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기 등

보길도 여행-1

아름답지만~ 2019. 4. 9. 19:01

멀리 떨어져 있어 쉽게 찾기가 힘든 보길도, 하지만 윤선도의 정성과 열의가 깃든

이 곳은 봄이면 동백과 어우러진 모습, 가을이면 격자봉 자락의 단풍이 어우러져

세연정의 멋스러움이 한껏 뽐내는 곳이다. 2007•8년에 고교 동창들과 스타렉스로

들려본 이후 오랜만의 방문이다. 이번 코스는 우암 송시열의 글씐바위와 윤선도의

세연정 주변과 낙서재 주변에서 시간이 않되어 동천석실은 쳐다보는 것만으로 만족해

하며 17시 20분 배로 되돌아 나오니 나의 여행은 먼저 번의 반토막 여행인 셈이다.

 

 

 

 

 

 

 

 

 

 

 

 

 

보길도 윤선도 원림 종합안내(1.가산, 2.혹약암, 3.사투암, 4.세연정, 5.비홍교, 6.세연지, 7.방도,

8.서대, 9.회수담, 10.동대, 11.판석보, 12.옥소대)

보길도 윤선도 원림(甫吉島 尹善道 園林) 명승 제34호, 전남 완도군 보길면 부황리 220

보길도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역사유적이 잘 어우러진 명승으로 격자봉(해발 435m)을 중심으로 하여

북동쪽으로 흐르는 계곡 주변의 부용동 지역에 원림문화가 형성되었다.

고산 윤선도(1587~1671)는 해남에 있을 때 병자호란의 소식을 듣고 강화도에 도착하였으나, 인조는

이미 남한산성에서 적에게 항복한 이후였다. 이에 고산은 세상을 버리고 제주도(탐라)로 가는 길에

보길도의 경치에 취하여 이곳에 머물게 되었다고 한다. 고산은 보길도내 경관이 수려한 곳곳에 경처를

명명하고 그곳을 오가며 성정함양과 작품활동을 하였다.

또한 부영동은 그가 13년간 오가며 <어부사시사>등 시가를 창작한 국문학의 산실이기도 하다. 고산은

노년을 자연과 산수를 노래하다가 85세(1671)로 낙서재에서 일생을 마쳤다. 보길도 부용 동원림

(명승 제34호)은 세연정을 비롯하여 최근 복원된 곡수당,낙서재,동천석실 등에 고산의 경관 의식과

자연에 순응하는 전통적 조경수법이 내재된 조선시대 대표적 원림유적이다.

 

 

 

 

1. 다녀온 날: 2019년 3월 24일

2. 구경하기: 산양진항에서 송시열 글씐바위는 다소 외따른 곳이라 근 30분이나 걸려서

주차장에 도착하고 도보로 5분여 걸려 왕복 시간이 예상외로 많이 소요되고, 그곳의

경치와 조선 숙종에게 괘씸죄로 귀양 떠난 83세 노구의 넋두리를 보는 4 언 시구는

탁본 때문에 전의 바위 보다 먹물로 지저분해져 있었다.

 

 

 

 

 

되돌아 나오다가 예송리 상록수림은 그곳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다른 상록수림을 보는

것으로 대신하고, 부영동원림의 세연지와 세연정을 찾았다. 송시열 암각시문에서 40분이나

소요되어 시간이 없음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었다. 출입구가 변해버 린 부용동 원림에는

동백꽃이 자태를 뽐내며 피었고, 경내는 정돈이 잘 되어 있었 지만 물길이 빈약해 멋스러움을

반감시키고 있었다.

 

 

 

 

 

 

 

사투암(射投岩)[세연정 주변의 잘생긴 바위 일곱을 지칭하여 칠암(七岩)이라 불렀는데, 그 중 하나인

사투암은 ‘옥소대를 향하여 활을 쏘는데 발받침 역할을 하였다’고 전해지는 바위로 연 못쪽이 들려진

모습이다.들려진 부분에 발을 딛고 옥소대쪽 과녁을 향하여 활을 쏘았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2부로 이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