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기 등

청주 상당산성-2

아름답지만~ 2018. 5. 1. 21:11

✾ 상당산성(上黨山城) 포루터(砲樓址) [포루는 성벽 안쪽에서 밖을 향하여 화포를 발사하기 위해

방어하기에 긴요한 곳에 만든 군사시설이다. 건물을 지어 만든 집 모양을 한 것을 포루라 하고

성벽에 포혈(砲穴)을 만들고 화포를 배치한 것을 포대(砲臺)라 한다. 상당산성에는 15곳에 포루를

만들었는데, 평균 대략 240m 간격으로 하나씩을 둔 셈이었다.

그림으로 그려진 「상당산성도(上黨山城圖)」에는 대략의 위치를 알 수 있을 만큼 2칸 혹은 3칸

규모의 작은 기와지붕의 건물로 표시되어 있다.

승려 영휴(靈休)가 지은 「상당산성고금사적기(上黨山城古今事蹟記)」에는 서기 1725년(영조1년)에

포루를 지었다고 하였다.

지금 성벽을 따라 돌다보면 밖의 계곡을 향한 관찰이 쉬운 곳 여러 곳에서 기와조각이 발견되는 곳이

있어 포루가 있었음을 알 수 있고, 북쪽 성벽에서 발굴 조사되어 확인된 포루는 정면 2칸, 측면 1칸

규모의 건물 기초가 남아 있었다.]

 

✍ 다소 높고 편평한 자리지만 설명문과 암석 몇 개만 있는 곳이었다. 잠시후 이정표가

성 밖으로 휴양림을 가리킨다. 동문과 서문의 거리는 1.9km라고 되어있는 곳을 지나고

성벽을 가르는 듯 크게 바위암이 가로로 성벽을 막고있는 형상이라 성벽은 이곳에서

잠시 끊어진 듯 이어져 가파르게 짧은 경사길을 내려섰다. 뒤를 돌아보면 빤히 휴양림

가는 길이 보이고 진행방향으로는 서문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 상당산성 서문(西門; 미호문<弭虎門>) [서문은 조선후기에 대대적으로 고쳐 쌓으면서 새로

만들어졌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땅 모양이 호랑이가 뛰기 전 움추린 모양으로, 호랑이가

떠나면 땅기운이 다하므로 호랑이의 목에 해당하는 곳에 성문을 세우고 “미호문(弭虎門)”이라

하였다. 이는 서문의 위치가 산성을 기준으로 우백호(右白虎)에 해당하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상당산성에는 동문•서문•남문의 성문이 있고 동북과 서남에 각각 암문(暗門)이 있다. 서문은

동문과 마찬가지로 아래 위 2개의 무사석(武砂石) 위에 장대석을 올려 만든 평면구조로 되어있다.

서문은 3곳의 성문 가운데 가장 특이한 평면을 가지고 있는데, 성밖으로 좌우에 성벽을 돌출시켜

방어에 유리하도록 옹벽(擁壁)을 만들고, 문안에서 왼쪽으로 휘어 돌아 문루(門樓)에 오르게

하였다. 이는 흔히 암문(暗門)에서 볼 수 있는 형식으로, 서문에 이를 응용하여 비용을 줄이고

전술 효과 를 높인 것으로 보인다. 문루는 1978년 복원 후, 지반이 침하되어 변형이 일어나

2015년 해체후 원형 복원하였다. 사용된 수막새 문양과 벽돌은 1995년 서장대 발굴중 나온

조선후기 양식을 따 랐다. 미호문(弭虎門)에서 바깥으로 38m 떨어진 곳에 옛 서문 자리가 남아있다.

문길의 길이는 590cm이고 측벽은 대부분 유실되었다. 옛 서문 유구는 발굴조사 자료를 토대로

2003년도에 정비하였다.

 

 

 

✍ 이 서문도 정비후 다시 정비를 해 아주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상당산성의

정비도 아직도 진행형이라는 뜻인 듯 했다.

 

                           아래는 뒤돌아 본 서문(미호문)의 잘 정비되고 운치있는 모습이다.

✾ 상당산성 서문[미호문(弭虎門)] 보수현황 [청주 상당산성은 1970년 10월 01일 사적

제212호로 지정된 포곡식 석축산성으로 그간 수차례 부분 보수가 이루어졌으며 서문

(弭虎門) 문루여담 및 육축구간의 면석선단석이 이완 및 기울어짐이 심하여 관람객 안전

등을 고려하여, 문화재 전문 가 자문 및 고증을 거쳐 성벽 및 자연석 미석, 여장 하부 1단

등을 2014.10~2015.6 전면 해체 보수하였다.

      ※기타 궁금한 사항은 청주시 문화예술과(043-201-2022)로 문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미호문을 지나며 성벽을 앞 뒤로 보니 치성처럼 굴곡지게 쌓아져 있고

산불감시초소가 다소 모서리진 곳에 자리하고 있으나 근무자는 없는 듯 잠겨있다.

성벽은 안쪽으로 휘었다가 능선으로 곧게 이어지는 곳에서 성밖으로 이어지는

시설을 지난다. 이곳을 지나서는 다소 오름길이 되어 휘어져 오름길로 변하고

올라서니 서남암문에 도달해 지나치려다가 밖으로도 나가보니 무장간첩의 장비를

묻었던 곳도 있었다.

 

 

 

 

 

 

✾ 상당산성(上黨山城) 서남암문(西南暗門) [암문이란 몰래 드나드는 작은 사잇문이다. 성벽의

바깥 산 아래에서 드나드는 모습을 잘 볼 수 없는 곳에 만든다. 이곳으로 아군이 사람과 가축 및

식량 등을 성안으로 몰래 들여오거나, 적군 몰래 아군을 내보내 성 밖과의 연락을 하게 하거나,

적의 뒤쪽으로 출동하기 위해 나가는 용도로 만들었다. 암문의 응급적인 방어력을 높여

위급하다고 판단되면 곧장 폐쇄할 수 있도록 문의 안쪽에 흙더미와 돌을 쌓아 두기도 하였다.

상당산성에는 동북암문과 서남암문의 두 암문이 있다. 서남암문은 혹은 남화문(南和門)이라 불렀다.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를 타고 약 1.7km 남쪽의 것대산 봉수대와 연결되는 위치이며, 남문 밖에

모여든 적군의 후방으로 나가 포위하거나, 산성 남쪽으로 통하는 교통로 주변을 관찰하기 위해

통행이 가능한 곳에 자리하였다.

암문의 규모는 너비 약 166cm, 높이 약 172cm이고 구조로 보아 문짝을 닫고 빗장을 질러 문을

닫도록 되어 있었다.

 

 

✾ 한남금북정맥 [백두대간의 속리산 천왕봉에서 갈라져 나와 충청북도 북부를 동서로 가르며

안성의 칠장산까지 이어져 한강과 금강의 분수산맥을 이루며, 서북쪽으로 김포 문수산까지의

한남 정맥과 서남쪽으로 태안반도 안흥까지의 금북정맥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의 옛 이름을 말한다.

해발 400~600m의 산들로 연결되었으니 100m의 낮은 구릉으로 이어지기도 한 이 산줄기는

남한강 지역과 금강 북부지역의 생활문화권을 가름하였다. 한때 고구려와 백제의 국경이 되기도

하였으며, 현재는 중부지방과 남부지방의 자연스러운 경계를 이루고 있다.

구녀산-이티재-상당산(상당산성)-상봉재(현위치)-것대산-현암삼거리-선도산-선두산-산정말고개-주정재-국사봉

✾ 상당산성 치성(上黨山城 雉城) [성벽의 바깥으로 성벽의 일부를 덧대어 내밀게 쌓은 것이

치성이다. 적군이 성벽 아래에 바싹 붙으면 성벽 위에서 고개를 내밀고 공격하기 어려우므로

현안 (懸眼: 성벽 바닥 가장자리 일부에 구멍을 낸것)을 만들거나, 비스듬히 볼 수 있게

치성을 만들어 옆에서 공격할 수 있어야 하였다.

치성의 치는 꿩을 의미하는데, 꿩이 제 몸을 숨기고 밖을 잘 엿본다는 뜻에서 이런 명칭이

생겼다고 한다. 치성은 전술상 평지 성문의 좌우, 혹은 성벽이 곧게 뻗은 부분에 주로 설치되었다.

상당산성에는 남쪽 성벽이 곧게 축조되었으므로, 그 양쪽 끝 능선 위에서 성벽이 돌아가는 위치가

되는 남문동측과 서남암문 동측에 하나씩의 치성을 만들어 방어력을 높였다. 또 남쪽 성벽의 계곡

방향 경사면에 치성을 두어 성벽이 비탈을 지나는 구조적 약점을 튼튼히 보강하고, 동시에 남쪽

성벽의 방어력을 높였다.

성벽이 굴곡을 이룬 서쪽•북쪽•동쪽 성벽에는 성벽이 계속하여 굴곡을 이루며 굽이돌기 때문에

따로 치성을 설치하지 않았다.

 

 

✾ 북한 무장간첩 김동식 공작장비 비밀 매설장소[드보크] 소개

이곳은 북한 직파간첩이 지하당 건설 및 요인 암살 등 대남공작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권총,

실탄, 무전기, 난수표 등 공작장비 25종 80점을 매설한 장소로서 검거간첩 김동식에 의해

확인 발굴되었다.

김동식은 북한에서 간첩교육을 받고 1990년 5월 제주도 해안으로 1차 침투, 이곳에서 발굴한

공작장비를 활용하여 국내 거물 간첩 이선실(북한 권력 서열 19위)을 대동하고 북한으로

복귀한 후 1995년 9월 2차 침투, 운동권 인사 포섭활동을 전개하다 그해 19월 24일 부여에서

총격전(경찰 2명 사망) 끝에 체포된 인물이다.

2015년 12월 청주시는 시민들과 청소년들이 북한 대남공작 현장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안보의식 함양에 도움이 되도록 새로이 단장하였다.

 

✍ 서남암문의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서남암문과 치성을 지나면서 성벽 아래로

무장간첩 김동식의 드보크도 보이는 듯하며 누군가 성밖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앞에는 가까이 남문인 공남문(控南門)이 보이며 내려서는 길이라 2분만에 지나고 다시

2분여 후 진동문과 상당마을이 시야에 들어온다. 우리는 저수지를 건너 커피점에서

커피를 한잔 마시고 1시간 반여의 산성 돌기를 끝냈다. 척추관협착증을 앓으면서 산성

두 곳을 돌고나니 허리도 아프고 몸도 피곤하다. 서둘러 귀가해 샤워하고 일찍 무리했던

신체를 휴식시킨다.

 

 

 

 

 

 

                                       옛 지도를 차입하며 상당산성을 마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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