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기 등

광교산우회 충북 나들이-1

아름답지만~ 2018. 5. 5. 22:02

근래 가장 가까운 곳으로 정해서 그런대로 즐길 수는 있었으나 계획에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을 둘러보기로 했으나 도담삼봉, 사선암을 들리고 장회나루로 차로를 바꿔

수많은 버스와 인파를 헤짚고 미리 사전답사와 예약한 곳에서 식사를 하고, 버스는 다시

청풍문화단지를 거쳐 왔다.

 

 

 

 

 

 

 

 

 

 

 

1. 다녀온 날: 2018년 4월22일 08시 팔달구청 정류장

2. 팔달구청 주차장(08시~)-동수원TG(08시10분)-여주휴게소(08시43분~09시)

-중부 내륙고속도-북청주JC-제천행고속도-제천JC(09시50분)-중앙고속도-북단양TG

(10 시)-532지방도-5국도-도담삼봉(10시11분~10시39분)-5국도-97지방도-사선암주차장

(11시~11시40분)-되돌려 5국도-37국도-장회나루(12시03분~15시35분)-

<한 사람이 내리지 않았다>-버스출발(15시46분)-청풍명월단지(16시18분~16시41분)

- 남제천TG(17시01분)-55고속도(음성행)-북충주JC-여주JC(17시45분)-덕평휴게소

(18시13분~18시25분)-동수원TG(18시52분)-후생내과 앞(19시04분)-남촌집

(19시 15분~20시10분-Home(20시15분) [12시간 15분]

 

 

 

 

 

 

 

3. 다녀온 곳들: ①도담삼봉(충청북도 단양군 매포읍 하괴리 산20-40)

도담삼봉은 남한강이 크게 S자로 휘돌아가면서 강 가운데에 봉우리 3개가 섬처럼

떠있어 ‘삼봉’이라고 했고, 섬이 있는 호수 같다고 하여 ‘도담’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남한강 물줄기가 만들어 낸 최고의 명장면이 아닐 수 없다.

1897년에 조선에 와 전국 팔도를 두루 여행했던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은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에서 도담의 아름다움에 취해 이렇게 말 했다. “한강의 아름다움은

도담에서 절정을 이룬다. 낮게 깔린 강벽과 우뚝 솟은 석회절벽, 그 사이의 푸른 언덕빼기에서

있는 처마가 낮고 지붕이 갈색인 집들이 그림처럼 도열해 있는데 이곳은 내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절경이었 다.

조선시대 문인들과 화가들이 도담을 예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퇴계 이황을 비롯하여 겸재

정선, 호생관 최복, 진재 김윤겸, 단원 김홍도, 기야 이방운 등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도담삼봉은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이 유년시절을 보낸 곳으로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 할 만큼

도담삼봉의 아름다움에 빠졌다고 전해진다.

[삼봉 정도전 이야기 [비가 많이 내려 홍수가 난 어느날 강원도 정선군에 있던 도담삼봉이 ‘넘실넘실’

단양으로 떠내려 왔답니다. 정선군: “원래 우리 것이니 매년 세금을 내라”

정도전: “우리가 삼봉을 정선에서 떠내려 오라한 것도 아니오. 오히려 물길을 막아 피해를 보고

있으니 도로 가져가십시오”

슬기롭게 대처한 어린 정도전 덕분에 그 뒤로 세금을 내지 않게 되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 도담삼봉도 변해 있었다. 주변에 시설투자를 해 조금의 다양성을 가미했고, 우리는

도담삼봉과 먼 발치로 산 위의 팔각정만을 보고 다음으로 떠났다. 사선암으로 향하던

중 만천하스카이워크와 잔도가 설치된 곳을 지났는데, 대기중인 버스가 다 들어가려면

두어 시간은 소비해야 할 것 같았다.

 

사인암(舍人巖)(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사인암2길 42)

하늘 높이 치솟은 기암절벽이 마치 다른 색깔의 비단으로 무늬를 한 듯 독특한 색깔과 모양을 가지고 있다. 이곳은 해금강을 떠오르게 하는 풍경으로도 유명한데, 추사 김정희가 하늘에서 내려온 한폭의 그림같다고 예찬했을 정도로 뛰어난 경치 를 자랑하고 있다.

‘사인암’이라는 이름은 고려 후기의 유학자인 역동 우탁(易東 禹倬; 1263~1342) 이 지냈던 사인(舍人)이라는 벼슬에서 유래하였다. 단양이 고향인 그는 이곳을 유 난히 사랑하여 자주 찾았다고 하는데, 조선 성종 때 단양군수를 지냈던 임재광이 그를 기리기 위해 이 바위를 사인암이라 지은 것이다.

 

 

 

✍ 몇 번을 다녀 갔어도 주변을 모두 돌아보지를 못했는데, 이번에도 자신이 없어

먼 발치로만 돌아보기도 하였다. 청련암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했고, 초파일 때문에

등을 많이 달았다. 아내는 삼성각 위로 꽤 다녀온 모양이었다.

 

 

 

③ 청련암 연혁 [ 본 청련암은 고려말 공민왕(계축년 22년)에 나옹선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1337년 장구한 역사를 지닌 고찰이다. 본래 대강면 황정리 산 28번지에

위치했었으며 대사찰이었던 대흥사의 말사로 주재했었다.

구한말인 1876년 일본군의 침략이 있었던바 문경에서 봉기한 황토고리군과 접전 끝에

본사인 대흥사는 불에 타 소실되었고 1954년 적색분자 소탕관계로 황정산 일대에

소개령이 내려졌으므로 마을 주민과 함께 청련암 또한 현 위치인 사인암 산 27번지에

이주하면서 본래 있던 건물을 옮겨와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극락전의 주불인 아미타불이며 좌보처로 대세지보살(도지정문화재 제309호),

우보처에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청련암]

 

 

 

✍ 예전의 건물인 청련암 앞에는 석불좌상이 자리했고, 삼성각은 사인암 옆으로

계단길을 열어 오르기 편하게 했으나 경사는 급했다. 사인암과 바짝 붙은 바위는

역동 우탁선생의 탄로가를 근자(1995년)에 새겨 넣었다. 나오다가 선암골

생태유람길의 안내판이 있었다. 아래 그 내용을 적어본다.

선암골 생태유람길 코스 [-물소리길: 단성체유공원-별천삼거리 14.8km,

                                      -고개넘어길: 벌천삼거리-방곡삼거리 10.0km,

                                      -숲소리길: 방곡삼거리-사인암 9.2km,

                                      -농촌풍경길: 사인암-단성생활체육공원 8.4km]

✍ 출렁다리를 건너 버스로 향하다가 남조천 너머의 푸르름을 뽐내는 소나무

두 그루와 석비 및 안내판이 있다. 그래서 다른 분이 자세히 설명한 사진과 글은

사인암 옆의 석비의 글보다 많아서 함께 다루어 보기로 했다.

⑤ 역동(易東) 우(禹)선생 [선생은 단산현 품달리 신원(현재 단양군 적성면 현곡리)

태생(1262~1342)으로 휘(諱: 이름)는 탁(卓), 자는 천장(天章) 또는 탁부(卓夫), 호(號)는

단암(丹巖) 또는 백운당(白雲堂), 시호(諡號)는문희(文僖)이며, 후세에 와서는

제주(祭酒)선생 혹은 역동(易東)선생으로 부르고 있다.

선생이 사인벼슬에 있을 때 유난히 이곳을 사랑하여 자주 찾은바 조선 성종 때 임재광

단양군수가 선생을 추모하여 사인암(舍人巖)이라 이름 지었다.

선생은 홀로 주역을 해득하고 성리학을 강론하며 안향 선생의 뒤를 이어 고려말 신유학

진흥에 힘 썼으며, 최초의 시조 탄로가 2수를 남김으로써 국문학사의 큰 획을 그었다.

선생이 감찰규정(監察糾正)에 있을 때 충선왕의 비행에 대해서 도끼를 둘러매고 상소를

올린 이른바 지부상소(持斧上疏)의 이야기는 사인암 석벽과 같이 우뚝한 선생의

기개를 잘 말해준다.

퇴계 선생은 역동서원을 창건하고 ‘충의대절(忠義大節)은 천지를 움직이고 경학의 밝음이나

진퇴의 정당함은 보통 사람들보다 뛰어나니 후학의 사범(師範)으로 백세의 묘향(廟享)을

받을 분’이라며 「역동서원기」에 적어 선생의 업적을 기렸다.

이 시조(時調)는 역동 우탁(易東 禹倬: 1262~1342) 선생께서 지으셨고 제목은 탄노가

(嘆老歌)입니다. 우리나라 시조역사를 말할 때 선생을 「시조의 중시조」라고

추앙하고 있습니다.

 

 

 

 

 

 

                                                      2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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