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기 등

(1) 파주시(坡州市)-2

아름답지만~ 2017. 3. 29. 10:52

3. 임진각 주변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 480-1(임진각로 148-53)

1950년 6월25일 북한군의 무력 남침으로 발발한 전쟁에서 전 세계 16개국 젊은이들이

함께 피 흘려 싸웠습니다. 당시 1,300명의 파주시 참전용사, 파주지역 을 방어했던

1사단의 백선엽장군과 병사들, 해병대 1전투단이 목숨을 걸고 국가 를 수호했던 이곳에

6.25전쟁 참전기념비와 자유의 다리,미국군 참전기념비 등이 있으며, 수많은

실향민들의 염원이었던 상설제단이 1985년 건립되어 우리가 방문했던 날에도 연로한

부부가 정성스레 제물을 차리고 있었다. 또 김포국제공항 폭발사고 희생자 추모비도

있으며, 전국적인 붐이 일어난 걷는 길인 임진강 생태탐방로도 설치되어 있었다.

이 곳을 다녀간지도 꽤 오래되었으나 휴일이라고 다소는 불편했지만 구경에는 전혀

지장이 없는 곳이었다. 주차장에서 주차료를 징수하는 사람이 2,000원을 달란다.

경차인데 했더니 다시한번 쳐다보고 1,000원이라며 죄송하단다.

                                  위의 개성으로 이어지는 다리는 언제 제대로 운영될지?

                                                         통일의 횃불과 한미우호탑

☸자유의 다리 경기도 기념물 제162호, (안내글 인용)

임진각 광장 앞 망배단 뒤편에 놓인 다리로, 1953년 한국전쟁 포로 12,773명이 이 다리를

건너 귀환하였기 때문에 ‘자유의 다리’라고 명명하였다.

원래 경의선(京義線) 철교는 상•하행 2개의 다리가 있었으나 폭격으로 파괴되 어 다리의

기둥만 남아 있었는데 전쟁포로들을 통과시키기 위하여 서쪽 다리 기둥 위에 철교를

복구하고 그 남쪽 끝에 이 임시다리를 설치했다. 당시에는 포로들이 차량으로 경의선

철교까지 와서는 걸어서 이 다리를 건너 왔다고 한 다. 자유의 다리는 길이 83m 폭 4.5m

높이 8m 내외이다. 다리는 나무를 짜맞 추어 만들었는데 특히 힘을 많이 받는 부분은

철제를 혼합하여 사용하였다. 임 시로 설치한 다리이므로 건축적으로 뛰어난 점은 없으나

‘자유로의 귀환’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전쟁의 대표적

유산이라 할 수 있다.

☸김포국제공항 폭발사고 희생자추모비

동방의 빛이된 서울에서 아세아의 젊은이들이 ‘86아주대회 꽃밭을 수놓던 그때 위대한

자유민주주의 조국의 국력신장을 시샘하여 반평화적 집단은 1986년 9월 14일 우리

형제의 목숨을 빼앗았다. 애꿎게도 산화한 고운 임들이여 어머니의 향기 그윽한 흙속에

편히 쉬시라 우리는 임들의 고귀한 희생을 받들고 더욱 국운융성을 위하여 애쓸것을

다짐하며 이들을 그리는 애닲음이 젖은 돌을 여기 세 워 나라 사랑의 마음을 불꽃으로

새겨 기리노라 [산화하신 분: 김봉덕,옥금숙,옥건,김현주,유주환] (석비문 인용)

4. 파주 가월리(坡州 佳月里) 및 주월리(舟月里) 구석기유적(舊石器遺蹟)

사적 제389호, 소재지: 파주시 적성면 가월리 산95-6외/주월리 309외

이 유적은 1988년 처음 발견되었으며, 1993년에는 서울대학박물관에서 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한탄강과 임진강 일대에 널리 분포하고 있는 연천 전곡리•

남계리•파주 금파리 등의 구석기 유적에서 밝혀진 층위나 출토 유물 그리고

제작수법과 비슷한 점이 많아 이 지역의 구석기 시대 문화 성격이나 특성을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가월리•주월리 유적의 범위는 수천평이 넘는 대규모로 밝혀졌다. 출토유물은

대표적인 주먹도끼를 비롯하여 가로날도끼,찍개,여러면석기,톱니날석기 등

큰 석기가 대부분이지만 격지(큰돌에서 떨어져 나온 돌조각)로 만든 작은 석기도

발견되고 있다. 한편 이 유적의 연대는 열형광측정법으로 분석한 결과 4~5만 년

전으로 밝혀졌다. (안내글 인용)

네비가 안내하는 길이 논길로 이어지다가 덩그러니 울타리 쳐진 유적지, 풀과 어우러진

마치 묘자리 같은 흔적은 찾았던 우리를 허망케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되돌아 나오며

두지나루를 찾았으나 매운탕 집만이 있을뿐 못 찾고 화석정을 향했다.

5. 화석정(花石亭)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1호,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 산100-1

임진강가에 세워져 있는 정자로 조선 중기의 대학자 율곡 이이(栗谷 李珥;1536

~1584)가 제자들과 함께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던 곳이다. 세종 25년(1443) 율곡의

5대조인 이명신(李明晨)이 정자를 건립하였는데, 성종 9년(1478) 이이의 증조부

이의석이 중수하고 이숙함이 ‘화석정’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져 80여 년간 터만 남아 있다가 현종 14년(1673)에 후손들이 복원 하였으나

6.25전쟁 때 다시 소실되어 버리고 말았다. 1966년 파주의 유림들이 성금을 모아

다시 복원한 것으로 건축양식은 팔작지붕 겹처마에 초익공 형태로 조선시대 양식을 따랐다.

네비를 따라 입구 근처까지는 어려움이 없었으나 가까이서는 급유턴형 진입이라 다소

헷갈렸고, 군부대와 가까이 있는 화석정은 군부대의 ‘키 졸브’훈련으로 다소 어수선한

상태였으며, 어느 화공(畵工) 부부가 화석정을 담으려 준비하고 있었다.

다음의 계획은 적군묘지였으나 주소에 가까우면 쉽게 안내판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나 입구를 찾지 못하고 다음 행선지를 향하게 되었다.

                                                    파주시편을 마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