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기 등

파주여행 (2020.06.10.)-2

아름답지만~ 2020. 6. 14. 13:43

호로고루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 1257-1

호로고루는 임진각 북안의 현무암 절벽 위에 있는 성이다. 호로고루(瓠蘆古壘)라는 명칭은 일대의 임 진강을 삼국시대부터 호로하(瓠蘆河)라 불렀던 데서 유래되었다. 성의 둘렝는 401m로 크지 않지만 특이 하게도 남쪽과 북쪽은 현무암 절벽을 성벽으로 이용하고 평야로 이어지는 동쪽에만 너비 40m, 높이 10m, 길이 90m 정도의 성벽을 쌓아 삼각형 모양의 성을 만들었다.

한강유역에서 후퇴한 고구려는 6세기 중엽 이후 7세기 후반까지 약 120여년 동안 임진강을 남쪽 국경 으로 삼았는데, 임진강 하류에서부터 상류 쪽으로 덕진산성, 호로고루, 당포성, 무등리 보루 등 10여개 의 고구려 성을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하였다. 그중 호로고루는 고구려 평양성과 백제 한성을 연결하는 간선도로상에 있을뿐 아니라 말을 타고 직접 임진강을 건널 수 있는 길목을 지킬 수 있었으므로 고구려 의 남쪽 국경방어성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였을 것르호 추정된다.

지금까지 수차에 걸친 발굴조사 결과 성 내부에서 건물지와 수혈유구, 대규모 석축집수지, 우물, 목책 등 다양한 유구와 연화문와당, 치미, 호자(虎子), 벼루 외에도 많은 양의 고구려 토기와 기와가 출토되 었다. 이것은 화려한 기와건물과 상당히 높은 신분의 지휘관이 호로고루에 상주하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해 준다.

연천관광지

A4열쇠전망대, B5고대산, C3태풍전망대, C3임진강평화습지원, C3허브빌리지, C3연강갤러리, C5재인폭포,

D3연천숭의전, D4전곡선사박물관, D4한탄강관광지, D4연천전곡리유적, D3임진강주상절리,

D4아우라지베게용암, D2연천경순왕릉, D2연천호로고루,

북한군 묘지(北韓軍 墓地)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답곡리 산56-1

1묘역, 2묘역, 화장실, 주차장,

이곳은 6.25전쟁(1950. 6.25~1953.7.27.)에서 전사한 북한군과 중국군 유해, 6.25전쟁 이후 수습된

북한군 유해를 안장한 묘지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제네바협약과 인도주의 정신에 따라 19966월에 묘지를 조성하였으며,

총면적은 6,0991묘역과 2묘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2묘역에 안장되었던 중국군 유해 541구는 총 3(2014.3.28.~2016.3.31.)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황복 1kg에 16만원이다.
위 글 보고 몇 번 지나치다가 어항을 들여다보니 과연 큰놈이다.

메기의머리 부분이 위, 아래는 꼬리 부분, 다음 아래는 몸통 부분임.

황희선생 유적지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 산127

이 곳은 조선초기 명재상이며 청백리의 귀감인 방촌 황희(厖村 黃喜: 1363~1452)선생의 유적지이다. 선생의 자는 구부(懼夫), 호는 방촌(厖村), 본관은 장수(長水)로 개성에서 태어났으며 판강릉대도호부사 군서(君瑞)의 아들이다. 1392년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에 은거하다 조선 조정의 요청으로 관직에 나오게 되었다. 선생은 고려말기부터 조선초기의 여러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문물과 제도의 정비에 노력했고 세종연간에는 19년간 의정부 최고의 관직인 영의정에 재직하면서 세종성세에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인물 로 평가되고 있다. 문종 2(1452)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탄현면 금승리 선영에 예장하고 세 종 묘정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익성(翼成)이다.

유적지내에는 선생의 유업을 기리기 위하여 세조 1(1455) 후손들에 의해 건립된 황희선생 영당과 선 생이 관직에서 물러난 후 여생을 보낸 반구정이 위치하고 있다.

본래의 영당 건물은 6.25전쟁 때 전부 불탓으나, 1962년 후손들이 정면 3칸 측면 2칸의 초익공양식의 맞배집으로 복원하였고 영당 내부 중앙에 별도의 감실을 두고 선생의 영정을 모셨다.

반구정(伴鷗亭)은 임진강이 내려다보이는 기암 절벽 위에 위치하는데 예로부터 갈매기가 많이 모여 들 어 갈매기를 벗삼는 정자라는 뜻에서 이름 지었다. 정자내부에는 미수 허묵의 반구정기(伴鷗亭記)와 여러 개의 중수기(重修記) 편액이 있다.

이외에도 월헌공 황맹헌 선생 부조묘, 앙지대(仰止臺), 경모재(景慕齋), 방촌황희선생동상 등이 있으며 입구에는 황희 선생의 업적과 유품을 전시한 방촌기념관이 있다.

신삼문(神三門)

신문을 셋으로 나누어 만든 것은 신의 출입과 사람의 출입을 구분하기 위함이다. 3문 중 중앙은 신문 (神門)이고 양쪽의 문은 인문(人門0이라 합니다. 신문은 항상 닫아 두는 것이 상례이고, 인문은 열어 두 어 일반 참배객의 내왕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신문은 춘추 제향이나 삭망(朔望)때 열어서 헌관(獻官)만 출입하고, 일반 제관은 동문으로 들어가서 서문으로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반구정(伴鷗亭)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2,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 산127

조선 초가의 명재상이며 청백리(淸白吏)의 귀감인 방촌 황희(厖村 黃喜: 1363~1452)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나 여생을

보내던 곳으로, 예로부터 갈매기가 많이 모여들어 갈매기를 벗삼는 정자[반구정(伴鷗 亭)]’라고 이름 지었다. 반구정은

임진강이 내려다보이는 기암 절벽 위에 위치하고 있는데, 푸른 물이 굽 이쳐 흐르고 송림이 울창하여 좋은 풍경을

이루고 있다.

미수 허목(眉叟 許穆)선생이 지은 반구정기(伴鷗亭記)를 보면 정자는 파주 서쪽 15리 임진강 아래에 있고

조수 때마다 백구가 강 위로 모여들어 들판 모래사장에 가득하다. 9월이면 갈매기가 손으로 온다.

서쪽으로 바다는 30리이다.”라고 묘사해 놓았다.

내부에는 반구정 중수기(伴鷗亭 重修記)반구정기(伴鷗亭記)그리고 한글로 옮겨진 반구정 중건 에 붙이는 글등 여러 개의 편액이 있다.

방촌 황희선생상(厖村 黃喜先生像)

방촌선생의 모습을 형상화 해 세운 동상이다. 동상 좌대에는 황희선생이 1423(세종 5) 감사 재직시 남긴 유묵이 음각되어 있다.

관풍루(觀風樓)

헌고능각서(軒高能却暑) 첨활역위풍(簷豁易爲風)

노수음수지(老樹陰垂地) 요잠취소공(遙岑翠掃空)

집이 높으니 능히 더위를 물리치고 처마가 넓으니 바람이 통하기 쉽네

큰 나무는 땅에 그늘을 만들고 먼 산 봉우리는 푸르게 하늘을 쓰는 것같네

소양공 월헌 선생 부조묘(昭襄公 月軒 先生 不祧廟)

선생(先生)의 휘()는 맹헌(孟獻), ()는 노경(魯卿), ()는 월헌(月軒)이고, 영의정(領議政) 방촌 선생(厖村 先生)의 현손(玄孫)이다.

서기(西紀)1472 성종(成宗) 임진(壬辰)에 출생(出生)하시고 1498[연산(燕山)]4년 무오(戊午)에 급제등 과(及第登科)하시다. 1506[중종 원년 병인(中宗 元年 丙寅)] 중종반정(中宗反正)에 공()을 세워 분의 정국공신(奮義靖國功臣)으로 책봉(冊封)되시다. 호조(戶曹),형조(刑曹),공조(工曹),예조(禮曹),참판(參判) 및 강원(江原),경기(京畿) 관찰사(觀察使)를 역임(歷任)하시다. 1524년 중종(中宗) 19년 갑신 장원군(甲申 長 原君)으로 책봉(冊封)되시고 예조판서(禮曹判書),한성판윤(漢城判尹)을 역임(歷任)하시다.

1535[중종(中宗)30년 을미(乙未)] 10964세로 서거(逝去)하시다. 1566[명종(明宗)21년 병인(丙 寅)] () () 소양(昭襄)으로 명사(命賜)하시고 부조묘(不祧廟)로 봉안(奉安)되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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