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기 등

4. 예천의 관광(2018년 11월 11일~12일)-2

아름답지만~ 2018. 12. 8. 17:30

〇아우들은 화장실이 급하다며 장안사 쪽으로, 우리 부부와 둘째 계수 셋이서 12개의

계단 위에 봉수대를 만나고 다시 12개 계단을 내려서고 48개와 54개의 계단을 지나며

편안한 솔숲길을 지나 용포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으나 25분여를 갔는데도 용포대는

저만치서 보일듯 말듯해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발걸음을 되돌렸다.

 

 

 

 

 

 

 

❀비룡산 봉수대(飛龍山 烽燧臺) 소재지: 예천군 용궁면 향석리

봉수(烽燧)는 옛날에 통신수단의 하나로 밤에는 불, 낮에는 연기를 이용하여 국방상의 중요한 임무를

도성(都城)에 신속히 전달하였다. 봉수(烽燧)는 거(홰)수(炬數)에 따라 1회(炬) 평상시, 2홰 적출현,

3홰 국경접근, 4홰 국경침범, 5홰 적군교전으로 구분하여 알렸다.

비룡산 봉수는 동쪽으로 예천읍의 서암산(西菴山), 서쪽은 다인의 소이산(所以山), 북쪽은 산양의

가불산(加佛山)봉수와 연락하였으며, 설치년도는 고려(高麗) 의종(毅宗) 3년(1149)에 세원진 것으로

추정하며, 1895년 봉수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없어진 것을 예천군에서 사방 3.7m, 높이 2.7m 의

정방형 규모로 복원(復元)하였다. 2000년12월 일

 

 

                                              봉수대 석비의 글을 복기해 놓은 것이다.

〇삼강주막을 가는 길에 잠시 들릴 수 있는 황목근을 보고자 네비를 작동해 시골길

같은 논의 한가운데 서있는 황목근의 주차장에다 차를 주차시키고 관람했다. 근처

논두렁에 밭작물을 거두는 분과 대화를 하니 밭이 없어 논두렁을 최대한 이용해

밭 대용으로 사용하며, 실제로 둘러본 금남리는 집터와 황목근과 황만수가 서 있는

땅 말고는 전부 논이었다.

 

❀예천 금남리 황목근(醴泉 琴南里 黃木根)

천연기념물 제400호, 소재지: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금남리 696

이 황목근은 느릅나무과의 한 품종이며 가슴높이의 줄기 둘레가 3.2m, 키가 15m에 이르는

큰 나무로서, 나이는 약 500년으로 추정된다.

마을의 단합과 안녕을 기구하는 등신목으로 보호받고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5월에 나무 전체가

누런 꽃을 피운다 하여 황씨 성을, 근본있는 나무라는 뜻을 따 목근을 붙여 주었다. 또한 국내에서

가장 많은 토지를 보유한 담세목(擔稅木)이 되었다.

 

 

 

 

 

❀예천 금남리 황만수(醴泉 琴南里 黃萬壽)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금남리 696

예천 금남리 황만수는 팽나무로써 천연기념물 제400호 예천 금남리 황목근의 후계목이다. 1998년

봄, 마을 제사를 지내는 제단 주변 석축 사이에 싹을 터서 자라는 것을 2002년 현재 위치로 옮겨 심었다.

나무 이름은 마을 주민들에게 공모하여, 장수의 뜻을 가진 황만수로 지었다.

 

〇삼강주막은 59국도의 곁에 붙어있어서 잠시 들렸다가 가기에 무리가 없는 위치였다.

하지만 볼거리가 별로였고, 추억을 매김하기 위해 파전과 빈대떡 그리고 막걸리

한병으로 들렸던 추억을 만들었고, 그 옛날 보부상들의 애환을 조금 이해하려 했다.

 

 

 

 

❀예천 삼강주막(醴泉 三江酒幕)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34호, 경상북도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길 27

삼강주막은 삼강나루의 나들이객에게 허기를 면하게 해주고 보부상들의 숙식처로,

때론 시인 묵객들의 유상처로 이용된 건물이다.

1900년경에 지은 이 주막은 규모는 작지만, 그 기능에 충실한 집약적 평면 구성의 특징을

보여 주고 있어 건축역사 자료로서 희소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옛 시대상을 읽을 수 있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적 의의를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유구한 역사와 함께한 유옥연 주모할머니가 지난 2006년 세상을 떠나면서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가 2007년도에 1억5천만 원의 예산으로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되어

새로운 주모와 함께 나들이객을 맞이하게 되었다.

 

 

 

 

 

❀삼강나루터의 유래

삼강 나루터는 문경 주흘산맥과 안동 학가산맥, 대구 팔공산맥의 끝자락이 만나며, 내성천과

금천, 낙동강이 합류하는 곳에 위치하는 수륙교통의 요충지이다.

예로부터 서울로 장사하러 가는 배들이 낙동강을 오르내릴 때, 그리고 선비나 장꾼들이

문경새재를 넘어 서울로 갈 때 반드시 거쳐가던 길목으로, 나루터 주변은 낙동강을 오르내리는

소금 배를 통한 농산물의 집산지였고, 대구와 서울을 연결하는 군사도로였기에 1960년대까지

성황을 이루었 던 곳이었다. 더구나 이곳에는 강을 이어주는 나룻배 두 척이 오갔었는데 큰 배는

소와 각종 물류 를 수송하는 수단으로, 작은 배는 15명의 사람을 태우는 교통수단으로

이용하였으나, 인근 교량 설치로 인하여 1980년경 나룻배 운행이 중단되었다. 2013년 청소년들의

체험학습장으로 이용할 목적으로 나룻배를 재현했다. 삼강마을

 

 

 

 

❀삼강절경(三江絶景)은 낙동강, 내성천, 금천인 삼강(三江)이 만나 화합하여 낙동강으로

흘러 가는 곳으로 낙동강 마지막 주막인 삼강주막과 500년이 넘은 회화나무가 있고,

주위에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하며, 삼강팔경(三江八景) 한시는 조선시대 문인인

청풍자(淸風子) 정윤목(鄭允穆)이 삼강의 아름다운 경치를 표현하였고, 삼강절경(三江絶景)

휘호는 서예의 대가인 초정(艸丁) 권창윤 (權昌倫)선생이 직접 쓰셨음.

 

〇우리들 형제 내외는 막내 아우의 차분한 운전 속에서 여정의 막바지인

상주의 계획에 없던 사벌국 왕릉과 경천대국민관광지를 향해 달렸다. 수도권의 수많은

차량홍수를 느낄 수 없는 곳, 우리는 좁은 국토임에도 너무도 복잡함과 한가로움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공존하고 있는 균형잡히지 않은 도로 점유율을 느끼면서 예천군과

상주시의 시계를 넘어 한가로히 달려갔다.

 

                                                     예천편 마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