑과 돌기둥을 배경삼아 인증하고, 길가의 농가는 평화로워 보이고~

※] 카사블랑카(Casablanca)는 수도 라바트 남서쪽의 대서양 연안에 있는 모로코 최대의 도시로 15세기 이 도시를 건설한 포루투갈인이 이름 붙인 ‘하얀집’이라는 뜻이다. 1907년 프랑스의 점령 이후 모나코 제1의 항구로 급속히 성장했었다.

                      채광이 약한 시간의 영상은 빈약한데다가 불꺼진 뒤의 미나렛(06시57분)은

✍ 모하메드 5세 광장(Place Mohammed Ⅴ)은 카사블랑카 시내 중심지에 있으며, 이곳이 도로의 중심이 되어 여러 지역으로 향하는 도로가 시작된다. 광장 주위에는 프랑스 점령시에 지어진 이슬람 양식의 건물이 법원과 시청사로 쓰이고 있다.

모하메드 5세는 1912년 프랑스의 식민통치에 항거하여 투쟁하였으며, 1956년 모로코를 독립시키고 국왕으로 올랐다가 1961년 죽었고, 국민들로부터 국부로 추앙받는 현 국왕의 조부이다.

                     모하메드 5세 광장은 새벽 6시반 정도의 방문이라 빈약한 1장의 사진만 건짐

✍ 하산 메스키나(Hassan Mesquina)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메카 및 메디나의 모스크에 이어 세계 3번째로 큰 모스크이다. 현 국왕의 아버지인 하산 2세 국왕이 국민의 성금을 모아 1980년부터 시작해 당신의 60세 생일에 맞추어서 1989년의 완공을 목표했으나 4년이 지난 1993년에 완공하였다. 규모나 실내 장식면에서 세계 제일의 회교성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대서양으로 불쑥 튀어나온 갑곶에 바다를 일부 매립하여 건축하였으며, 약 6,000평 대지위에 25,000명이 동시에 예배를 볼 수 있는 규모이며 미나렛(기도시간을 알리는 탑)의 높이가 200m로 세계 모스크 중 가장 높은 건물이며, 60층 높이에서 메카를 향해 레이저를 쏘는데 약 30km까지 빛이 직진한다고 한다. 미나렛에서 아잔(Azzan)이 울리면 알라 아크바르(Allah akbar,신은 위대하다)를 암송한다. 이른 새벽의 방문은 디카로 담기에는 빛이 부족했지만 수많은 장인들의 피와 땀의 산물임을 알 수 있었다.

※] 라바트(Rabat:Ribāt)는 12세기 군을 주둔시키기 위한 병영(ribat)로, 그후 라바트알바트(‘승리의 병영’이라는 뜻)라 이름했던 것이 지금의 지명이 되었다. 1609년 이후 통합된 라바트-살레 지역은 스페인에서 쫓겨난 안달루시아의 무어인들이 많이 들어와 본거지가 되었으며, 프랑스의 점령 당시 라바트는 행정수도로, 모로코가 독립되자 살레시와 함께 주로 지정되었다. 지금도 해안 근처에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옛 도시가 남아 있으며 그 안에 ‘메디나’(medina:고대 이슬람 도시)와 ‘밀라’(millah:유대인 지역)가 있다. 옛 도시의 남동쪽에는 12세기에 웅장한 뾰죽탑인 하산 탑과 아부유수프 야쿠브알만수르 사원(완성되지 않았음)의 유적 등 뛰어난 건축물이 많이 있다.

✍ 모하메드 5세의 영묘(Muhammed Ⅴ Mausoleum)는 국왕이었던 모하메드 5세의 사망을 애도하여 지어진 전통 아랍 양식과 현대건축을 조화시켜 지은 건축물로 건물의 꼭대기 세 개의 구슬은 알라, 마호메드, 코란을 상징하며, 화려한 천장의 돔과 장방형으로 이루어진 내부는 화려하다. 지하에 는 중앙에 모하메드 5세, 위 왼쪽은 핫산 2세, 오른쪽은 물라이 압둘라(현 왕의 숙부)의 것이다.

 

 

 

 

✍ 하산탑(Tour Hassan)은 알모하드 왕조의 제3대 야콥 알만수르가 12세기 말경에 86m의 첨탑으로 세계 최대의 모스크를 만들 계획이었으나 건축을 시작한 왕이 죽음으로 중단되었다 하며, 한변의 폭 16m, 높이 44m라 하며 탑 앞의 광장에는 300여 개가 넘는 돌기둥이 남아 있는데 모스크를 짓다가 중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 탑은 성벽을 들어서면 왼쪽으로, 모하메드 5세 영묘 맞은 편에 우뚝 서 있다. 새볔의 방문은 콕 찍는 관광이지만 한국씩 번개불에 콩튀기 식으로 제격(?)이다.

※] 페즈(Fez:Fes)는 페즈강과 세부강의 합류점에 위치하며, 789년경 동쪽 제방에 809년경 서쪽 제방에 도시를 세우고 11세기 하나가 되어 이슬람 도시로 발전했다. 14세기 중엽 학문•상업의 중심지로서 전성기를 맞았고, 그 후로도 종교 중심지로서의 탁월성이 유지되어 왔다. 페즈는 옛 도시에 미로로 연결된 거주지와 상업지구와 왕궁을 끼고 형성된 성내 도시이자 큰 시장이 있는 곳으로 나누인다.

옛 도시는 성벽이 둘러싸고 있으며, 이 도시는 한번도 성벽이 무너진 적이 없다고 한다. 대신 거주민이 서남쪽으로 이동해 구릉지대에 퍼져 새 페즈의 북남쪽으로 원호모양을 이룬다.

                   페스의 후면으로 돌면 망자를 묻은 공동묘지와 왕궁의 뒤로 빠지는 길을 경유한다.

메디나는 수천년의 역사를 지닌 곳으로 고대도시의 형태가 온전히 남아 다닥다닥 붙은 가옥들 사이로 좁은 골목길이 9,400개로 복잡하게 얽혀 있어 최대의 미로로 꼽힌다. 이 도시에는 1350년대에 지어진 메데로사 부 이나니((Medersa Bou Lnania)신학대학<면적 15,000평>이 있으며, 세계 유일의 가죽제작을 위한 공장 슈아라 탄네리(Chouara Tannerie)는 모든 공정이 중세 이전부터의 가죽공정을 수작업으로 하고 있다. 공정방법은 석회와 비둘기 똥으로 무드질하고 15일 정도 통에 담근다. 그후 뒤집어주며 밟아준다. 염색재료는 자연에서 얻어지는 비둘기 똥, 소의 오줌, 재와 양귀비 샤프란등으로 린스한 후 옥상에서 말린후 가죽원단시장으로 보내진다.

             공예품을 만들고 있는 장인과 그의 제품들, 작게는 1개월 큰거는 3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단다.

✍페스를 수도로 했던 이드리스 2세(IdrissⅡ)는 메디나 중앙에 그의 무덤인 영묘가 있으나 이슬람의 신자가 아니면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단다.

                위는 아드리스 2세의 영묘가 있는 입구, 아래는 신학대학의 정문 하지만 문만 보고 돌아선다.

✍메디나의 집들 중 받침목으로 유지하는 집들은 유네스코에서 보수를 해 준다고 한다.

✍골목길 곳곳에 이슬람 사원이 어찌나 많은지 교직자는 어떻게 살까? 궁금했는데 따로 없단다. 모두가 교직자이고 그날의 집회에서 제일 웃어른이 집전한다고 한다.

                        우리를 안내했던 로칼 가이드의 집으로 드는 골목길과, 염색가공공장 입구 표시

            탕헤르는 다음 편으로 이어가겠습니다. 그리고 15일의 여행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