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와 여주 신륵사
졸업동기생 모임을 정기적으로 하는데 이번은 병환 중인 동기생을 만나는 기회를 갖고자
원주에서 하기로 했다. 그러나 친구의 부인도 초기 치매기가 있어 약속도 어그러지고,
그 과정 중에서 지체된 시간과 원주 세브란스기독병원까지 찾아가서 만났고, 2년여의
요양원 생활에서 몸이 많이 망가진 친구를 만나고 나오는 동기생들의 얼굴은 일그러질 수
밖에 없었다. 점심을 가까운 근처 식당서 하고 다시 세브란스기독병원으로 가다가 길가
문창모의 소개글을 담고 동기생들은 헤어지기로 했다.
필자는 강원감영을 들릴 생각으로 다가갔으나 노상주차장은 강원감영 외곽으로 한바퀴를
돌아도 차를 댈 구석을 찾지 못하여 귀가길을 택해 국도를 택해 달리다가 여주에서 잠시
신륵사를 들려 가볍게 돌아보고 귀가했다.
원주 세브란스기독병원 정문 앞 40~50m떨어진 길가 홍보판, 신륵사쪽 강 건너 강변유원지 건물
조포나루터의 위령비(내용글은 아래 글중에 있다),신륵사 앞 공원의 물레방아
형제인지 비옷도 진화된 모양을 입고 있는 모습이 귀여워 담았는데, 초상권 문제가 없으려나?
1. 찾았던 날: 2019년 05월 19일 일요일
2. 다녀온 길: 집-1•42국도-동수원TG-50고속도-만종휴게소-50•55고속도-남원주 TG
-단구동행정복지센터-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강원감영-42국도-345지방도-신륵사-
42국도-양지TG-50고속도-동수원TG-42•1국도-집
3. 신륵사 둘러보기
① 신륵사(神勒寺)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기는 하나 정확한 문헌 자료가
없어 창건유래는 확실히 알기는 어렵다.
신륵사가 크게 번창한 것은 고려 말의 고승 나옹(懶翁)이 이 절에서 갖가지 이적(異蹟)을
보이며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라 한다.
조선시대는 크게 위축되었었으나 예종(睿宗)1년(1469)에 조선 제4대 세종과 왕비
소현왕후 심씨의 능인 영릉(英陵)이 여주로 옮겨진 후 영릉의 원찰(願刹)이 되어
성종 3년(1472)부터 대규모로 지어졌다고 한다.
② 절 이름에 관한 유래
첫째: 고려 우왕 때 여주에서 신륵사에 이르는 곳 마암(馬岩)이란 부근에서 용마(龍馬)가
나타나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자 나옹선사가 신기한 굴레를 가지고 그 말을 다스렸다는
설화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둘째: 고려 고종 때 건너편 마을에 용마가 나타나 매우 성질이 난폭해 사람들이 붙잡을 수
없었는데, 이때 인당대사(仁塘大師)가 나서서 고삐를 잡으니 말이 순해 졌으므로
신력(神力)으로 제압하였다하여 신력의 신(神)과 제압의 뜻인 륵(勒)을 합쳐 신륵사
(神勒寺)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신륵사 은행나무는 보호수 제66호이며, 수령은 600년 정도이며, 높이는 22m, 둘레는 3.1m라고 한다.
암수 한쌍이 붙어서 서 있으며 죽은 가지가 관세음보살과 같다고 하여 불교신자들의 기원처이다.
2부로 이어짐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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