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산 성지는 1791년 제사 문제로 촉발된 진산사건(신해박해)으로 한국 최초로 순교한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를 기념하는곳이다. 조선 후기 천주교회는 미신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던 제사를 금지하였고,
그 가르침을 따른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의 실천 때문에 박해가 일어났다. 그들의 제사 거부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행동이었기에 이를 계기로 전국적인 박해가 있었다.
불효의 죄로 체포된 윤지충은 “어머니의 유언에 따른 형벌과 죽음을 각오하고 덕을 쌓는 것이 효성이 부족한
것입니까?”라고 항변하였고, 천주교를 버리라는 말에, “만약 제가 높으신 하느님 아버지를 버린다면, 살아서든
죽어서든 어디로 갈 수 있겠습니까”하고 대답하였다. 그와 그의 외사촌 권상연은 전주에서 처형되어 참수로
치명한 첫 순교자들이 되었다.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에서 거행된 124위 시복식에서 윤지충은 대표 순교자가 되었다. 진산성지는 세복자 (윤지충 바오로, 권상연 야고보, 윤지현 프란치스코)의 고귀한 정신과 신앙을 기리며 같은 동네에서 거주하다
1866년 병인박해 이후 순교한 김영오, 김영삼, 김요한, 김춘삼 등 네분의 순교자들도 함께 기리고 있다.
진산성지성당은 2017년 5월 29일 국가 지정 등록문화재(제682호)로 등록되었습니다.
진산성지 순례길
Guide map[A 장태산→B막현리→C지방2리→D진산성지
장안 진산 성지순례길 유래
조선후기 천주교 박해시대 진산면 지방리는 공재 윤두서의 증손자 윤지충과 무수옹 권기의 고손자 권상연의
생거지였다. 윤지충이 고종사촌 정약전과 정약용의 안내로 한국 천주교 창설기에 입교하자 권상연이 그를 따랐다. 1791년 유생(儒生)인 두 사람은 유교식 조상제례를 지키지 않고 천주교식 조상제례를 따름으로 처형되어 한국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
그 후 지방리 근동(近洞)과 인접한 서구 장안동 산골짝이에는 윤지충, 권상연의 유지를 따라 천주교 신자들의
공동체가 꾸준히 형성되었다. 산막동에 살던 김유산은 성직자 영입을 위해 북경을 두 차례나 왕래하였고, 그 죄로 1801년 전주에서 처형되었다. 당시 진잠 장안동 신도회장 한재권(여셉)과 손선지(베드로) 그리고 정원지(베드로)는 전북 완주군 소양면 신리골과 성지동으로 이거하여 살다가 1866년 12월 13일 전주에서 순교하였는데 1984년
모두 성인품에 올랐다. 박해가 가장 치열했던 1866년 바랑골에서는 전자연(바오로), 이 바오로, 강순지(요셉),
김 스티니슬리오, 그리고 오리골에서는 김선양(요셉)이 체포되어 공주에서 순교하였고, 정희철(요셉)은 1878년
체포되어 서울에서 순교하였다. 이처럼 장안동 산골짝이는 순교자들의 땅이었으며, 금산군 진산면 지방리
(진산성지)로 연결되는 고갯길은 지역민들과 천주교인들이 왕래하였던 길로, 후손들에게 순례길로 역사성과
문화유산으로 널리 알려지고 있다.
※메타세콰이아 숲으로 유명한 장태산자연휴양림에서 시작하여 양골과 시계능선, 막현리 삼거리, 지방교를 거쳐 진산성지까지 4km를 도보순례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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