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신자인 천주교 성지는 나의 종교와는 연관성은 없으나 왠지 불교와는 대척지지 않는 관계인지 무리없이 방문을 하게 된다. 물론 아내와 함께 움직임이 전제 되지만, 감곡성당이 금년 4월이고, 해미읍성은 금년 9월경 다녀온 지각 게재되는 글이며, 요당리도 10월 4일 방문한거 올리는 글입을 양지하세요.
이곳 요당리 성지는 복음이 언제 전파 되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신유박해(1801년)를 기점으로 서울과 충청도 내포 등지의 신자들이 피난하면서 형성된 교우촌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교우촌은 양간공소라 불리며 갓등이(현재의 왕림)와 은이공소(현재의 양지)와 깊이 연관되어 활발하게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울러 바닷물이 유입되어 뱃길이 열렸던 이곳의 지리적 특성상 충청도와 경기도 내륙, 서울을 잇는 선교루트의 교두보 역할을 하였던 곳으로 추정되고 있을뿐 아니라, 기해년(1839년)과 병인년(1866년)에 일어난 두 번의 박해를 통해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로 하느님을 증거한 신앙의 요람지였습니다. 이런 유서깊은 곳이었기에 이곳에는 다음과 같은 성인들과 순교자들의 얼이 서려 있습니다. 첫째, 장주기(요셉,1803-1866)성인과 124위 복자중 한분이신 장토마스(1815-1866)의 출생지이자 신앙의 터전이었고, 이곳 출신으로 하느님의 종지 다태오(1819-1869)와 순교자 림 베드로, 조명오(베드로), 홍원요(카를로)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울러 장주기(요셉)성인의 친척이자 이곳 출신 순교자로 추정되는 장경언,장치선,장한여,방씨 등이 있습니다. 둘째, 교회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전답이 운영되었던 곳으로 그 책임을 맡았고 끝네는 순교하신 민극가 (스테파노,1787-1840)성인과 이곳에서 공소회장을 맡으며 신앙전파에 힘쓰다 순교하신 정화경 (안드레아,1808-1840)성인께서 활동하셨던 곳입니다. 셋째,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피신하셨다가 순교하신 주교 앵베르 범(라우렌시오,1796-1839)성인과 이분의 피신을 돕다가 순교하신 손경서(안드레아,1799-1839)순교자의 얼이 서려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요당리 성지는 이러한 역사적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장주기(요셉) 성인의 출생지이고, 예전부터 교우촌이 형성되어 있었던 곳이다’라는 정도로 치부되어 많은 이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점을 안타깝게 여겼던 수원교구 최덕기(바오로)주교는 2006년 9월 26일 성지 전담 사제를 파견함으로써 성지개발에 대한 의지를 대내외적으로 천명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