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

은총의 성모님 발현지와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8-2

아름답지만~ 2024. 4. 18. 16:47

세고비아(Segovia)

세고비아는 카스티야레온 지방 세고비아 주의 주도이다. 마드리드 북서쪽 60km 지점에 있는 과달라마 산맥 기슭 해발 1,000m 지점에 면적은 163.59에 인구 60,000명의 작은 도시이다.

기원전 700년 무렵부터 이베리아 인이 거주하였으며, 기원전 1세기 말에 로마의 식민시가 되었다. 11세기에 이슬람 교도가 침입하여 도시가 파괴되었으나 카스티야 왕국의 알폰소 10세는 이곳을 수도로 정하였다.

중세에는 양모공업이 번창했으며, 현재는 농업을 중심으로 하여 도자기와 직물제조가 이루어 진다. 도시 곳곳에 로마인이 세운 수도교(水道橋)와 성채 알카사르, 대성당 등 고대와 중세의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다. 로마 시대의 수도교는 16세기에 보수 공사를 거쳐 20세기까지 사용 되었다고 한다. 알카사르 성채는 디즈니의 잠자는 숲속의 공주백설공주의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지역 특산물로 꼬치니요(cochinillo segoviano)라 부르는 새끼돼지 통구이가 유명하며 태어난지 3주 이내의 애저(哀猪)를 사용한다.

세고비아는 로마시대의 수도교와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by 나무위키, 위키백과)

아빌라를 떠난지 1시간도 안되어 세고비아 시내를 경유하며 로마 수도교를 스쳐 지난다. 알카사르 방문객주차장에

우리는 하차(1007)하고 7~8분 걸어 십자가의 성요한 교회(Iglesia y sepulero de San Juan de la Cruz)에 도착한다.

십자가의 성 요한 수도원(Convento de San Juan de la Cruz)

데레사 수녀(1515~1582)십자가의 성 요한(1542~1591)’수도사와 함께 초기 카르멜 회의 엄격성을 부활시킨 맨발의 카르멜 수도회를 창립하고, 17개의 남여 수도원을 건립하는 등 수도원 건립 및 개혁 운동을 하였다.

개혁가와 조직가로도 명성을 얻었고 [영혼의 성(): El Castillo interior]을 쓴 신비주의 영성가이기도 하다. 십자가의 성 요한 수도원은 십자가의 성 요한수도사가 원장이었다고 한다.

아빌라의 데레사 수녀와 함께 수도원 개혁을 위하여 헌신하였으나 반대자들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인내와 희생으로 극복하였으며 영성생활에 관한 많은 저술을 남겼다.

사제 학자인 십자가의 성 요한은 아빌라의 사원 미술관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고 곧바로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은 십자가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굉장히 특이한 관점의 스케치였다. (by hkmo1 2019. 9.13)

서둘러 일행은 미사(0921~11)를 마치고 생리현상 해소를 위한 노력들로 카페를 찾아 다녔다.

십자가의 성 요한의 유골함이 모셔진 제대

가운데 성모 마리아님이 아기 예수와 계시고, 좌측에 대 데레사와 우측에 십자가의 성요한이 있는 성화

성당 안에 있는 십자가의 성 요한의 첫 번째 무덤 자리 (by victoria 2015. 6.24)

아래: 인터넷에서 차용한 돌비석의 글(스페인어로 쓰인 구절은)

  "God is like the well,where everyone can take as much as his/ her cup can hold"

    '하느님은---누구나 자기의 그릇 만큼 채울 수 있는 ---우물과 같습니다.

알카사르 성(Alcázar de Segovia)

스페인 세고비아의 알카사르는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에 등록되어 있으며, 흔히 세고비아 성으로 불린다.

백설공주의 성, 신데렐라의 성이라 불리는 알카사르(Alcázar de Segovia)는 세고비아 구시가지 에레스마강(Río Eresma)과 클라모레스강(Arroyo Clamores)이 합류하는 지점 언덕 위에 위치한 알카사르 성채는 고대 로마 시대에는 요새가 있었던 자리에 아랍의 요새가 있던 곳에 지어진 것으로, 12세기 알폰소 8세가 성을 건축한 뒤 역대 왕들에 의해 증개축이 거듭되었고, 궁전이 마드리드로 옮겨간 뒤 알카사르는 이후 2세기 동안 감옥으로 이용되다가 카를로스 3세 때인 1762년 이곳에 왕실 포병학교를 세웠다. 이후 100여 년간 포병학교 기능은 유지되었으나 1862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882년이 되어서야 복원작업이 시작되었다. 알폰소 13세는 알카사르를 1896년 국방부에 사관학교로 넘겨주었다.

1474년 카스티야의 이사벨라 1세 즉위식이 거행되었고, 1570년 스페인 전성기에 즉위했던 펠리페 2(Felipe )가 아나 데 아우스트리아와 결혼식이 거행되었던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by 위키백과, 푸른안개님 2018.06.22., 수드래곤 2016.10.28., 만세 2019.03.21., 기쁘게 2019.02.25.)

로마 수도교(水道橋)

로마 트라야누스 황제(재위 98~117) 때 건설되어 1906년까지 고지대에 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맡았다는 로마 수도교는 고다라마(Guadarrama)산맥에서 프리오(Frío)강의 강물을 18km 떨어진 세고비아까지 끌어오기 위한 건축물은 2400여 개의 화강암을 쌓아 길이 728m, 168개의 아치로 이루어진 수도교는 2층 아치로, 아소게호 광장을 가로지르는 가장 높은 구간의 높이는 약 30m에 달한다. 화강암만을 사용해 만든 로마 시대 토목기술을 집약해 놓은 것이다.

물을 수송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별칭은 El Puente 스페인어로 다리라는 뜻이라 합니다. 1484년에 카톨릭 국왕들이 처음 시작한 복구공사가 끝난 뒤에 수도교는 계속 사용되면서 잘 관리되어 왔으나, 지난 세기 진동과 매연으로 인해 돌이 부식되었고, 그에 따른 균열이 발생해 1929~1930년에 콘크리트로 교체했다.

    이 세 장의 사진은 인ㅌ넷에서 차용해 이해를 돕고자 했습니다.

라 베라크루즈 교회(Iglesia de la Vera Cruz)

이 성당은 성지 순례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템플 기사단이 13세기 초에 지었다고 하는데 베라크루즈(Vera Cruz)"는 영어로 ‘True Cross’로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던 바로 그 십자가 조각을 모신 성당이라는 뜻이다. 현재는 그 십자가 조각은 인근의 다른 성당에 안치되어 부활절에만 공개한다고 한다. 12각형으로 지어진 이 성당은 예루살렘의 골고다 언덕 예수의 무덤 위에 세워졌다는 성묘 교회를 본땃다고 한다. 그래서 베라크루즈 성당의 옛 이름도 성묘성당이었다. (by 네이버 지식백과)

십자가의 성 요한 수도원 나와 카페를 찾을 때 언덕 위에 있던 라 베라크루즈 교회 멀리서만 보고왔던 곳

위는 이름모를 교회 건물이나 이 건물 뒤가 생리현상을 해결한 곳일듯 합니다. ㅎ ㅎ ㅎ ㅎ ㅎ

위 산 마르코스 성당, 아래는 올리브 농장 같습니다.

버스(1138~1245) 타고 마드리드로 향해 달려갔다.

마드리드(Madrid)

마드리드(스페인어: Madrid)는 스페인의 수도로, 나라의 중앙부에 있다. 인구는 약 300만 명 (행정구역 인구는 부산광역시 수준이나 실제 도시권 인구는 700만 명)이다.

마드리드는 만사나레스(스페인어: Manzanares)강을 끼고 있으며 스페인의 중심에 위치한다. 마드리드는 이베리아 반도의 경제 중심으로 여겨진다. 또한 스페인은 세계 100대 기업 안에 드는 3개의 기업(Telefónica, Repsol-YPF, Endesa)도 이곳에 본사를 두고 있다. 스페인의 수도로서 정부 청사가 있으며 스페인 왕궁이 있을 뿐 아니라 스페인 정계의 중심이기도 하다.

마드리드의 왕궁, 스페인 국립극장, 세계에서 가장 많은 명작을 보유하고 있는 평을 받는 프라도 박물관, 스페인의 왕비인 소피아(Reina Sofía)의 이름을 따서 지은 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센터가 이에 포함된다.

1975년에 스페인의 민주화가 달성되고 1986년에 스페인이 유럽 연합에 가입함에 따라 마드리드 는 재정적 역할에 있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마드리드의 위치는 이베리아 반도의 중앙부이다. 해발고도 635 m의 메세타 고원에 위치하며, 만사나레스 강과 만난다. 연 강수량은 419 mm로 매우 건조하며, 유럽의 어떤 수도보다도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by 위키백과)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집회, 스페인광장(Plaza de España)의 세르반테스 석조 및 청동상과 미술학도(?) 들의 그림 삼매경을 뒤로 하고 식당( Restaurante Dudua)(1304~1440)에서 점심을 먹었다.

마드리드의 스페인 광장(Plaza de España)

마드리드 최고의 번화가인 그랑비아 거리 시작점에 있는 광장으로 사람들이 풀밭에 눕거나 벤치 에서 휴식을 취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1916, 스페인의 대표적인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rantes Saavedra, 1547.09.29.~1616.04.23.)의 사후 300주년을 기념한 기념비가 있고, 그 앞에는 애마 로시난테를 올라탄 돈키호테와 노새를 탄 산초 판사의 동상이 있다.

(by 위키백과, 이지스페인 포르투갈 강혜원)

 8-2의 마드리드의 스페인 광장까지 마침니다. 8-3에서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