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공원(西湖公園) 주변 산책
우리가 어릴 적부터 부르던 서호의 본래 이름은 축만제(祝萬堤)이다. 1799년(정조 23)
내탕금 3만냥을 들여 농업용 저수지로 축조되었는데, 당시 축조된 제방(만석거,축만제,
만년제)중 서쪽에 있다고 하여 혹은 화성의 서쪽에 위치하여 흔히 ‘서호(西湖)’라고
불리었으며, 호수 가운데에 근세 들어 인공섬을 만들고 꽃과 나무를 심어놓았고, 예로부터
낙조(落照)와 잉어가 유명하였다고 한다. 또한 제방 서쪽에는 1831년(순조 31)에 건립된
항미정(杭眉亭)이 있어 서호의 경관과 풍치를 한층 아름답고 돋보이게 하고 있다.
아내와 첫 만남의 추억도 있던 곳이기도 한 곳이다.
1) 다녀온 날: 2017년 3월 3일 08시 55분~11시 55분
2) 다녀온 길: 집(08시 55분)-교구정사거리-농협-되돌아-운동장사거리-수성중사거리-
수원북문우체국-정자사거리-숙지공원삼거리-고양삼거리-화산지하차도-서호체육센터
(09시 50분)-서호꽃뫼공원-수원성교회 앞길-서호천(좌측)(10시 01분)-새싹교-좌측으로
서호 끼고 둘레길-항미정(10시 21분)-제방길-수변쉼터-수변무대-농민회관 출입구-서호공원
정문(10시 48분)-삼남길(모수길;서호천 따라)-도로(천천교)와 철로 지하길(11시 04분)-영화천
길(11시 17분)-만석거 운동장(11시31분)-집(11시 55분) [ 걷고 쉬고 화장실 가고 3시간 산책]
아래, 위는 서호체육센터 남쪽에 조성된 산책길 꽃뫼공원
수원 팔색길을 걷다
수원이 지닌 8(팔)의 긍정적 의미를 담아 수원 곳곳을 연결하며 수원의 역사•문화•자연을 느낄
수 있는 거리를 만들었다.
수원팔경(水原八景)[널리 알려진 수원의 빼어난 여덟 군데 절경]
팔달산(八達山)[수원의 주산(主山)이자 혈처(穴處)인 수원의 대표 상징 팔달산]
사통팔달(四通八達)[사방으로 통해있고 팔방으로 도달한다는 교통의 중심지 수원]
발가벗고 삼십리
[‘수원사람 발가벗고 삼십리 뛴다’는 말이 있다. 여기엔 아래와 같은 설화가 전햐진다.
우선 이 설화의 무대가 되는 곳은 지금의 화성시 병점동과 수원서호공원이다. 두 지역간의 거 리가
약 삼십리가 된다고 한다. 병점을 우리말로 풀면 떡전거리로 떡전거리에 살던 한 양반이 발가벗고 뛸
수밖에 없었던 사연은 이렇다.
옛날 수원 도성에서 30리쯤 떨어진 떡전거리에 살던 한 양반집 자손인 한 젊은이가 살고 있었다.
평소에 조상의 산소를 잘 관리하고, 부모님에게도 효성이 지극한 선비였다. 그러한 까닭에 고을에서는
비록 그의 부친이 일찍 세상을 떠나긴 했지만 ‘본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칭찬을 받아오던 터였다.
엄한 가풍으로 생활에 있어서도 절제를 하던 그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도 친구들의 권유에 못 이겨 기방 출입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수원부중(水原府中) 축만제(祝萬堤) 가의 행화촌(杏花村; 술집)에서 기생의 아리따운 자태에 취해
술을 마시다 보니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런데 잠결에 생각하니 그날이 선친의 제삿 날이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지 못할 불효를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다급한 마음 에 의관도 갖추지 못하고
뛰기 시작해 가까스로 자정을 넘기지 않고 집에 도착하여 아버지의 제사를 지낼 수 있었다.
선비된 자가 의관을 갖추지 못하고 뛰었으니 발가벗고 뛴 꼴이 된 것 이었다.
이 설화는 수원사람의 효성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by 수원문화원
3) 소회(素懷): 집에서 서호는 멀게만 느껴졌으나 도보를 해 봐야 개선의 여지를 탐색할
수 있을 것같아 지루하지만 대로를 따랐다. 신호대기를 지체하고 또 먼거리에서 오는 통증을
완화시키려는 노력으로 다소 지체될 수 밖에 없었다. 서호의 산책길은 우레탄이 깔리거나
흙길로 이어져 있어 해동기의 흙길이 다소 질었지만 발바닥에 미치는 감촉이 좋아서 운동의
효과가 클 것으로 생각되어 진다.
항미정(杭眉亭) 수원시 향토유적 제1호, 소재지: 수원시 권선구 수인로 126(서둔동)
순조(純祖) 31년(1831) 당시의 화성유수(華城留守) 박기수(朴綺壽)가 건립한 것이며,
그 이름은 중국시인 소동파(蘇東坡)의 시구(詩句)에 “서호(西湖)는 항주(杭州)의 미목(眉目)
같다”고 읊은데서 따 지었다고 한다.
항미정은 축만제(祝萬堤) 제방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축만제는 조선 정조(朝鮮 正祖) 23년
(1799) 농업용 저수지로 축조되었는데, 당시 축조된 제방(만석거,축만제,만년제) 중 서쪽에
위치 하고 있다하여 흔히 서호(西湖)로 불리고 있으며, 예부터 낙조와 잉어가 유명하였다 한다.
이러한 서호의 경관과 풍치를 한층 아름답고 돋보이게 하는 명물이 바로 항미정이다.
구조는 ㄴ자형 평면에 납도리집(기둥 위에 사각형 단면으로 된 도리를 얹어 꾸민 집)이고,
홑처마 목조건물로 면적은 43.5㎡이다. 수원시장
되돌아 오는 길은 삼남길로 이어지는 길을 택하며 은근히 걱정이 되었지만 수변길은
논스톱으로 편안스럽게 이어지고 한마루 사거리에서 영화천길로 들어서니 중부경찰서
앞 수변길은 긴 터널로 이어져 만석공원 제방 밑의 운동장과 연결된다.
오랜만에 맛 본 모수길의 일부인 삼남길을 걷고나니 수원천만을 다녀본 필자의 무지가
한심스러웠다. 한 시간의 운동이라면 모르지만 2시간~3시간의 운동에는 이 코스가 아주
좋은 코스란 것을 뒤늦게 알았다. 매우 기분 좋은 날이다.
경기도 삼남길 제④길 서호천길(지지대비~서호공원 입구)
[지지대비↔지지대쉼터↔이목2교↔해우재↔국립원예특작과학원↔여기산 앞↔서호공원 입구]
(거리: 7.1km, 소요시간: 2시간)
백로와 오리가 노니는 서호천을 따라 가는 길[서호천길은 골사그내를 지나 지지대고개에서 출발하여
서호공원 입구까지 이어지는 구간입니다. 지지대고개는 정조임금이 아버지가 잠들어 계신 현릉원을
찾았다가 돌아가는 걸음이 못내 아쉬워 자꾸 행차를 늦췄다는 이야기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 곳으로,
정조임금의 애틋한 효심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해우재는 지난 2007년 문을 연 화장실문화전시관으로 옛추억을 되새기며 화장실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곳입니다. 해우재를 지나 서호천변에 조성된 길을 따라 걷다보면 여기산에서 도심 속 대규모
백로서식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