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

백두산 여행-7

아름답지만~ 2015. 9. 3. 15:40

다시 갈길을 재촉하여 화룡시(和龍市)를 우회하니 자동차 전용도로인 듯한 곳으로 들어 20여 분만에 두도요금소(頭道收費站)를 지나 국도를 조금 달려 용정의 경계를 표시한 팻말 지나며 가이드는 멀리 일송정을 설명하며 차는 달려 비암산 입구길을 지나친다.

                                                              잘닦인 도로(S202), 비암산입구 이정표가 우측 입구를 가리키고 있다.

용정(龍井)시는 우리 선조들이 일제에 항거한 무장투쟁의 본거지였으며,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비암산(琵岩山) 일송정(一松亭)에 모여 집회나 회의의 장소로 자주 이용되어 일제가 일송정에 위해(危害)를 가해 1938년 결국은 고사시켜 항일무장투쟁의 정신적인 상징을 없앤 것을 1991년 연변조선족자치주 정부와 한국 각계의 도움으로 옛 자리에 소나무를 심고, 정자를 신축했고, 이후에도 여러 도움으로 확장 및 보수가 이루어졌으며, 용정시에서도 보호문물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용정8경의 하나로 꼽힌다.

                                                                낮 설지 않은 주거지역을 지나고 얼마후 용정시내가 보인다.

                                                                                                        용정 시내길

                                                         대성중학교에 전시된 사진' 일송정의 정자와 청산리항일대첩기념비

                                            해란강을 지나치고, 일송정을 너무 멀리 간단히 지나 '불여불급님 블로그'에서 차입한 원경

용정시내를 지나치며 이정표에 연길 20km의 표지와 언덕에 전망대가 돋보인다. 이제 돌아갈 준비를 해야될 시간, 차가 달리는 중 몇가지 농산물들이 소개되고 특히 참깨의 욕구는 전원이다시피 주문을 받고, 도로가 언덕을 내려가는 곳 선전탑에서 반갑게 KIA의 모습이 보이고 잠시후 한문과 한글을 병용한 간판과 이정표, 연변대학교 정문도 통과한 후 순이냉면(順姬冷麵)에서 탕수육과 냉면을 먹었다. 여행의 종반으로 들어서며 가져온 소주를 소비시키기 위한 경쟁이 시작되어 진짜 탕수육(?)<돈육이 푸짐한 튀김>을 안주 삼아 몇잔을 들이키니 나중에 나온 대야냉면(?)을 처리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다음으로 찾아간 연변조선족민속공연(사계절민속공연)은 우리가 도착하기를 기다려 곧바로 시작되어 1시간여를 관람후 진달래광장에서 이곳의 많은 사람들 모습을 보며, 북파산문에서 피로해진 몸을 풀어주는 애득안마원에 들렸다가 호텔로 들어가는데 또다른 한국관광객과 중국인 관광객이 몰려 프론트와 엘리베이터 앞은 도떼기시장을 연상케 하며, 특히 중국인들의 새치기가 횡행했다.

                                            기아차 광고판이 반가웠고, 연길 시내로 들어서자 한글 간판이 중국어와 병기되어 있다.

                                                 박 가이드도 다녔다는 연변대학교 정문, 순이냉면에서 세트로 나온 탕수육과 냉면

                                                                         냉면 먹고 민속공연 보러가는 연길 시내길, 공연장면들

                                                    조선족민속공연 '사계여가'를 보고나온 앞, 진달래광장의 여유로운 장면

83: 전날 워낙 늦게 잠자리에 든 탓에 다소 늦게 잠에서 깨어 창밖을 보니 간밤에 비가 내린 듯 했으며 그리 멀지않은 곳에는 포얼하통하(布尒哈通河)강이 흐르고 있었다. 오늘의 일정 중 상당부분이 상품판매소를 방문하는 것이 차지하는 날이다. 아침의 연길 시내는 역시 중국이라 새벽 먹거리시장이 열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보이차 상점에 들려 상품 설명을 들으며 보이차를 쉼없이 마셨고, 일행 중 두세 분이 상품을 구입후 자리를 일어났다.

                                   한성세기호텔에서 바라 본 포얼하통하강이 건물 사이로 보이고, 사회주의체제의 계획개발지역인 듯한 곳

                                                     낮에는 볼 수 없는 새벽 시장이 선 모습, 출근시간대라 자가용들이 정체된 연길시내길

                                                                  연길서 지방도로 국도와 만나기 얼마전의 모습, 용정시내의 해란강

버스가 이동중 연길시내 결혼식 축하차량이 요란함을 보고 조선족들의 혼례풍토에 대한 얘기가 있었는데 우리보다 경조금이 적지않음에 놀랐으며, 용정으로 달려가며 해란강(海蘭江)을 건너 우리는 대성중학교(大成中學校)에 들려 용정중학교 교사들이 설명해주는 선조들의 항일정신(抗日精神)을 듣고 돌아본 뒤, 다시 연길로 25분만에 되돌아 와 서심라텍스에서 필자는 주책없이 과용하는 모양을 한 후, 다시 죽해송도원이라는 대나무섬유공장을 들렸는데 주머니가 텅텅 비어 미안하지만 그대로 나와야 했다

요란한 결혼식 축하차량들 (요일에 관계없는 택일이란다)

                                                                      연길에서 지방도를 따르다가 본 시골과 대성중학교의 흔적들

저항시인-윤동주: 용정중학이 낳은 조선민족의 저명한 저항시인 윤동주는 1917123일 지금의 룡정시 지신진 명동촌의 한 교원의 가정에서 태어나 선후로 명동소학, 은진중학, 평양숭실학교, 광명중학, 서울연희전문학교, 일본동지사대학, 립교대학을 다녔습니다.

어려서부터 문학에 흥취를 둔 윤동주는 우리민족의 자유와 해방을 갈망하는 절절한 심리를 표현한 많은 시편들을 남겼는데 대표작으로는 <<서시>>로서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시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습니다. 윤동주시인의 유고집 <<하늘과 바람과 시>>에는 110여수의 시가 수록되었는데 한국, 일본 등 나라에 널리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린시절부터 민족독립투사인 큰 외삼촌 김약연선생님의 영향을 받아 반일의 씨앗을 키워온 윤동주시인은 일본에 류학갔다가 1943719일 독립분자혐의죄로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감옥살이를 하다가 1945216일 후꾸오까 형무소에서 생체실험대상으로 이름모를 주사를 맞다가 28세를 일기로 장렬히 희생되었다.

윤동주는 일제의 민족적기시와 탄압이 혹심한 처경에서도 시종 독립과 자유를 위하여 삶을 바친 재능있는 저항시인이며 인도주의적인 시인입니다.

가을 지난 마당은 하이얀 종이/ 참새들이 글씨를 공부하지요

째액째액 입으로 받아읽으며/ 두발로는 글씨를 련습하지요

하루종일 글씨를 공부하여도/ 짹자 한자밖에는 더 못쓰는 걸

                                                                            1910년대 애국의 산실인 대성중학교의 여러 장면들

                                                         도문을 향해 한참을 달리다가 옆으로 같이가는 포얼하통하강과 라텍스공장 간판

                               연길시내를 관통해 흐르는 포얼하통하강과 시내 모습 

백두산여행 제 7편을 마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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