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기 등

대흥사 다녀오기-1

아름답지만~ 2019. 4. 10. 20:19

대흥사는 천안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 때 잠시 들렸던 추억 속의 대찰로만 기억하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이며 사찰 경내로 들어설 때 웬지는 모르지만 마음의

평온이 느껴지던 곳이다. 새벽의 사찰 방문은 매표소를 거치지 않는 편안함과 전날 늦게

도착해 사거리 이정표에 2.6km라는 이해가 접근하지 않는 점들도 알아야 된다는 생각을

하며, 좀 젊었을 때라면 하루쯤 등산도 하고픈 곳이다.

 

 

대흥사 종합안내[1.일주문(一柱門), 2.부도전(浮屠殿), 3.해탈문(解脫門), 4.종무소(宗務所),

5.동다실(東茶頌), 6.범종루(梵鐘樓), 7.심계루(沈溪樓), 8.백설당(白雪堂), 9.정행당(正行堂),

10.신해당(信解堂), 11.명부전(冥府殿), 12.대웅보전(大雄寶殿), 13.대향각(大香閣), 14.응진당

(應眞堂), 15.삼층석탑(三層石塔), 16.청운당(靑雲堂), 17.가허루(駕虛樓),18.봉향각(奉香閣),

19.천불전(千佛殿), 20.정진당(精進堂), 21.용화당(龍華堂), 22.관음전(觀音殿), 23.세심당

(洗心堂), 24.적묵당(寂黙堂), 25.일노향실(一爐香室), 27.동다송비(東茶頌碑),28.성보박물관

(聖寶博物館), 29.초의선사상(草衣禪師像), 30.호국문(護國門), 32.의중당(義重堂),33.예제문

(禮制門), 34.표충비각(表忠碑閣), 35.표충사(表忠祠), 37.강례제(講禮齊),38.명의제(明義齊),

39.문수전(文殊殿), 40.보현전(普賢殿), 42.만월당(滿月堂 ), 43.수심당(水心堂)

44.대광명전(大光明殿), 45.벽안당(碧眼堂)](위 사진의 번호가 안보이는 아쉬움)

 

 

 

 

 

부도전(浮屠殿)

부도(浮屠)는 스님의 사리를 봉안한 곳으로 팔각원당형 혹은 종형 등이 있으며, 절 경내에 있는

불탑이 부처님의 사리나 불상 경전 등을 보관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리고 탑비는 비문을 돌에

새겨 부도 근처에 세운다. 그래서 흔히 부도전에는 부도와 탑비가 함께 건립되어 있다. 이곳

부도전에는 부도 56기와 탑비 17기가 모셔져 있는데 생몰년이 확인되는 것은 모두 조선후기

스님의 부도와 탑비이다. 서산대사를 비롯하여 역대 종사(宗師)와 강사(講師)들의 부도와

탑비가 봉안되어 있다.

1. 다녀온 날: 2019년 3월 25일

2. 구경하기: 전날의 과음으로 머리가 띵한 상태에서 일찍 세면 등을 마치고 동생들에게

걷는데까지 걷다가 타겠다고 어둠이 깔린 길을 나섰다. 사거리 이정표를 뒤로 하고

금당천 옆 목재 데크길을 따르며 무료함을 달래라고인지 군데군데 많은 홍보판이 붙어

있어 담으며 걸었다. 어둠 속 맨처음 일주문을 지나고 탱화장 안내판을 지나며 걸었다.

 

 

 

 

 

 

 

 

 

 

그렇게 걸어 25분이 지나서 차를 만나서 타고 잠시후 주차장에 닿았다. 숲길을 걸으며

색다른 기억 속에서 유선여관을 스치며 꽤 많이 정화시킨 사찰의 입구가 추억 속에서

살아나기 시작했으나 낡은 필름을 잇는 정도로 다리를 건너 일주문을 지나고 부도전을

지나니 넓은 분지에 자리한 대흥사의 거대한 건물군이 나타난다.

 

 

 

 

우리는 거대한 초의선사상을 향하여 표충사구역을 돌아 문수전과 삼층석탑을 지나

만월당과 응신전을 뒤로 했다. 사찰내의 표충사는 처음 보는 듯 했는데 대흥사의 격이

높아진 서산대사 등을 모신 구역이었다. 이 코스는 건물군 속이 아닌 남원구역에서

외곽으로 북원구역으로 향하며 가허루와 연리근을 만났다.

 

 

표충사구역(表忠祠區域)

표충사는 서산대사 휴정(休靜,1520~1604)스님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사당으로서 조선시대 대흥사의

위상을 짐작하게 해준다. 대흥사는 임진왜란 이후 서산대사의 의발(衣鉢)이 전해지고 그 법맥을

이어왔기 때문에 선(禪)과 교(敎)의 종원(宗院)으로서 자부하였다. 이에 1788년에 사액사우(賜額祠宇)의

건립을 추진하여 표충사로 지정되었고 정조대왕이 직접 쓴 ‘표충사(表忠祠)’ 편액이 내려졌다. 호국문과

예제문을 지나가면 표충사와 표충비각이 있다. 현재의 건물은 대부분 1836년에 다른 곳으로

이건되었다가 1860년 10월에 다시 현재의 자리로 옮겨 지은 것이다.

1.표충사(表忠祠),2.표충비각(表忠碑閣),3.보련각(普蓮閣),4.의중당(義重堂),5.조사전(祖師殿),

6.호국문(護國門),7.예제문(禮制門)

 

 

 

 

                                                      2부로 이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