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삼성혈(三姓穴) 사적 제134호, 소재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성로 22
삼성혈은 제주도 사람의 전설적인 발상지이다. 삼신인(三神人)[고을나(高乙那),양을나
(良乙那),부을나(夫乙那)]이 이곳에서 태어나 수렵생활을 하다가 오곡(五穀)의 종자
(種子)와 가축(家畜)을 가지고 온 벽랑국(碧浪國) 3공주를 맞이하면서부터 농경생활이
비롯되었으며, 탐라왕국(耽羅王國)으로 발전하였다고 전한다.
조선조(朝鮮朝) 중종(中宗) 21년(年;1526) 목사 이수동(牧使 李壽童)이 처음 표단(標壇)과
홍문(紅門)을 세우고 담장을 쌓아 춘추봉제(春秋奉祭)하기 시작한 이래 역대 목사에 의하여
성역화(聖域化)사업이 이루어졌고 현재에도 매년 춘•추제 및 건시대제(乾始大祭)를
지내고 있다.
☉ 대학교 때 졸업여행이라고 들렸던 삼성혈, 오랜 세월이 흘러 역사적 고증으로 수많은
건물들이 들어섰고 경내도 많이 확대된 듯 했다. 웬만한 유적지가 경로이면 무사통과인데,
이 곳은 경로는 천원을 징수한다. [1.삼성혈(三姓穴), 2.관람로(觀覽路), 3.삼성전(三聖殿),
4.삼성문(三聖門), 5.숭보당(崇 報堂), 6.전사청(典祀廳), 7.제기고(祭器庫), 8.수직사(守直舍),
9.총무청(總務廳), 10.건시문(乾始門), 11.안내사(案內舍), 12.전시관(展示館), 13.봉대청(奉待廳),
14.홍살문(紅門), 15.모성각(慕聖閣), 16.주차장(駐車場)]
먼저 전시관을 들려 삼성혈과 연관된 홍보판[연혼포,사시장올악,혼인지,삼사석]을 보고
경내에 전시된 현무암을 거쳐 삼성전, 삼성혈을 둘러보고 나왔다.
3) 제주목 관아(濟州牧 官衙) 사적 제380호, 소재지: 제주시 관덕로 25
조선시대(朝鮮時代) 제주지방 통치의 중심지였던 제주목 관아(濟州牧 官衙)는 지금의
관덕정(觀德亭)을 포함하는 주변 일대에 분포해 있었으며 이미 탐라국(耽羅國)시대부터
성주청(星主聽) 등 주요 관아시설(官衙施設)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관아시설은 1434년(世宗 16) 관부(官府)의 화재로 건물이 모두 불 타 없어진 뒤 바로
역사(役事)를 시작하여 그 다음해인 1435년에 골격(骨格)이 이루어졌으며, 조선시대 내내
중•개축(重•改築)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제주목 관아는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 때
집중적으로 훼철(毁撤)되어 관덕정을 빼고는 그 흔적을 볼 수가 없었다. 제주시에서는
탐라국 이래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제주의 정치•행정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던 제주의
관아를 원래의 양식(樣式)으로 복구(復舊)하고자, 1991년부터 1998년까지 4차례 발굴조사
(發掘調査) 마친 결과, 탐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 까지의 여러 문화층(文化層)과 함께
문헌상(文獻上)에 나타난 중심 건물인 홍화각(弘化閣)•연희각(延曦閣)•우연당(友蓮堂)•
귤림당(橘林堂) 등의 건물터와 유구(遺構)가 확인되고 유물(遺物)도 출토되었다.
1993년 3월30일에 제주목 관아지 일대가 국가사적(國家史蹟) 제380호로 지정되었고,
발굴과정에서 확인된 초석(礎石)•기단석(基壇石)등을 토대로 하고,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와「탐라방영총람(耽羅防營總覽)」등 당대(當代)의 문헌(文獻)
및 중앙문화재위원•향토사학가•전문가 등의 고증(考證)과 자문(諮問)을 거쳐 관아지복원
(官衙址復元) 기본설계를 완료하였다. 특히 제주역사의 정체성(正體性)과 중심을 설정하는
이 뜻깊은 복원사업은 소요되는 기와 5만 여장 전량(全量)을 헌와(獻瓦)해 준 30만
제주시민의 혼(魂)을 담은 사업이기도 하다.
민관(民官)이 합심하여 복원하게 된 이 장대(壯大)한 제주목 관아는 20세기를 마감하는
1999년 9월에 시작하여 새로운 세기인 2002년 12월 복원(復元)을 완료하였다.
☉ 제주시내 로타리 부근의 관덕정을 본 대학 시절의 추억을 더듬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문닫힌 관아의 복원된 모습을 조감도로 만 훑고 개방된 관덕정을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친절한 경찰은 건널목 신호기가 없는 곳에서는 수신호를 보내며 함께 건널목을 오가며
교통사고가 없도록 하는 친절을 보이고 있었다.
♘ 관덕정(觀德亭) 보물 제322호, 제주시 삼도 2동
관덕정은 조선 세종 때인 1448년 안무사 신숙청(辛淑晴)이 병사들을 훈련 시키기 위해 세운
제주도의 대표적 건물로서, 제주목 관아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건립 이후 그 원형을 유지하며
여러 차례 수리되어 오던 중 일제강점기인 1924년 일본인이 수리하면서 지붕처마가 2척 정도
잘려 변형되었으나 2006년 보수를 통해 원래의 모습을 다시 찾았다.
‘관덕’이란 명칭은 ‘활을 쏘는 것은 높고 훌륭한 덕을 쌓는 것이다(射者所以 觀盛德也)’라는
예기(禮記)의 내용에서 따온 것이다. 이는 ‘평소에 마음을 바르게 하고 훌륭한 덕을 쌓는다’는
뜻이며 문무(文武)의 올바른 정신을 본받기위해 지어진 이름이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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