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기 등

백령도•대청도 2박3일 (2021년 4월 18일~20일)-5

아름답지만~ 2022. 4. 28. 15:55

사진 찍을 때만 벗는 마스크가 흔적을 남깁니다. 용기포 해안에서~
사곶해변에서 잠시 둘러보지만 예전 왓을 때는 차를 가까이 댔던 것같은데~
용틀임바위 근처는 갈매기들 부화장(?)이라 엄청 많은 갈매기 소리가 요란하고

                            남포리 습곡구조는 가까이 있는 듯 하지만 해안으로 내려서야 하는지~

한국(韓國) 기독교(基督敎) 선교(宣敎)의 개척자(開拓者) 성례식(聖禮式) 집전기념비(執典紀念碑)

신학박사(神學博士) 선교사(宣敎師) 원두우(元杜尤: H.G. Underwood, 1859~1916)

중화동교회(中和洞敎會) 목회심지(牧會尋誌; 1. 8~11. 9)

1900118일 목요일(음력 917) 당시 백령도의 선교를 지휘 감독하던 언더우드 선교사 내외는 소래교회 여전도사 김씨 부인의 안내로 중화동 교회를 방문하여 학습과 세례문답을 통과한 7명에게

세례를 주었다.

최초(最初)의 수례자(受禮者; 1900. 1. 8)

허득(許淂) 허근(許根) 허권(許權) 최영우(崔永佑) 김흥우(金興雨) 허륜(許倫) 허간(許侃)

백령도(白翎島) 기독교(基督敎) 신앙(信仰)의 선각자(先覺者) 령기(翎起) 허득 공(許得 公) 기념비(紀念碑)

양천인(陽川人; 1828~1902) 수세(受洗) 성도(聖徒) 통정대부(通政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은 어려서부터 명석하고 대인관계가 원만한 남보다 뛰어났던 분으로 민족혼을 되살리고 국가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기독교를 받아 들이고 그 기독교의 바탕 위에서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진보적 개화 정치인이었다.

()은 세상에 어느 무엇보다 소중한 기독교 신앙을 백령도에 심어 놓고, 가신 분으로 백령주민의

믿음의 조상으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유훈(遺訓) ‘예수 잘 믿어라’ (위 사진의 글을 복기한 것입니다.)

천안함 피격사건 1. 천안함 제원 및 연혁 ◦ 진수(1987. 12. 07)- 취역(1988. 12. 31)- 해군2함대 예속(1990. 07. 01)-제1연평해전 참전 (1999. 06. 15)- 천안함 피격(2010. 03. 26)- 퇴역(2010. 06. 11) ◦ 제원 구분제원함정명천안함(PCC-772)임무대함작전, 대공작전, 대잠작전, 선단호송작전, 탐색 구조작전, 함포지원건조회사명코리아 타코마건조기간1985. 12. 19~1988. 12. 29건조비용280억명명 및 진수일자1987. 07. 24취역일자1988. 12. 31톤수중하: 1,223톤, 경하: 972톤재질상부구조Aluminium(4.6~6.1mm)하부구조Steel(7~11mm)속력/항속거리최대속도: 32kts/800NM, 경제속도: 15kts/4000NM크기전장: 88: 32m, 전폭: 10m, 홈수: 2.88m승조원91명(장교: 9, 사병: 82)주요 무장Harpoon 대함미사일, 어뢰, 76•40mm 함포주요 장비대함 사통레이더, 전자전 장비, 선체 고정형 음탐기 2. 사건개요 및 주요경과 2010년 3월 26일 (금) 21:22경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정상적인 업무수행 중이던 해군 2함대 소속 천안함(초계함)이 북한 어뢰 공격에 의해 침몰되었으며, 승조원 총 104명중 46명이 전사하고 58명은 생존하였다. 3. 피격위치도 및 선체 파손부위 [피격위치도(현위치-2.5km-피격위치)] 4. 민관합동조사단 활동 및 조사결과 민군합동조사단 활동 [3월 31일 국방부는 최초 민•군 합동조사단을 82명(현역 59명, 관 17명, 민 6명) 으로 편성하였으며, 4월 12일 73명(한국 49명, 외국 24명)으로 재편성하여 6월 30일까지 약92일간 조사활동을 실시하였다.] 조사결과(2010. 05. 20) [“천안함은 어뢰에 의한 수중폭발로 발생한 충격파와 버블효과에 의해 절단 되어 침몰되었고, 폭발위치는 가스터빈실 중앙으로부터 좌현 3m, 수심 6~9m정도이며, 무기체계는 북한에서 제조•사용중인 고성능 폭약 250kg 규모의 CHT-02D 어뢰로 확인되었다.”] 5. 추모시 [772함 수병은 귀환하라 -김덕규 772함 나와라/ 온 국민이 애타게 기다린다/ 칡흑의 어두움도/ 서해의 그 어떤 급류도/ 당신들의 귀환을 막을 수 없다/ 작전지역에 남아있는 772함 수병은 즉시 귀환하라 772함 나와라/ 가스터어빈실 서승원 하사 대답하라/ 디젤엔진실 장진선 하사 응답하라/ 그대 임무 이미 종료되었으니/ 이 밤이 다가기 전에 귀대하라 772함 나와라/ 유도조종실 안경환 중사 나와라/ 보수공작실 박경수 중사 대답하라/ 후타실 이용상 병장 응답하라 거치른 물살 헤치고 바다위로 부상하라/ 온 힘을 다하여 우리 곁으로 돌아오라 772함 나와라/ 기관조정실 장철희 이병 대답하라/ 사병식당 이창기 원사 응답하라 우리 UDT가 내려간다/ SSU 팀이 내려 갈 때 까지 버티고 견디라 772함 수병은 응답하라/ 호명하는 수병은 즉시 대답하기 바란다 남기훈 상사, 신선준 중사, 김종헌 중사, 박보람 하사, 이상민 병장, 김선명 상병, 강태민 일병, 심영빈 하사, 조정규 하사, 정태준 이병, 박정훈 상병, 임재엽 하사, 조지훈 일병, 김동진 하사, 정종율 중사, 김태석 중사, 최한권 상사, 박성균 하사, 서대호 하사, 방일민 하사, 박석원 중사, 이상민 병장, 차균석 하사, 정범구 상병, 이상준 하사, 강현구 병장, 이상희 병장, 이재민 병장, 안동엽 상병, 나현민 일병, 조진영 하사, 문영욱 하사, 손수민 하사, 김선호 일병, 민평기 중사, 강 준 중사, 최정한 중사, 김경수 중사, 문규석 중사, 호명된 사병은 즉시 귀환하라/ 전선의 초계는 이제 전우들에 맡기고/ 오로지 살아서 귀환하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대한민국이 부여한/ 마지막 명령이다. 대한민국을 보우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아직도 작전지역에 남아있는/우리 772함 수병을 구원하소서 우리 마흔 여섯 명의 대한의 아들들을/ 차가운 해저에 외롭게 두지 마시고/ 온 국민이 기다리는 따뜻한 집으로 생환시켜주소서/ 부디 그렇게 해주소서
위령탑에 오를 때 입구에서 국화 두 송이를 들고 올라 헌화하고 엄숙하게 묵념을 올렸습니다. 아까운 젊은 이들의 영면을 기원하며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없어야 하지만 범행 당사자는 말없이 세월만 보내니 착잡한 심정과 유가족 여러분의 평안을 기원해 봅니다.

다음 편에서 두무진을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