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기 등

파주여행 (2020.06.10.)-1

아름답지만~ 2020. 6. 14. 13:03

2017년 파주를 아내와 둘이서 여행한 곳 중, 방문한 날이 월요일이라 휴관일로 못본 반구정인데 다른 연유로 이곳을 방문하자는 제안에 서둘러 계획을 짜 봤으나 수원서 가기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지나야 하는 서울외곽순환도로의 정체, 특히 송내에서 계양 구간은 몇 년이 지나도 해결책 없이 감내해야만 되는 길이다. 두 집은 승용차로 내달렸으나 길에서 지체됨을 감수하며 안내판에 전방 사고를 수습했지만 정체되는 맨트를 보면서 갈 수 밖에 없었다.

호로고루 홍보관과 호로고루 동벽 사이의 보리밭

2시간20여 분만에 연천의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릉(연천군 장남면 장남로 288)에 도착해 생뚱맞은 장소에 신라왕능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시켰고, 호로고루(연천군 장남면 원당리 1257-1)에서는 그 옛날 영토를 지키기 위한 노력과 고난을 생각해 보았으며, 다시 파주로 달리다가 북한군 묘지(파주시 적성면 답곡리 산56-1)를 잠시 들렸으나, 먼저는 장소를 찾지못해 헛걸음 쳤던 기억을 되씹어 보면서 묘지가 있는 곳의 방문은 포기했다. 이제는 중국군 유해는 중국으로 모두 가져갔고 북한군(인민군)만 안장된 모습을 보는 것은 오히려 이상했기에 지나쳤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먹을 곳, 노무현이 대통령 시절에 들렸었다는 임진강나루(파주시 문산읍 반구정로 53-51/Tel: 031-954-9898)에서는 자연산이라는 것과 일년에 한 번 먹는을 수 있다는 명목으로 호되게 비싼 음식(황복 1kg과 장어1kg)을 먹고 황희선생 유적지(파주시 문산읍 사목리 산127)을 들렸고 다음은, 임진각관광지(파주시 문산읍 마정리 1198-1)를 들렸다.

2017년 찾았을 때의 망배단이나 자유의 다리 등 예전의 시설들 주변은 많은 곳에서 보수공사가 있는지 펜스가 둘러지고 평화곤돌라가 설치되어 곤돌라를 타고 되돌아오는 관광을 하고 다시 차를 돌려 수원으로 되돌아오며 서울외곽고속도 특히 계양에서 송내구간의 정체를 감수하며 또다시 2시간 20여 분을 소비해 돌아왔다. 시간은 많이 지체되어 간단히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자유의 다리,평화의 종 근처가 대공사중이다.

수도 서울을 비켜서 가는 코스는 언제나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예상외로 길어져 여행을 계획할 때 주저스러운 코스이다. 요금 징수로 충당은 안되겠지만 고속도로다운 급행로가 추가로 추진되어 서울근교로의 여행이 수월해지는 날이 곧 다가왔으면 하는 바램을 해보며 간략하게 적어봅니다.

 

연천 경순왕릉(連川 敬順王陵) 사적 제244,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장남로 288

경순왕(敬順王: 927~935재위)은 신라의 마지막 왕으로 성은 김(), 이름은 부()이다. 경순왕이 즉위할 당시 한반도는 후백제,고려,신라로 분열되어 있는 후삼국 시대였다. 신라는 후백제 견훤의 침략으로 영토 는 날로 줄어들었으며 국가의 기능이 완전히 마비된 와중에 귀족의 권력 다툼은 끊이지 않았다. 이에 경 순왕은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이미 기울어 가는 나라를 되살리기는 힘들었다. 경순왕은 무고한 백성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막고자 신하들과 큰아들 마의태자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려 왕건에게 평화적으로 나라를 넘겨주었다. 그 후에 경순왕은 왕건의 딸 낙랑공주를 아내로 맞아 정승공에 봉해졌으 며 경주를 식읍으로 받아 최초의 사심관으로 임명되었다.

경순왕이 고려 경종 3(978)에 개성에서 세상을 떠나자 이곳에 능이 마련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잊혀 오다 조선 영조 23(1747)에 다시 찾게되어 조선 시대 전형적인 묘소의 격식으로 재정 비되었다.

전하는 바로는 운구 행렬이 경주로 가기 위해 이곳 임진강 고랑포에 이르렀을 때, 고려 왕실에서 왕릉 은 개경 100리 밖에 쓸 수 없다라는 이유로 막았다고 한다. 이는 후삼국을 통일하고 왕권을 확립해가던 고려가 경주에서 치러질 장례로 자칫 민심이 동요할 가능성을 염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경순왕은 왕릉으로서 곡장을 두르는 격식은 갖추었지만, 이곳 고랑포 북쪽 언덕에 자리잡아 신 라왕릉 가운데 경주 지역을 벗어나 있는 유일한 능이 되었다.

) 식읍: 나라에서 공신이나 왕족에게 지급한 일정한 지역

) 사심관: 서울에 있으면서 고향의 일에 관여하던 관식

) 곡장: , , 묘 따위의 무덤 뒤에 둘러쌓은 나지막한 담

원래 고랑포구 주변에 있던 것으로 경순왕의 신도비로 추정되어 1987년 이곳으로 옮겨 졌다. 비석의 내용이 없이

훼손되어 내용은 전혀 알 수 없으며 단지 비석의 형태로 보아 조선 초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2부로 이어짐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