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기 등

1박 2일의 여수지역 관광-3

아름답지만~ 2018. 1. 17. 19:12

⑤영당지(影堂址)[영당은 어민들이 바다에서 일어나는 재난을 막고 풍어를 기원하던

해신당이다. 이 앞을 지나는 배들은 고사미를 내어 고사를 지낸 뒤에 출어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이전에는 최영장군을 모시다가 임진왜란 이후부터 충무공 이순신을 주신으로

이대원과 정운 장군을 배향하였다. 1943년 일제 관헌에 의해 영정이 철거 되고 남아

있던 당우도 1976년 어항당지 조성에 따라 철거되었다. 이후 1979년 향토민속문화

보존회가 중단되었던 영당풍어굿을 재현한 일을 계기로 1982년 현 당우를 복원하였으며,

1994년에는 이순신, 최영, 이대원, 정운 네 장군과 용왕신, 산신 6 신위의 영정을 봉안하였다.

1979년부터 이곳에서 해마다 재현되는 영당풍어굿은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온 여수 사람들의 바다에 대한 신앙심과 생활 풍속을 보여주는 전통 문화 행사

자리잡고 있다.] by 안내글 인용

 

 

 

❍꽤 알려진 곳으로 생각했으나 모르는 사람이 더많은 곳 영당지, 주소를 가지고 찾아서

소방서까지 가서도 주소를 대니 알려준다. 하지만 굳게잠긴 문은 우리를 당우로 안내하지도

못했으니 여섯 신위도 보지 못히고 돌산대교 입구를 지나 여수수 산시장을 구경하다가

저녁을 먹으러 동백회관을 택시로 이동했다. 그리고 오동도 정식(4인상 16만원)으로

배불리고 취중 객기로 향일암까지 택시를 탓다.

                                                              돌산대교와 장군도

 

 

⑥향일암(向日庵)은 1300여 년전 선덕여왕 8년(서기 659년) 원효대사가 기도 중에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원통암’이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습니다. 그후 고려 광종 9년

(서기 958년) 윤필대사가 산의 형세가 마치 금거북이가 불경(경전바위)을 등에 지고

용궁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하여 ‘금오암’이라 부르다가 조선 숙종 때 인묵 대사가

수행정진 중 대웅전을 짓고, 금불상을 봉안하면서 처음으로 ‘해를 향하는 암 자’라는

뜻의 ‘향일암’으로 이름지어 지금까지 불리게 되었습니다.

예로부터 한국의 해수관음 성지는 여수 향일암, 남해 보리암, 강화 보문사,

낙산사 홍련암으로 4대 관음기도처라 하였습니다. 관음성지란 ‘관세음보살님이 상주하는

성스러운 곳’이란 뜻으로 이곳에서 기도발원을 하게 되면 그 어느 곳보다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를 받아 소원을 성취하는 곳입니다. by 석비글 인용

 

 

 

 

 

 

 

 

❍향일암은 몇 번을 다녀간 곳이다. 세 번째인가 왔을 때 기와를 금칠을 해 고풍미가

사라졌다고 한탄을 했었는데, 얼마 있다가 대웅전에 불이나 전소했다고 했는데 이번

복원은 그렇게 요란스러움을 덜은 듯해 기분이 흐뭇했고, 원통보전에서 부처님께 새해의

가족의 건강과 내 질환의 쾌유를 빌었고, 대한민국의 평안함과 좌우의 국가발전적

조율을 기원해 보았다.

 

 

                새벽의 밝기가 부족한데 서둘러 촛점이 흐린 원통보전과 그 뒤의 네모진 흔들바위

 

 

 

 

 

인터넷으로 검사하고 예약한 백림모텔은 여러모로 부족한 시설과 대우로 부인네 들은

추워서 혼났고, 샤워도 하지 못했다고 불평이 대단했다.

새벽 일출을 보기위해 남자들은 모두 향일암을 다녀왔으나 여성분들은 8시가 넘어서

나오고 아침밥을 먹을 집을 찾았고 나름 깔끔해 보이는 곳에서 식사를 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임포마을 주민들이 청소하는 걸 보면서 이렇게 많은 쓰레기를

자연스럽게 버리고 간 관광객들의 져버린 양심을 생각해 보며, 추운데 떨면서 20여 분

버스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정시에 문은 열리고 1시간 이상을 달려 오늘의 첫

목적지인 진남관 정류장에 닿는다. 이곳은 해안가 쪽은 이순신광장, 북쪽 편으로는

진남관이 올려다 보이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각종 소원을 빌면서 붙인 동전이 유통되지 못하고, 아래는 아침 먹은 집

 

 

                      출발시간 맞춘다고 문걸고, 기사님은 편히 쉬고 대기승객은 밖에서 추위에 떨고~

 

            버스 기다리는 곳 아래 널부러진 쓰레기 여기 오시는 분들 양심을 버리고 가시지 말았으면 좋지 않을까?

⑦ 진남관(進南館)[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지휘소로 사용한 진해루가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수군의 중심기지로 사용되었고, 정면 15칸, 측면 5칸으로 현재까지 남아

있 는 단층 목조건물 중 가장 크다.]

{진남관(국보 제304호) 보수정비사업 현장공개 날(18년 1. 13<토>부터 현장공개)}

1. 공개일시:18년 1월부터 매월 2일 공개, -격주(짝수주) 토요일 오전 10:00. 오후 14:00

2. 공개방법: -우리시(여수시)통합 OK예약관리시스템을 이용하여 사전예약,

-관람인원:1회 30명 제한, -관람장소: 가설덧집 3층 관람실, -관람비용: 무료

우리모두 문화재를 아끼고 사랑합시다. 여수시 문화예술과

 

 

 

✴여수석인(麗水石人)[진남관 앞 마당에 세워져 있는 석인상(石人像)은 임진왜란

당시 적의 눈을 속이기 위해 돌로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 세운 것이라고 전해오는

석조물이다. 원래 7구였다고 하나 현재는 관모(官帽)를 쓰고 홀(忽)을 쥔 문신

(文臣) 형상을 하고 있는 이 석인상만 유일하게 남아 있다.]

 

✴철쇄방비시설(鐵鎖防備施設)[이 방비시설은 전라좌수영의 동쪽 소포(지금의 종포)

에서 건너 편 돌산도까지 쇠사슬을 걸쳐 매어 적선의 야간통행을 막는 시설이었다.

우선 긴 쇠사슬의 중간중간에 큰 나무를 꿰어 부표로 사용하고, 이 사슬을 바다에

가로 질러 설치한 후 이것이 조류에 떠내려가지 못하도록 수면에 큰 돌을 달아매어

닻으로 사용했다.

「난중일기」에 ‘돌은 신생포(지금의 율촌)에서 떠왔고, 나무는 두산도(지금의 돌산)

에서 베어 왔으며, 공은 날마다 이 쇠사슬을 건너매는 일을 감독했다’고 적혀있다.]

❍사전 자료조사에서 복원된 진남루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찾았는데 진남관은

커다란 덧집으로 감춰지고 홍보관에서 해설사의 간략한 설명으로 대치했고, 석인상을

이곳으로 옮겨놓아 구경하면서 그 시대의 상황등을 집약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좌수영교를 건너면 고소동 천사마을 벽화골목과 고소대 를 가는 길,

다소 서성거렸지만 곧 고소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진남관 입구에서 뒤돌아본 이순신광장쪽, 고소대와 천사벽화마을 가는 이정표

 

 

                                                 4부에서 다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