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

은총의 성모님 발현지와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8-3

아름답지만~ 2024. 4. 18. 19:13

돈 통을 놓고 있는 로봇캡 슬쩍 담았고, 사바티니 정원 입구의 수반(水盤)

아래는 사바티니 정원

마드리드 왕궁(Palacio Real de Madrid)

마드리드 왕궁은 수도 마드리드에 있는 스페인의 왕실 공식 관저이다. 본래는 알카사르 데 마드리드(Alkazar de Madrid)라는 카스티야 왕국의 트라스타마라 왕조 시대부터 사용했던 무데하르 양식의 궁전이 있었다. 트라스타마라 왕조에서 압스부르고 왕조로 넘어간 이후 펠리페 2세가 스페인의 수도를 마드리드로 정하면서 후안 바우티스타 데 톨레도(Juan Bautista de Toledo)에 의해 개축되었으며 펠리페 3, 펠리페 4세를 거치며 개축, 보수되어 전성기 스페인 제국을 상징하는 크고 멋진 첨탑이 양쪽으로 멋있게 징져 있는 독창적이고 근엄했던 건물로 자리 잡았다.

알카사르 데 마드리드는 1734년 크리스마스이브의 화재로 소실되었다. 펠리페 5세는 이탈리아 인 건축가 필리포 유바라(Pilippo Juvarra)에게 의뢰하여 베르사유 궁전과 비슷한 바로크 양식의 궁전을 부탁했고 그래서 탄생한 궁전이 오늘날의 마드리드 왕궁이다.

현재 스페인 국왕인 펠리페 6세 일가가 거주하고 집무하는 곳은 마드리드 외곽의 사르수엘라 궁(Palacio de Zarzuela)이다. 국가적인 상황에서만 사용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서부 유럽에서 2,800여 개 이상의 방과 135,000의 크기로 단연 최대의 크기를 자랑한다.

궁전은 마드리드 서부 중심가의 서쪽 바일렌 거리에 있으며 만사나레스 강변에 있다. 일반에게 부분적으로만 공개되는데, 극히 일부의 박물관 구간만 공개되며 근대까지 스페인 왕실에서 사용 했던 내부를 전시하고 있다. (by 나무위키, 위키백과)

알무데나 성모 대성당(Catedral Nuestra Señora de la Aimudena)

왕궁 앞에 있는 알무데나 대성당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마드리드 대교구 대성당이다. 스페인 국토회복 운동 당시 아랍어로 알무데나라고 부르는 성벽에서 성모상이 발견된 데서 이름이 유래했는데, 이슬람 교도들이 이베리아 반도를 침략한 후 마드리드를 정복했을 당시 성모상을 성벽에 숨겨둔 것으로 추측된다.

1561년 스페인의 수도가 톨레도에서 마드리드로 이전되었을 때, 스페인 교회의 중심지는 여전히 톨레도에 머물러 있었고 카톨릭 국가의 새수도인 마드리드에는 모든 성당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대성당이 없었다. 이러한 필요에 의해 16세기에 지어지기 시작한 알무데나 대성당은 정치적인 문제와 스페인 내전, 재정 결핍 등의 이유로 건축이 전면 중단되다가 1950년 마드리드 왕궁에 맞추어 기존의 네오고딕 양식에서 바로크 양식으로 설계를 변경하여 다시 공사를 진행했다. 1993년 완공되었으며 2004522일 스페인의 제1왕위 계승자인 아스투리 아스 공 펠리페와 레티시아 오르티스의 혼배 미사가 이곳에서 거행되었다. 지하실에는 16세기의 것으로 보이는 알무데나의 성모상이 모셔져 있다.

    (by 이지 스페인, 포루투갈, 이지 유럽 2020.06.05.)

이시도루스 히스팔렌시스(라틴어: Isidorus Hispalensis, 스페인어: Isidoro de Sevilla 이시도로 데 세비야[*] 560년경 ~ 636년 4월 4일)는 30년 이상 세비야 대주교로 지낸 사람으로, 역사가 몽탈렝베르는 그를 고대 세계의 최후의 학자로 언급했다. 저서로는 《어원학》과 《어원백과사전》(Ethymologiarum sive originum) 제18권이 있다.(by 위키백과)

마요르광장으로 이동

왕립극장(Teatro Real)

마요르 광장(마드리드)(Plaza Mayor de Madrid)

1580년 건축가 후안 데 에레라가 처음 건설을 시작했고, 1590년대 광장에 두 개의 탑이 있는 건물인 카사 데 라 파나데리아를 지었다. 데 에레라의 제자인 후안 고메스 데 모라가 펠리페 3세 시대인 1619년에 광장을 완성했다.

1616년에 제작된 펠리페 3세의 청동 기마상은 1848년에 광장 중앙으로 옮겨왔다. 1631, 1670, 1790년 세 차례에 화재로 광장에피해를 입혔다. 마지막 화재 이후의 재건축은 건축가 후안 데 비야누에바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주변 건물을 5층으로 만들었으며, 이 재건축 작업은 그의 사후에도 계속되어 1854년에 마무리되었다.

마요르 광장에서는 투우, 가면무도회, 왕실 결혼식, 대관식 등의 행사가 거행되어 왔다. 그러나 이곳이 항상 단순한 사교적 중심지였던 것은 아니다. 아빌라의 테레사, 이시도르,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등의 성인이 시성받은 장소이다. 또한 17세기 스페인 종교 재판이 성행했을 때 이단자 등 유죄판결을 받은 이들이 공개적을 처형 당하거나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 보였던 장소이기도 하다.

이 광장에서는 야외 골동품 시장이 열리며, 매년 마드리드 시의 수호 성인 성 이시도르 축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한때는 시장터였던 마요르 광장은 16세기에 바로크 양식의 광장으로 탈바꿈했고, 가로 90m, 세로 109m(위키백과는 129m94m)의 넓이로 유럽에서 가장 큰 공공 광장 중 하나이다. (by 두산백과, 위키백과)

빠나데리아(Panadería)는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빵 가게, 베이커리라는 뜻을 가지게 된 것은 처음 1층에 실제로 공공 제과점, 빵 사무실이 설치되어 붙여진 것이라 한다.

1619년 완공된 이 건물은 1672820일 화재로 거의 파괴되었다가 Tomás Román에 의해 17개월 만에 복원되었고, 1790년 화재가 또 발생했으나 이 건물은 무사했다고 합니다. 이후 왕립 미술 아카데미, 왕립 역사 아카데미에 이어 시립 도서관과 두 번째 마드리드 시청의 역할과 기록 보관소로 활용되었으며, 현재는 1층에 관광안내소가 있습니다.

이 건물 외벽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으며, 여러 화가들이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스페인의 날씨 때문에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그림은 다시 칠해지거나 바꿔 그린다 하며, 현재의 그림은 카를로스 프랑코의 작품으로 1992년에 그려졌습니다. (by Travel & Life 2022.07.12.)

펠리페 (Felipe , 1578414~1621331)는 스페인 왕국의 국왕 겸 포루투 갈의 국왕이다. 포루투갈에서는 필리피 (Filipe )로 불린다. 펠리페 3세는 정치를 싫어했고 대부분의 업무를 총신 레르마 공작에게 맡겼고, 이후 스페인은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 (by 위키백과)

마드리드 솔광장 (Puerta del Sol)

16세기 까지는 태양의 문(Purta del Sol)’이라 불리는 태양 문양의 문이 있었던 곳! 그러나 지금은 태양의 문은 없고 사람들이 북적이는 광장으로 바뀌었으며, 솔광장으로부터 중요한 지역 으로 여러 도로가 뻗어나간다. 솔광장 주변에 왕립 우체국이 있으며, 우체국 앞에는 스페인의 기준점이라는 표시가 길 바닥에 새겨져 있다. 새해 우체국의 종이 12번 울리는데 스페인 사람 들은 종이 칠 때마다 포도 한 알씩을 먹으면서 소원을 빈다고 합니다.

솔광장 한쪽에 곰과 마드르뇨(La Osa y el Madroño)가 있다. 마드르뇨는 스트로베리라고도 하며(혹자는 소귀나무라고도 하네~) 상록 관목의 일종이다. 마드리드는 원래 이름이 우루사 (URUSA)였다하며 URUSA는 라틴어로 곰을 뜻한다고 한다. 또 현재 도시 명칭인 마드리드라는 이름이 동상의 나무 이름인 마드르뇨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 동상이 마드리드 시를 대표하는 것으로 유추할 수 있으며 1967년 세워졌다고 합니다.

(by 포콜 2014.10.30./뜻밖의 발견 2019.02.11./세쿨이 2023.07.23.)

카를로스 (Carlos )는 스페인 왕국의 왕이다. 스페인 왕이 되기 이전에는 파르마공국의 공작, 나폴리 왕국, 시칠리아 왕국의 왕이기도 했다. (by 위키백과)

“La Osa y el Madroño" ‘곰과 마드르뇨

마드르뇨는 스트로베리라고도 하며 상록 관목의 일종이다. 마드리드는 원래 이름이 우루사 (URUSA)였다하며 URUSA는 라틴어로 곰을 뜻한다고 한다. 또 현재 도시 명칭인 마드리드라는 이름이 동상의 나무 이름인 마드르뇨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 동상이 마드리드 시를 대표하는 것으로 유추할 수 있으며 1967년 세워졌다고 합니다.

(by 뜻밖의 발견 2019.02.11.)

메뉴판 무알콜과 레몬향 생맥주를 시켜 먹었는데 무알콜은 맛도 향도 맞지않는 술이었다.

버스 타는 곳까지 이동, 버스타고(1642) 공항에 도착(1707)

마드리드 시의회 건물이라 했는데 확인치는 못했다.

공항에서

탑승에서 입국까지

앞의 휠체어가 일행이라 우리 부부 이 분 따라 특실(?)에서 여권만 내보이고 프리패스, 덕분(?)에 쉽게 입국

수원도착 20시15분, 아들 차로 귀가하느라 뒤는 잘 모르나 현상근 단장님 늦게까지 일행 귀가한거 다 챙기셨을 것입니다. 모두가 시차적응 잘 하셨으리라 생각하고 내내 건강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