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序論)
2007년 9월 2일 산악회를 따라 금물산 성지봉을 다녀올 때 풍수원 성당을 알았고
언젠가는 들려보리라는 생각을 너무도 오랜만에 실행할 수 있었던 풍수원 성당,
이제는 유현문화관광지로 자리를 넓게 차지하고 있었으며, 포은 정몽주선생의
묘역 근처에서 근 1달간 근무하면서도 못 찾아뵌 곳과 인근의 조선시대 영의정을
지냈다는 오윤겸묘역도 욕심을 내봤고 수원근교 조광조의 사당인 심곡서원과
묘소는 보이나 주차가 마땅치 않아 지나치며 올려다만 본 조광조선생의 묘역,
수원광교박물관을 통해서 둘러보는 안효심공 묘소와 혜령군 묘역을 둘러보고 왔다.
횡성 풍수원성당의 전면과 후면의 모습
포은정몽주선생 묘역의 향나무가 역사를 말하는 듯하다
역사를 보면 종교의 자유를 얻고자 산 속으로 숨어들었고, 자연적으로 질그릇을 만들어
팔거나 숯을 만들어 파는 등 어려움 속에서도 종교에 헌신했으며,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부류는 죽이고 후손들은 다시 예우를 하는 일들은 거의가 상식화
되어있다. 정몽주선생은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데 지장이 있는 대상이었고, 조광조선생은
급진보적 개혁으로 사사되었는데 2010년 3월15일 유배지를 다녀온 적이 있어서 찾았고,
2018년 2월20일 삼한국대부인순흥안씨를 찾았는데 그 분이 심온의 안사람인데 합장은
고사하고 멀리 이장시킨 세조는 무슨 연유로 그랬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찾은 안효심공,
그는 세종의 장인이면서도 사신으로 명나라를 다녀오다 태종의 뜻 있는 연유로 체포되어
사사되었다. 이런 역사의 복수는 지금도 유사한 피 맛으로 이어져야 하는가?
횡성 풍수원성당의 양지 바른 곳에는 수선화가 개화하고, 지난 날의 눈이 응달에는 쌓이고
위,아래: 포은정몽주선생의 묘역을 들어서며 홍살문과 재실 등
위: 주차장에서 본 심곡서원, 아래: 안효심공 묘역내의 정자
2. Home-105km/1시간55분-풍수원성당•유현문화관광단지(11시12분~11시33분: 21 분간)
-85km/1시간22분-포은정몽주선생묘• 저헌이석형선생묘• 영일정씨묘역• 연안이씨비석
공원(12시55분~13시58분: 1시간03분)-2km/7분-몸순두부<늦은 점심 식사>(14시05분~
14시49 분: 44분간)-오윤겸묘(능선에 보이기는 하나 입구가 표시되지 않아 되돌림)-11km/
31분-심곡서원(15시20분~15시29분: 9분간)-3km/8 분-수원광교박물관內 안효심공묘•
혜령군양회묘역(15시37분~16시05분: 28분 간)-5km/15분-Home(16시20분)
[주행거리: 211km/ 소요시간: 7시간03분]
위: 포은정몽주선생묘역의 산수유가 개화중, 아래: 저헌 이석형 묘앞에서 본 입구
위: 포은정몽주선생묘역 입구 오른편의 연안이씨 공원묘원, 아래: 안효심공 묘역의 연지
3. 소고: 비교적 산 속인 풍수원성당은 신자들이나 지나던 관광객이 들리는 한적한 곳으로
비교적 여유있는 시간과 주차가 편안했다. 포은정몽주선생 묘의 주차장은 넓은 편이나
이곳을 찾은 차량이 아닌 인근의 찻집이나 가까이의 볼 일로 온 차가 더 많았다. 심곡서원의
주차장은 적은 편은 아니나 차량이 가득 차 있었다. 미련한 본인은 오늘 서원의 무슨 행사가
있는 줄로 알았으나 서원을 한바퀴 돌고 나와서야 인근의 사무실이나 주택에서 주차장으로
사용중임을 알았다. 다녀온 곳의 자세 한 기록은 별도로 기록하고자 한다.
위, 아래: 포은정몽주선생 묘역의 영일정씨 무덤들
위: 심곡서원 내의 느티나무 고목, 아래: 안효심공 묘와 사당 그리고 광교신도시의 빌딩숲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