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기 등

1박 2일의 여수지역 관광-1

아름답지만~ 2018. 1. 16. 20:11

조선시대 좌수영이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과 해전(海戰)의 신기록을 이룩하며 한때는

삼도수군통제영의 본영이 있던곳 등을 간직한 곳, 여수를 초등교 친구들 내외가 함께하는

여정으로 역사적인 흔적들을 찾으며 뒤늦은 공부를 겸한 여행으로 잡았으나 나의 몸이

그러한 이동을 수월하게 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 여행이었다.

여행기는 개괄적으로 정리하고 후에 자세한 내용들과 보았던 느낌, 기타 관계되는 일들을

정리해 나가기로 했다.

도심권역 주요 관광지

❍흥국사(興國寺)[영취산 깊은 곳에 자리한 흥국사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나라의 융성을 기원하기

위해 건립된 사찰이다. 보조국사 지눌에 의해 창건(1196년)된 흥국사는 임진왜란 때 의승군의 주둔지와

승병 훈련소로 사용하던 곳으로 호국불교의 성지로 불리운다. 보물 제396호로 지정된 대웅전에는

목조석가여래삼존상(보물 제1550호)과 보물제578호로 지정된 후불탱이 있다.]

❍여수선소유적(船所)[사적 제392호로 지정된 선소는 고려시대부터 배를 만드는 조선소가 있었던

곳이며 임진왜란 때는 거북선을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선소는 천연의 요새로 일종의 항만시설인

굴강과 무기제작처로 추정되는 대장간, 집무 및 지휘소로 추정되는 세검정, 무기를 보관한 군기고,

선박을 매어두었던 계선주, 돌로 만든 장승인 벅수 등 다양한 역사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영취산(靈鷲山)[석가모니가 처음으로 설법했던 인도의 영취산과 산의 모양이 닮았다 하여 이름 지어진

영취산(해발 439m)은 우리나라 3대 진달래 군락지중의 하나로 흥국사가 자리잡고 있는 산이기도 하다.

매년 봄이 되면 50ha에 이르는 진달래 군락지에서 피어나는 꽃들을 보기위해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으며

개화시기에 맞춰 진달래 축제가 개최되고 있다. 영취산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조성된 등산 코스는 많은

이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으며, 산 정상에서는 빼어난 여수의 풍경과 멀리 남해의 아름다운 배경,

기암괴석까지 감상할 수 있다.]

❍손양원목사 순교기념관(孫良源牧使 殉敎記念館)[손양원목사는 경남 함안 출신으로 1939년 율촌면

신풍리 애양원교회에 목사로 부임하여 1,100여 명의 한센병 환자를 돌보며 함께 생활하였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신사참배를 거절하여 경찰서에 구금되기도 하였다. 여순사건 당시 두 아들을 살해한 원수를

양자로 맞이해 목숨을 구해주는 등 성자로서의 삶을 살았으며, 6.25 전쟁 당시 피난을 가지 않고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돌보다 공산군의 총에 의해 생을 마감하였 다. 손양원목사 순교기념관은 손양원 목사의

사랑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공간이다.]※위 사진 속의 글입니다.

여수 10경[①바다위에 핀 꽃 한송이 오동도(한려해상 국립공원 오동도는 동백나무와 신이대를 비롯

194종의 희귀수목과 기암절벽이 섬 전체를 감싸고 있고 3, 4월이면 붉은 동백으로 물들어 바다의

꽃섬이 된다. 봄날 붉게 수놓은 동백꽃의 향연에 빠져보자.) ②신이 내린 천혜의 비경 거문도•백도

(거문도•백도지구는 100년이 넘는 역사와 함께 국내 두 번째, 남해안 최초로 불을 밝힌 거문도 등대와

녹산등대 가는 길, 거문도 동백숲길과 더불어 인근에는 남해의 해금강이라 불리우는 백도(국가 명승지

제7호)가 기암괴석과 천혜의 비경을 자랑한다.) ③전국 최고의 일출 명소 향일암(‘해를 향한 암자’라는

뜻으로 전국 최고의 일출 명송이며 4대 관음성지 이다. 무성한 동백나무 숲과 아열대 식물이 울창하게

펼쳐진 금오산과 탁 트인 바다가 멋진 장관을 연출한다.) ④아찔한 절벽•비경에 탄성이 절로

금오도비렁길(‘비렁’은 벼랑(절벽)의 여수사 투리로 남면 금오도 함구미 마을에서 장지마을까지 아찔한

해안절벽을 따라 개설된 총연장 18.5km의 탐방로이다. 총 5개 코스로 구성됬으며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출렁다리, 쪽빛 남해 바다의 비경 등이 탐방객을 사로잡는다.) ⑤해양관광의 메카 여수세계박람회장

(전 세계인에 감동을 선사 했던 여수박람회장은 지구촌 단 하나뿐인 화려한 빅오쇼를 비롯해 스카이타워,

엑스포기념관, 아쿠아플라넷, 해양레져스포츠 체험 등 하루종일 신나는 박람회장이 될 것이다.)

⑥국내최대의 단층목조건물 진남관(국보 제304호)(조선시대 400여년간 조선수군의 본거지로서 이순신

장군과 수많은 병사들이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호국의 얼이 깃든 곳이다. 최초의 삼도수군 통제영이자

전라좌수영이며 객사였던 진남관은 현존하는 관아 건물중 국내 최대의 단층 목조 건물이다.)

⑦형형색색의 황홀한 여수밤바다/산단 야경(인기그룹 버스키비키가 노래로 부를 만큼 바다를 끼고 도는

해안선 여수도심야경은 낭만과 황홀함을 더해준다. 정유•비료 •석유화학 계열 276여개 업체가 입주한

국내 최대 중화학공업단지인 여수산단에서 내뿜는 형형색색의 빛의 아름다움도 장관이다.) ⑧우리나라

3대 진달래 군락지 영취산 진달래(매년 4월 초가 되면 영취산은 온통 진분홍 진달래 꽃밭이 된다.

정상까지 꽃으로 뒤덮여 마치 산이 활활 불타 오르는 듯한 장관을 연출한다.) ⑨국내 최초 바다 횡단

여수해상 케이블카(여수 돌산과 자산공원을 잇는 1.5km구간의 국내 첫 해상케이블카로 바닥이 투명한

크리스탈 캐빈 10대(5인승)와 일반 캐빈 40대(8인승), 총 50대가 운행되고 있다. 박람회장과 오동도를

중심으로 다도해 탁 트인 전망과 여수의 밤바다 풍경이 아름답다.) ⑩세계 최고의 현수교 여수

이순신대교(현수교 가운데 세계 최고의 높이를 자랑하는 주탑 높이(270m)는 63빌딩보다 높고 주탑간

거리 1,545m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탄신 해인 1545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웅장함과 탁트인

바다전경 일품이다.)※사진속 글

충무공 이순신과 여수[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591년에 이순신은 잔라좌수사로 이곳 여수에

부임하여 왜적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전라좌수영의 본영이었던 여수는 거북선을 처음으로 출정시킨

곳인데, 1593년(선조 26년) 8월부터 1601년(선조 34년) 3월까지 삼도수군통 제영의 본영이기도

하였다. 이순신의 수군이 옥포,합포,당항포,율포,노량,명량,한산도 등에서 거둔 승리는 조선이 왜적에게

7년 전쟁에서 승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여수에는 충무공 이순신의 발자취가 곳곳에 문화 유적으로 남아 있다. 거북선을 최초로 만든 선소, 공의

공적을 새긴 통제이공수군대첩비, 공을 추모하여 세운 눈물의 비석 ‘타루비’, 국내 최초로 세워진 이순신

사당 ‘충민사’가 있다. 또한 나라를 구하는데 앞장선 승려들의 흥국사도 있으며, 송현마을에는 효성이

지극했던 공이 전쟁중에 어머니 변씨를 모셔와 보살핀 곳도 있다.

‘만약 호남이 없었다면 국가가 없었을 것이다(若無湖南 是無國家)’라는 이순신의 글을 되새기게 하는

이곳 여수는 임진왜란때 위태로운 나라를 지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다.]

 

 

 

 

 

                                                                                      임포마을에서 만난 겨울 속 동백꽃

 

 

 

 

 

1. 다녀온 날: 2018년 1월 3일 09시 열차~1월 4일 20시05분 열차(ITX)

2. 개괄 방문지: ① 1월 3일: 수원역(08시30분~09시)여수역(13시05분)-택시-나주배(점심식당)

-선소유적지(14시29분~14시50분)-택시-오충사(15시04분~15시13분)-걸어서-이순신공원

(15시30분~16시)-걸어서-자당지(16시19분~16시40분)-버스-영당지(17시25분~17시35분)-

걸어가며-장군정(17시40분)-여수수산물시장-택시-동백회관(저녁식사; 18시25분~20시)-

택시-임포마을 백림모텔(20시40분~)

                          우리가 타고온 ITX열차와 엑스포세계박람회장의 옛 시멘트사이로를 이용한 전망대

 

                   3일 낮 늦은 점심을 먹은 집, 수도권 보다 비쌌던 갈비탕, 대략 70% 수준의 고기량과 10% 비쌌다.

② 1월 4일: 향일암(07시~08시)-서울식당(아침식사; 08시30분~09시15분)-버스(116번;

09시50분)-진남관(10시52분~11시26분)-걸어서-고소대(11시33분~11시39분)-고소동

천사벽화마을(9번길)-이순신광장(11시48분~12시16분)- 택시-오동도 입구-걸어서-오동도

카멜리아(점심식사; 12시50분~13시50분)-오동도 숲길(13시51분~14시27분)-걸어서-

여수엑스포역(15시21분~16시05분)- 수원역(20시05분)-일미집(저녁식사; 20시15분~21시05분)

                                                 여수엑스포역 주변의 한옥마을과 충덕중학교, 여천역 쉬었다가 간다.

3. 다녀온 곳들: ①여수선소유적지(麗水船所遺蹟)[충무공 이순신이 배 만드는 기술이

뛰어났던 군관 나대용과 함께 거북선을 만든 곳으로 알려져 있다. 가막만의 최북단 후미진

곳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입구에 가덕도와 장도가 방패 역할을 하고 뒤 로는 망마산을

등지고 있었으므로 그야말로 천연의 요새였다. 원래 명칭은 순천부 선소이다. 거북선은

이곳과 함께 인근의 본영 선소, 방답진 선소 세곳에서 건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순천부 선소는 임진왜란 전에 생겨 임진왜란 중 잔라좌수영 산하 순천부 수군 기지였던

것이 확실하나 만들어진 연대는 알 수 없다. 주변의 마을은 예로부터 선소 마을로 불리었고

고려시대부터 배를 만드는 곳이었다고 한다.

현재 일종의 항만 시설인 굴강이 남아 있으나 주변의 유적과 유물들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많이 훼손되었다. 발굴조사를 통해 대장간 터를 찾았으며, 세검정과 군기고는

최근에 복원하였다.] by 안내문 인용

 나의 살던 고향 선소(船所)/우리의 정든 고향을 떠나면서

이곳 선소(船所)는 선조들이 터잡고 씨를 뿌려 곡식을 거두며 생계를 유지하고 대대로 이아온 인심 좋고

살기 좋은 마을로써 1995년 4월 20일 국가사적 제392호로 지정되었다. 선소유적은 옛부터 ‘선소마을’로

불려지는데 고려시대부터 배를 만드는 조선소가 있던 자리이다. 특히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의하면

뛰어난 조선 기술을 가진 나대용 장군과 함께 거북선을 만든 곳으로 임진왜란때 왜군을 물리치고

위태로운 나라를 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선소는 가막만의 가장 끝자락에 위치해 있으며 바다 입구에는 가덕도와 장도가 방패 구실을 하고 있고 먼

바다에서 볼 때 잘 노출되지 않으며, 심한 파도가 닿지 않아 중요한 해군 군사 방어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이곳에는 거북선을 만들고 수리하며 대피시키던 굴강(掘江), 칼과 창을 만들던 풀뭇간,

세검정(洗劍亭), 거북선을 매어 두었던 계선주(繫船柱), 무기를 보관하던 군기고(軍器庫), 일반인의

통행금지를 표시했던 벅수(석인)등 다양한 관련 유물들이 남아 있다.

선소유적 문화재 복원사업에 따라 이주하여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어 꿈을 그리는 우리의 텃자리 어디로

간들 잊으리오, 기억과 추억속에 남은 내 고향 선소마을의 그 터와 떠나간 고향민을 그리며 여기 이곳에

기념비를 세워 후세대에 길이길이 전하고자 한다. ※석비의 글임

 

 

✴굴강(掘江)[굴강은 조선 시대 해안 요새에 만든 조그만 군사 항만 시설로 선착장이자

방파제 역할을 하였다. 여기에 배가 머물며 고장 난 곳을 손 보거나 군사 물 자를 싣고

내렸다. ‘굴강’이라는 이름은 대피한 배를 보호하기 위해 방파제를 작은 만처럼 만든데서

유래한 듯하다.면적 1,338㎡, 직경 42m안팎의 타원형으로서 거북선 두 채가 들어갈 만한

규모이다. 길이는 돌벽 위에서부터 바닥까지 5~6m 정도로 추정된다. 북쪽으로 9m정도

되는 입구가 있다. 크기가 일정하지 않으나 대체로 40~50cm정도 되는 자연석과 깬돌로

막쌓기를 하였고 남은 돌과 흙으로 뒤를 채운 것으로 보인다.

1980년과 1985년에 한 발굴조사에서 나온 쇠로 된 화살촉,못,쇠붙이 같은 유물 565점을

국립광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by 안내문 인용

 

 

 

 

 

 

✴세검정(洗劍亭)과 수군기(水軍器)[세검정은 집무 및 지휘소 기능을 담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세검정 터에 남아 있던 주춧돌의 간격으로 보아 정면의 크기는 작아도 7칸에

길이 15.8m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옆면의 크기는 알 수 없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1986년에 맞배지붕의 앞면은 7칸, 옆면은 1칸 규모로 세검정을 복원하였다. 군기고

(수군기)는 세검정과 같이 선소의 1차 발굴 조사 뒤에 복원한 건물이다. 발굴 조사 결과

외부의 침입을 막을 수 있도록 주춧돌과 주춧돌 사이 벽체를 토담으로 튼튼하게 쌓았는데,

건물 터 앞에서 쇠로 된 화살촉, 배 못들이 나온 것에서 군사 무기를 보관하던 창고로

추정하고 있다. 복원한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1칸 의 맞배지붕으로 서향이다.] by 안내문 인용

 

 

 

 

✴대장간[물을 모으는 집수구와 쇠를 불에 달구어 벼리는 단야로가 있는 것으로 보아 군기를

만들고, 수리하던 대장간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집수구의 남쪽 면은 자연 암반층이지만

북쪽 면은 인위적으로 만든 흔적이 있다. 암반의 중심 부 분에 직경 10~20cm의 자갈들이

있는데 여기서 물이 계속 솟아 나와 지속적으로 물이 공급되어야 하는 단야로를 설치하기에

적합했던 것으로 보인다.] by안내문인용

 

❍복원된지 그리 오래지 않아 고풍스럽지는 못하지만 어려웠던 시절 생각지도 못했던

역사의 흔적과 발굴에 의한 복원은 뜻이 깊은 일이다. 여수시가 3개 시•군이 통합된지도

꽤 되었는데 설명문들을 일치되도록 고쳤으면 좋을 것 같다.

몸이 불편해 계선주를 놓치고 나온 것은 내 실수지만 복원에 좀더 신경을 기울이고

안내판도 좀 신경을 더 써주기를 바란다.

                                                                                벅수와 석장승

                                                      2부로 이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