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기 등

남한산성 돌아보기-1

아름답지만~ 2020. 3. 20. 13:40

1. 서언(序言)

남한산성은 조선시대 뿐 아니라 삼국시대부터 천연의 요새로 중요한 역할을 하던 곳이다. 백제의 시조인 온조의

왕성이었다는 기록이 있고, 나당전쟁이 한창이던 신라 문무왕 12년에 한산주에 쌓은 주장성이라는 기록도 있다.

고려시대에는 몽고의 침입을 격퇴한 곳이기도 하고 일제강점기엔 항일운동의 거점이 되기도 한 곳이다.

그러나 남한산성은 주로 병자호란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조선 인조 14(1636)에 청나라가 침략해오자 왕은

이곳으로 피신하여 항전하였으나, 왕자들이 피신해 있던 강화도가 함락되고 패색이 짙어 지자 세자와 함께 성문을

열고 삼전도에 나가 치욕적인 항복을 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남한 산성은 패배를 알지 못하는 곳이다.

성의 외부는 급경사를 이루어 적의 접근이 어렵고, 내부는 경사가 완만하여 넓은 경작지와 물을 갖춘 천혜의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에, 병자호란 당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청군에 함락 당하지 않고 47일 이나 항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오랜 기간동안 우여곡절을 가진 성의 역사처럼 성곽의 형태 또한 단순하지 않아서 하나의

폐곡선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본성, 봉암성, 한봉성, 신남성과 5개의 옹성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구조이다.

인조 4(1626)에 중앙부의 가장 큰 폐곡선인 본성이 완성되었고, 병자 호란 이후 방어력을 높이기 위하여 동쪽의

봉암성, 한봉성 등을 비롯하여 여러 차례 증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안내판 글 인용)




동문(좌익문)에서 남문으로 이어지는 곳의 암문이 보이고, 장경사신지옹성으로 향하는 산성길


위는 좌측 안보아는 곳에는 장경사 주차장이 있는 곳의 컨테이너이고, 아래는 뒤돌아 본 동문에서 장경사 사이의 산성길


장경사신지옹성에서 본 남한산성의 옛 성벽, 아래는 동장대터 주변의 고목과 지면으로 솟은 뿌리


여장 너머로 보이는 봉암성으로 이어진 성곽길, 아래는 지나온 산성줄기


벌봉은 이정표 이외는 표시된게 없으니, 아래는 벌봉 근처라고 생각해 본 곳



지도를 가지고 돌아본 곳을 청색선으로 표시해 본 것임니다.


위는 연주봉옹성으로 이어지는 성벽이며, 아래는 수어장대

아래는 수어장대를 지나 남문으로 향하는 안부의 성벽을 담았습니다.

2. 다녀온 날: 2020313일 목요일

3. 여정의 요약: /09:10-구산성지 주차장 /10:20~10:45(55km)-남한산성공영주차장 /11:20~16:14(22km)-

                  /17:40(36km)   [총거리: 113km, 점심(동문집)<곤드레밥>/20,000]

4. 산성 돌기 요약:

동문(좌익문)/12:18-송암정터/12:28-1암문/12:38-2암문(장경사신지옹성)/13:00-군포지 /13:11-동장대터/

13:14-3암문/13:16-봉암성(외동장대터)/13:33-4암문(2군포지)/13:57-1군포지 /14:05-북문(전승문)/

14:17-북장대터/14:26-5암문(연주봉옹성)/14:39~14:48-서문(우익문)/15:02-수어 장대/15:13~15:20-6암문/

15:23-남문(지화문)/15:50-주차장/16:14(3시간56)

위 동문


장경사를 지나며 뒤돌아보고, 장경사신지옹성


장경사신지옹성에서 본 앞으로 가야할 산성길과 한참 올라 뒤돌아본 장경사신지옹성



동장대터(東將臺址)

장대란 지휘와 관측을 위해 군사적 목적으로 지은 누각 건물로 남한산성에는 5개의 장대가 있었다.

이곳은 동장대가 있던 곳으로 성 동쪽에 있다하여 동장대라 불린다. 이 곳에는 남한산성에 주둔하던 수어청에

소속된 5명 중 좌영장을 지휘하던 곳이다. 동장대는 인조 2(1624) 산성 수축시에 설치되었고 누각도 함께

건립되었으나 18세기 초에 붕괴된 것으로 보인다. 18세기 중엽에 이르러 남장대와 서장대는 다시 수축하였으나

북장대와 동장대는 다시 짓지 않았다. 한봉성과 연주봉옹성의 축성으로 동장대나 북장대는 상징적인 의미만

있을 뿐 군사적인 실효성이 없어졌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봉암성으로 이어지는 아직 보수되지 못한 산성

외동장대터(外東將臺址)

장대란 지휘와 관측을 위해 군사적 목적으로 지은 누각 건물로 남한산성에는 5개의 장대가 있었다.

이 곳은 외동장대가 있었던 곳으로 동장대와 벌봉 일대를 조망할 수 있다. 외동장대는 조선 숙종 12(1686)

윤지선이 수어청 군사를 동원하여 봉암성을 축성할 때 함께 건립한 것으로 추측되며 군사들이 진을 치고

훈련하던 곳으로 보인다. 고지도를 보면 다른 장대와 달리 외동장대는 누각에 관한 기록이나 표시가 없어

처음부터 누각이 없이 축대만 설치한 것으로 추측된다.

외동장터, 제3암문



2군포터(軍舖址)

군포는 성을 지키기 위한 초소 건물이다. 중정남한지(重訂南漢志) 기록에 의하면 남한산성 내에는 125개 소의

군포가 마련되어 있었다. 현재는 한 군데도 남아있지 않고 그 비돌만 남아있다. 근처의 수구지 발굴 조사

과정에서 나타난 이 군포는 시기가 서로 다른 2동의 건물이 겹쳐 나타났다. 고증을 통하여 현재와 같이 정비하였다.

제4암문



이번에 성곽길을 표시해 봄니다.








수어장대와 영춘정




                                                  다음으로 이어서 2편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