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동명성당 경북 칠곡군 동명면 한티로 15, ☏054-976-8658
천주교 신앙의 발자취는 칠곡군 곳곳에 산재해 있으나 한티와 신나무골을 오가는 동명지역은 박해시대 후에도 이어졌다. 송산 3리의 어골(성지골)과 갓골재를 넘어 골안마을, 학명동(흑다리골) 의 여릿재 넘어 원당마을에는 천주교인들이 많았다.
한티공소를 시작으로 남원 2리의 원당공소, 금암 4리의 삼산공소, 학명리의 박옥(학명)공소, 처음 동명성당 자리인 금암공소, 다부리의 금화공소 등으로 교세가 증가하면서 동명본당(1978)이 설정되었다. 지금의 자리에 신축된 동명성당은 1988년 축복되었으며, 2023년 동명성당 순례자의 집이 축복됨으로써 한티가는 순례자들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10) 동명지 경북 칠곡군 동명면 구덕리 135-3, 422,
원래는 동명저수지로 칠곡과 대구 일대에 농업용수를 제공하는 저수지였으나 칠곡군이 이곳을 정비사업을 통하여 수면 위에 뜨는 데크형 부잔교와 주탑 형식의 현수교를 설치하여 저수지를 순환하는 산책로를 만들어서 조명도 설치하고 야간에는 야경이 환상적인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위 이그루 모양의 화장실과 분리수거함, 아래 송림수변교
교량 설명판 [공사명: 동명지 수변생태공원 조성사업/사업개요: 길이 120m, 폭 3.0m,
주탑높이 27.2m 군중하중 350kg/㎡(통행하중: 75kg 기준 1,636명)/
공사기간: 2018.06.01.~2019.12.20./시해엉: 칠곡군/위탁시행자; 한국농어촌공사 칠곡지사/
설계자: (주)씨엘,/시공자: 남곡건설(주), (주)코리아에스이]
위 운동기구 뒤로는 길이 없다는 안내판, 저수지 한바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모텔서 약 50분 걸린 곳이다.
11) 칠곡 가실성당(漆谷 佳室聖堂)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주소: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가실1길 1
칠곡 가실성당은 경상북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1895년 초대 주임 신부로 부임한 가밀로 파이아스(한국이름 하경조)신부가 다섯 칸 규모의 기와집을 본당으로 사용한 것이 시초였다. 수로를 이용하여 내륙으로 천주교를 전파하고자 낙동강 선착장 가까이에 위치하였으며 이후 신자가 늘어 본당이 비좁아지자 1923년 당시 주임 신부였던 투르뇌(한국이름 여동선)신부가 현재의 자리에 성당을 새로 지었다. 설계는 명동성당 등을 설계한 빅토르 루이 푸아넬(한국이름 박도행*)신부가 맡았다.
가실성당은 지하1층, 지상1층의 신로마네스크 양식 건물로 정면 중앙에 종탑이 있다. 내부에는 중앙 통로가 있고 이를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통로가 배치된 삼랑식 구조이며 천정은 목재로 틀을 만들어 회반죽을 바른 원통형으로 되어 있다. 성당 뒤쪽에 있는 구사제관 역시 성당과 함께 지어졌으며 현관 홀을 중심으로 교리실, 창고, 집무실, 침실이 있고 지하에는 포도주 저장실이 있다.
가실성당은 6.25전쟁 때에는 남과 북 양측이 야전병원으로 사용하여 치열한 낙동강전투의 와중에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1958년부터 ‘낙산성당’으로 불리다가 2005년부터 다시 ‘가실성당’ 으로 부르고 있다.
성전 봉헌 백주년기념 역사 전시실을 열며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변 언덕 위에 성모님의 어머니 안나 성녀를 수호 성인으로 모신 가실 성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붉은 벽돌 성당 종탑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했습니다. 경북에서 가장 오래된 가톨릭 건축물인 가실성당은 올해 성전 봉헌 백주년을 맞았습니다. 늘 성모님의 전구를 청하는 가실 교우들의 열정과 왜관 수도원과 석전 본당과 많은 은인의 도움으로 역사적 전시실을 개관하게 되었습니다.
붉은 벽돌 낱낱에 새겨진 신앙 이야기가 순례자들에게 살아있는 복음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2024.09.29. 영으로 가난한 가실 교우 일동
12) 신나무골성지 경북 칠곡군 지천면 칠곡대로 2189-22
1873년 병인박해가 끝나고 흩어졌던 천주교 신자들과 새로 입교한 신자들이 신나무골에 모여 교우촌을 이루었던 곳이다. 1886년 한불조약으로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면서 김보록(Achille Paul Robert) 신부는 신나무골을 거점으로 삼아 활발한 포교활동을 펼쳤던 곳이다. 신나무골 성당은 천주교 박해 후 남쪽에 최초로 설립된 성당으로 김보록 신부가 대구 계산동에 처음 지였던 십자가형 한옥성당(1901년 지진으로 인한 화재로 소실)을 2018년 재현했다. 신나무골 성지에는 신나무골에 피난 와 살다가 다시 한티로 피신하였지만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아들 배도령 (스테마노)와 함께 순교한 이선이(엘리사벳)의 묘를 1984년 한국 천주교회 창립 200주년 행사 때 한티에서 이곳으로 이장되었고 한국 천주교회 순례지로 지정되어 많으 천주교 신자들이 찾는 곳이다. 한티가는길 중 2구간 '비우는 길(9.5㎞)'이 시작되는 곳으로 천주교 성지순례 뿐만 아니라 트레킹으로 많은 방문객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십자가형 한옥성당
로베르 신부는 1883년부터 경상도를 사목하기 위한 거점으로 대구를 지목했다. 하지만 여건상 바로 대구로 들어갈 수 없어서 1885년12월 신나무골에 사제관을 마련했다.
1887년11월 새방골로 들어와 대구로 들어갈 수 있는 방안을 찾았다. 1891년 1월25일 대구에서 추방된 로베르신부는 외교적인 해결로 1891년 4월30일 대구로 돌아왔고, 12월 대구 계산동으로 거처를 옮겼다. 1893년부터 성당이 비좁아지자 큰 성당을 지을 결심을 했다. 1894년 초부터 계산동에 성당 짓기 위해 목재를 구입하고, 성당을 지을 터를 마련했다. 1895년 9월 성당 부지의 평탄 작업을 하고, 담장을 쌓았다.
로베르 신부는 계산동에 유럽식 성당을 지으려 했지만 여러 가지 문제로 1895년10월 포기했다. 계산동에 성당을 짓기 전에 임시 성당과 사제관을 마련했다. 1895년12월 대어벌 집[수창초등 부근, 국채보상운동 발생지]을 사면서 계산동에 한옥성당을 짓기로 계획했다. 성당을 짓기 시작한 1896년 5월31일부터 1898년 9월까지 로베르 신부는 대어벌에 거주하면서, 임시로 ‘성 요셉’ 성당을 세웠다. 로베르 신부는 1898년 9월 1일 성당과 사제관을 완공했고, 12월25일 비에모 신부와 함께 성당을 축성했다.
약현성당(1893년), 답동성당(1896년), 명동성당(1898년) 다음으로 성당이 건립됐다. 성당은 가로 세로 9척9간[25m]으로 총45간이었고, 십자가형 한옥 기와집 성전을 ‘루르드의 성모성당’이라 했다. 하지만 목조 건물인 한옥 성당은 완공된 지 2년 2개월만인 1901년 2월 4일 밤 8시경 지진 으로 시작된 화재로 전소됐다. 로베르 신부는 곧바로 르와넬 신부의 설계도를 따라 1902년11월 25일 새롭게 고딕식 성당을 완공했다.
신나무골에 로베르 신부가 처음 지었던 십자가형 한옥 성당을 2018년 재현했다.
남아있는 사진 한 장을 토대로 지붕 위의 십자가와 창문을 재현했다. 벽을 보고 미사를 하던 시기여서 제대를 이동용으로 제작했고, 계산 성당을 모방해 감실을 제작했다.
지붕과 막새기와와 담장 등에 있는 십자가는 계산성당 초창기 대문 담장에 있던 문양으로 현재 성모당 가장 윗부분에 24개의 십자가가 있다.
김보록 신부 흉상 옆
◦프랑스 배로르 교구 로베르 신부님의 생가와 성당에서 채취한 흙을
조환길 타대오 대주교님이 2022년 12월말 가져오시다.
◦선조 이이전 안드레아 때 대구본당 초대 주임 신부로 임명된 김보록 신부(Achilleus P. Robert, 1853~1922)님을 집에서 모시고 많은 신자들과 함께 선교활동을 하신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우리 후손들이 뜻을 모아 김신부님의 상을 건립합니다.
1984년 7월 8일 주선: 후손 이승환 요셉, 설립자: 후손 이영숙 프란체스까, 제작 최홍록 글씨 동애 소효영
3편의 글을 여기서 마침니다. 나머지 점심 먹고 귀로에 오르며, 한티가는 길을 따로 해 4편에서 마무리합니다.
'국내 여행기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내와 같이 간 서울대공원(2025.06.07.)-1 (0) | 2025.06.10 |
---|---|
성지순례(상주,김천,군위,칠곡)에 함께한 여행-4 (7) | 2025.06.01 |
성지순례(상주,김천,군위,칠곡)에 함께한 여행-2 (0) | 2025.05.31 |
성지순례(상주,김천,군위,칠곡)에 함께한 여행-1 (3) | 2025.05.31 |
신리성지(2025.05.13.) (3) | 2025.05.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