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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의 향기를 맡으며! 이베리아 완전 일주-1

아름답지만~ 2014. 2. 9. 09:05

 

이베리아 반도의 역사는 포에니 전쟁으로 로마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으며 로마인들의 언어인 라틴어를 사용, 지금의 스페인어(까스띠야어)가 되었다. 이후 서고트족의 통치, 이후의 분열과 태만으로 북부 아프리카의 아랍인들에게 정복되고 스페인 국토회복운동으로 까스띠야 왕국, 아라곤 왕국, 나바라 왕국 등이 세워졌다. 그 중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왕과 가스띠야 왕국의 이사벨라 여왕의 결혼으로 두나라가 합쳐지고 나머지 국가들은 점령 당해 하나의 스페인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1492년 그라나다를 점령하므로서 완전한 하나의 국가가 되고 이 시기 컬럼버스에 의한 신대륙 발견으로 100여 년간 강대국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펠리페 4세 때 포루투갈의 독립, 펠리페 5세 때는 이태리 마져 소유권을 상실, 1805년 트라팔가 해전에서 영국에 참패 등으로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후 군주제의 폐지, 스페인 내전으로 인한 황폐화는 프랑코가 집권하며 군부독재로의 길을 걷게 되고 1975년 그가 죽으므로서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다.

 

                              리스본의 벨렘지구에 있는 벨렘탑과 세비야의 스페인 광장

                          코르도바의 로마교와 저멀리의 메스키토, 론다의 푸엔토 누에보(다리)

프로방스는 프랑스 동남부의 지중해 해안선 지대와 이에 바로 접해 있는 내륙지역으로 이루어지나 내륙지역은 대부분 구릉지대 이거나 산악지대이다. 주민 대부분은 카토릭교도이지만 마르세유 주변과 보클뤼주 주의 루르마랭 및 메랭돌 주변에는 많은 수의 개신교도들이 살고 있다. 북아프리카로부터 본국으로 소환되는 이주민들로 인해 유태인들이 증가하며, 콩타브네생에서는 지금도 프로방스어를 사용하고 있다.

<브리태니커 및 텔러의 티스토리 인용 및 발췌함>

 

                        생폴 드방스를 향하며 본 주택가와 멀리서 본 생폴 드방스(샤갈의 무덤이 있다)

                      모나코 왕궁에서 본 모나코의 야경과 니스를 떠나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다 본 알프스

[1] 여정의 정리(2014년)

1) 1월10일: 인천국제공항 3층m카운터 25번 테이블 김준연(010-2779-6688) 미팅(10시30분)<공동경비 각130€지불>-LH713(15시05분)-(12시간 비행)<시차는 8시간>-프랑크푸르트(현지시간 19시10분)-LH1172 (21시25분)-(1시간45분 비행)-<시차는 9시간>-리스본(23시10분)-현지팀장 미팅<문길라/클라라 문:스페인 가이드 자격증 소유>-버스<기사 Antony>-호텔[Holiday Inn](00시13분)

[편의상 현지의 시간으로 기록을 계속해 나감] 첫날 밤은 시차적응으로 힘들었다.

 

                           인천공항에서 우리를 태울 루프트한쟈와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모습들

2) 1월11일: 기상(05시30분)-호텔식 아침-버스(08시03분)-신트라(08시30분~09시06분)<신트라성의 취사용 굴뚝을 보고 마을길로 들어서 작은 성당과 비좁게 열린 마을길을 따라 아름다운 집들을 보며 바위를 비집고 자란 나무들, 주변의 경치에 흠씬 빠져들었다>-벨렘탑(09시38분~54분)-<차창투어 제로니모 수도원>-<부유층 주거지를 지나고>-로시우 광장•피게이라 광장(10시15분~11시12분)-식당<밧갈라우:요리음식>(11시12분~12시02분)-4월25일의 다리-<차창으로 그리스도 상이 다리 건너 좌측으로 보이지만 안개 낀 날씨와 달리는 차창으로만 스치고>-A12-A2-E01-휴게소(13시38분~53분)-A22-<포루투갈•스페인의 국경인 다리를 무사히 통과>-E01•A49-월바(Huelva)의 휴게소(14시58분~15시30분)-세비야(플라맹고 공연장:17시46분~19시40분)<옵숀130€>-숙소 [Abades Hotel](20시13~<호텔식 뷔페로 저녁식사>) 다소 편안해진 잠자리.

 

                                    신트라 뒷산의 무어성, 리스본에서의 벨렘탑에서 인증

                           리스본의 로시우 광장의 동주앙 1세상에서 인증, 스페인 세비야의 플라맹고

※] 포루투갈: 선사시대는 이베리아 반도의 역사와 함께한다. 켈트족, 페니키아인과 카르타고인의 체류, 로마인들의 진출과 406년 게르만족의 침공과 711년무어인들의 진출, 무어인들의 거점을 정복 1143년 독립을 서명한 이후 대항해시대를 열었다.

1530년 브라질의 식민지화, 1580년 왕위계승 전쟁발발, 이베리아 연합이 탄생한다. 1640년~1668년까지 분리독립의 싸움 끝에 리스본 조약으로 독립이 인정되었다. 왕정은 1910년10월 5일 공화국이 수립되며 폐지되고 브라질의 독립, 마카오의 반환등 찬란했던 역사의 영광에서 한발 물러서게 되었다.

 

                       신트라의 여름별장과 벨렘탑 옆의 모형비행기(리오데자네이로까지 처음 비행한 비행기)

                                차창가로 본 제로니모 수도원과 발견의 탑(차창투어라 측면만)

⑴ 신트라(Sintra)의 옛 이름은 Cintra로 리스본 서북서쪽 24km떨어진 신트라 산맥 북부 사면의 암석 투성이에 자리하고 있다. 예전 왕실의 여름 거주지였던 신트라는 1910년 왕정이 폐지될 때까지 500여년간 지속되었고, 신트라성의 취사용 굴뚝은 높이가 33m나 된다. 바이런경의 시집 ‛차일드 헤랄드의 여행(Childe Harold's Pilgri-

mage)에서, 그리고 다른 문인들에 의해 아름다움이 칭송되었다.

봉우리 한곳에 19세기에 세워진 페나 궁전, 또다른 봉우리에는 무어양식과 고딕양식이 혼합된 12~15세기경의 무어인의 성(Castolo dos Mouros)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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⑵ 리스본(Lisbon)은 포르투갈의 수도이자 리스보아 주의 주도로 포르투갈의 주요 항구이며 타호(Tajo/테주)강이 대서양으로 흘러드는 유럽대륙의 서쪽 끝에서 13km 상류에 있으며 타호강은 리스본에서 넓어져 팔라해(海)라는 폭이 11km인 만(灣)을 이룬다. 1755년11월 1일 강도 9.75의 대지진으로 리스본은 폐허가 되었으나 벨렘탑과 제로니모 수도원은 온전하였다고 한다. 리스본은 좋은 항구란 뜻을 가지며 대지진 이후 도시는 새로이 만들어졌다.

벨렘탑(Torre de Belem)은 1515~1519년 축성되었으며, 발견기념비에서 테주강 하류쪽 약1km 거리에 있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지점에 당초 물속에 세워졌으나 타호강의 흐름이 바뀌면서 물에 잠기지 않게 되었다한다. 마누엘 양식의 3층 건축물로 3층은 옛날 왕족의 거실로 이용되었으며 지금은 16~17세기 가구를 전시하며, 2층은 포대로 항해의 안전을 수호하는 “벨렘의 마리아 상”이 서 있다. 1층은 스페인이 지배하던 시대부터 19세기 초까지 정치범의 감옥으로 사용되었었다.

대항해시대에는 출입국사무소, 세관역할을 했던 건축물로 벨렘은 예수 탄생지 베들레햄과 상통하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사진만 찍고 떠나는 번개방문의 시작이었다.

                            벨렘은 베들레햄과 일목상통한다는 현지 가이드의 부연설명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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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로니모스 수도원(Mosteiro dos Jeronimos)은 대항해시대의 선구자 엔리케 항해왕자가 세운 예배당에 미누엘 1세가 제로니모스 파 수도사들을 위해 수도원으로 건립하였다. 마치 스페인의 알함브라 궁전과도 같다. 멀찍이서 저게 제로니모 수도원,잽싸게 디카에 모습만 담았다.

✍ 로시우 광장(Praca do Rossio)은 리스본 시가의 가장 중심에 해당하며 13세기부터 모든 공식행사가 이곳에서 행해졌고, 종교재판도 열렸다. 원래의 이름은 동 페드루 4세 광장인데, 로시우 광장으로 더 많이 불린다. 18•19세기의 건물이 대부분인 현재의 모습은 뽕발 후작의 계획에 따른 것으로 중앙의 로터리에는 초대 총독 페드루 4세의 상이 있고, 상 양쪽의 분수 앞에는 로시우 광장의 풍물이라고 할 만한 꽃파는 노점들이 보인다.

동 페드루 4세(브라질 페드루 1세)는 179년10월12일 쥬앙 6세의 차남으로 태어 났으며, 1807년 나폴레옹 침공시 왕가와 함께 브라질로 피신했다. 1822년 브라질의 황제가 되었으며, 동 쥬앙 6세가 1826년 3월10일 서거하자 명목상 포르투갈의 왕이 되었지만 2개월 뒤 마리아 2세에게 왕위를 넘겨주었다. 1831년 국민들로부터 신임을 잃어 페드루 2세(5살)에게 제위를 물려주고 돌아와 1834년 서거하였다. 이곳에선 시간여유를 갖고 돌아 보았다.

  아래는 피게이라 광장에서 보이는 상 조르제성<5세기 로마인, 9세기경 무어인 축조, 1755년 대지진 붕괴,1938년 복구>

                              다음편으로 이어서 정리해 나갑니다. 정리가 쉽지 않았던 여행지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