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기 등

제주 올레 5코스(구 8코스)-1

아름답지만~ 2017. 5. 8. 16:05

일출봉이 아스라이 보이는 남원포구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 산책로로 꼽히는

큰엉 경승지 산책길을 지나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쇠소깍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바당올레와

마을올레를 오감으로 느끼면서 걷는 길이다. 8코스 개척과정에서 남원읍과 해병대 93대대의

도움을 받아, 사라지고 묻혀지고 끊어진 바당올레 길 세 곳을 복원했다. 덕분에 난대 식물이

울창한 숲을 지나서 바다로 나아가는 특별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by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걷기여행’ 서명숙)

                                                                                             쇠소깍의 부분적인 모습

                                                                              올레길의 표지판과 하신로 끝 바닷가의 모습

                                                                       용암이 굳어질때의 형편에 따라 만들어지는 기암, 위미 1리의 원경

1) 다녀온 날: 2017년 4월 12일 수요일

2) 가는 길: 시외버스 정류장까지 걷는 길은 멀었다. 약 30여분 이상인듯 했다.

시외버스정류장은 종합운동장 근처에 있었다. 목적지를 남원포구로 하지 않고 되돌아 올

계산을 감안해 ‘하례리’에서 내리기로 하고 09시30분 출발하는 730번 버스를 탓다.

시외버스란 명칭은 제주시내만 해당하는 듯 수도없이 서고 가고를 반복해 1시간10분만에

두레빌라에서 내린다. 자료를 찾으니 40번 째 정류장이다.

                                                 하례리가 두레빌라 정류장에서 하차, 효돈천 따라가며 본 상류

쇠소깍까지는 약 1.3km, 마침 올레길을 돌고있다는 한 부인과 동행하여 쇠소깍까지

가게되어 따라가니 쇠소깍이다. 효돈천이 현무암으로 이뤄져 하천을 이루다가 양안이

거의 수직으로 깍여서 소(沼)를 이루며 물 색깔이 푸르둥둥 수심이 꽤 깊다는 표시를

주며, 자연의 무한한 능력을 새삼 감탄하게 한다.

                                                           쇠소깍 주위의 송림과 산책로, 송림 옆으로 도로

「제주 서귀포 쇠소깍 국가지정문화재명승제78호,서귀포시 쇠소깍로 128일원(하효동)2011. 6.30지정

효돈천 하구(깍)에서 솟아나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 깊은 웅덩이를 이루고 있어 ‘쇠소깍’이라고

불려진다. ‘쇠’란 효돈의 옛지명(효돈의 옛 지명은 쇠둔우둔<牛屯>에서 소<쇠,牛>와 소<沼>),

깍 은 제주어로 ‘하구’를 의미한다.

효돈천은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제182호 한라산천연보호구역으로도 지정(1966.10.12)되어 있다.

효돈천은 한라산 백록담 남벽과 서벽에서 발원하여 효돈해안에 이르는 대규모 하천이지만 계곡을 제외한

대부분은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으로, 오랜기간 하식작용을 통해 V자형 계곡인 쇠 소깍이 형성되었다.

하천지형은 약 40만년 전에 분출한 조면암질 용암류로 이루어져 있으며 해변 의 검은 모래는 상류의

현무암이 풍화작용을 거쳐 잘게 부서져 떠내려 와 쌓였기 때문이다.

전설에는 ‘이곳에 용이 살고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용소(龍沼)라고 불렀다’고 하며 가뭄이 들면 동네

주민들이 이곳에 모여 기우제를 올렸는데 반드시 효험이 있었다고 한다.」

3) 올레 5코스: 바닷가까지 내려서 구경하고 되돌아 쇠소깍 다리(11시37분)까지 되짚어

5코스를 역으로 잇기 위해 하례로 아스팔트를 7분여 걸으니 올레 안내판이 동리로 접어

들도록 안내한다. 이 동리길은 우측의 예촌망 망오름을 끼고 가다가 하신로로 연결되는

코스이며, 바닷가를 끼고 걷는 바다 멀리 지귀도가 눈에 들어온다. 이 지귀도는 꽤나

오랜시간 동안 바다 멀리 우리들 시야를 떠나지 않았다.

「남원포구-3km-큰엉 경승지 산책로-1.7km-신그물-1.7km-동백나무 군락지-1.8km-위미항

조배머들코지-1.5km-넙빌레-3km-공천포 검은모래사장-망장포구-2km-예촌망-효돈천-2km

-쇠소깍; 총 15km, 5~6시간」

바다를 끼고 돌다가 나무 숲길을 지나니 망장포란 안내판이 서 있고 조그마한 항구로

올레길은 방파제를 곧 지나고 검으스름한 바위가 깔린 곳을 지나며 쾌청한 날씨 때문에

한라산 정상이 맑게 보인다. 공천포구가 멀리 떨어진 바다를 낀 길 신례2리 석비를 지나며

남탕과 여탕을 구분지은 목욕탕(민물이 솟는 곳)을 지나고 뚜벅뚜벅 걷다보니 커다란

소나무가 버티고 선 곳을 지난다.

「마을의 자랑-‘망장포’ [고려조 말엽 제주도가 몽골의 직할지였을 당시 이 포구를 통하여 제주에서

세금이란 명목으로 거둬들인 물자와 말 등을 원나라로 수송했던 데서 연유한 이름으로 일제 강점기

「망장포(網張浦)」라고 바꿔 불렀는데, 구전에 의하면 이곳이 바닷가 마을로 그물을 많이 친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예전에 왜구의 침입이 잦으니 이곳에서 왜구의 동태를 살펴 봉화를 올리는

등 방어시설이 있었던데서 망장포(望場浦)라고 불렀다는 설도 있다.」

해안가 길은 하천을 끼고 ‘U’자형으로 도라선 곳에 고망물이 나오고 해녀상을 세운 아래

안내글에 고망물을 설명해 놓았는데 석판이 낡아서 완전한 해독은 아니지만 기록해 본다.

“고망물 [이 곳은 위미 선인들의 식수원이었던 ‘고망물’입니다. 한라산에서 발원하여 화산회토층이라는

천연적 엉과 엉을 거치면서 이곳에 이르러 용출한 고망물은 수질은 물론 물맛이 일품이어서 상수도가

개설되기 전까지 위미마을 주민들의 음용수로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1910년대 이곳에는 고망물을

이용하여 소주를 만들었던 소주공장이 있었습니다.“

하천을 지나서는 위미리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이곳서 다소 내륙쪽으로 들어선 듯 하다가

해안으로 나서니 조배머들코지의 기암들이 보이는 해안 가까이로 간듯 하다가 다시

내륙쪽으로 ‘U턴’해 내륙쪽으로 들아서게 되어 있었다.

「‘조배머들코지’ 비를 세우며 [한라산 정기흘러 넘쳐 태평양을 향하여 넘실대는 이곳

‘조배머들코지’는 그 장엄한 기상으로 하여 고향에 대한 사랑과 자존을 일깨우는 리민들의 정신적인

요람으로 자리하고 있다. 본래 이곳에는 높이가 70척이 넘는 거암괴석들이 비룡형(飛龍型) 또는

문필봉형(文筆峯型)들로 외연히 용립하고 있어서 설촌이래 마을의 번성과 인재의 출현을 기대하던

위미리민들의 신앙적 장소가 되어 왔다.

그러던 중 지금으로부터 약 일백년 전인 일제 치하때 일본인 풍수학자가 이 거석을 보고 한라산의

정기가 모아진 기암으로 하여 위미리에는 위대한 인물이 대를 이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 일본인은

당시 위미 1리에 거주하는 유력한 김씨 집을 찾아가서 저 기암거석이 이 집을 향하여 총을 겨누고 있는

형세로 가세를 누르고 있으니 가운을 떨치고 집안의 안녕을 도모 하려면 「조배머들코지」의 거석을

파괴해버려야 한다고 꼬였던 것이다. 일인풍수의 말에 속은 김 씨는 석공을 동원 이곳의 기암거석을

태반이나 폭파했는데 당시 거석 밑에는 바로 용이 되어 승천하려던 이무기가 붉은 피를 뿜으며

죽어 있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이 일이 화근이 되었는지 그 뒤 위미리에는 큰 인물이 나오지 않았고 장래가 촉망되는 인물이 나왔는가

하다가도 시름 시름 좌절하거나 단명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에 만시지탄이 있으나 1997년부터 위미리 개발협의회가 중심이 되어 남제주군에서 오천만원을 지원

받아 부근에 산재된 석편들을 정성스레 추슬러 비로소 지난 날의 ‘조배머들코지’를 복원하게 되었으나

이는 고향의 발전과 리민들의 안녕, 그리고 후손들의 번창을 바라는 간절한 기원의 발로 에 다름 아니다.

이에 우리 세대의 충정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이 비를 세운다.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이여! 그 이름에

 ‘조배머들코지’의 영광이 있으라 1998. 9 위미리 개발협의회

다소 내륙쪽이다 싶은 10여 분의 걸음은 배도 슬슬 고파왔고 걸음도 느려질 만 할때 위미

동백나무군락지가 나타나고 요기도 할 수 있는 식당이 나타나 정식을 주문해 메뉴가

나왔는데 돼지고기가 있기에 막걸리를 주문하니 위도땅콩막걸리가 있다고 해 먹었는데

맛이 싱거운 듯 우리의 입맛에는 별로였다.

「위미 동백나무 군락 유형/지정일: 도지정 기념물 39호/1982. 5. 8, 남원읍 위미리 904-3외

위미리 동백나무 숲은 황무지를 옥토로 가꾸기 위하여 끈질긴 집념과 피땀어린 정성을 쏟은 한 할머니의

얼이 깃든 유서깊은 곳이다. 17세 되던 해 이 마을로 시집 온 현병춘(玄秉椿;1858~1933)할머니가

해초 캐기와 품팔이 등 근면•검소한 생활로 어렵게 모은 돈 35냥으로 이 곳 황무지(속칭 버둑)를 사들인

후 모진 바람을 막기 위하여 한라산의 동백 씨앗을 따다가 이 곳에 뿌린 것이 오늘날에 이르러 기름진

땅과 울창한 숲을 이룬 것이다.」

                                                        2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