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

은총의 성모님 발현지와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6-2

아름답지만~ 2024. 4. 16. 10:39

남들 다 휴식하는데, 발바리로 대충 한바퀴 돌고와 일행과 어울려 로사리오 기도를 하며 돌아보았다.

노숙자 예수님 상은 심심치 않게 보인다이스라엘에서도 보았는데~

묵주기도하며 이곳 저곳을 설명해 주고 성삼위일체 성당으로 향한다.

성삼위일체 성당 입구에는 여러 나라 글씨가 있는데 한국 말로도 기록되어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기를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이야기하고 창공은 그분 손의 솜씨를 알리네

다른 곳으로 이동하며 동상을 보고 소나무가 잘 가꾸어진 옆을 따라 발현성당 쪽으로 향한다.

바오로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브레시아 주의 콘체시오의 마을에서 1897926일 태어난 바오로 세의 본명은 조반니 바티스타 엔리코 안토니오 마리아 몬티니(이탈리아어; Giovanni Battista Enrico Antonio Maria Montini)이다. 1954년 밀라노 대주교로 대교구장으로 서품되었다.

262대 교황(재위: 1963621~197886)으로 선출되었으며 로마카톨릭 성인이다.

바오로 6세는 전임 교황의 유지를 이어받아 교회의 쇄신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하였고, 대한민국 순교자 24위를 추가로 시복하고 김수환(스테파노) 대주교를 한국인 최초의 추기경에 서임하기도 하였다.

교황 바오로 6세는 교황직의 제왕답고 호화로운 요소를 멀리 하였으며, 교황관을 쓴 마지막 교황이었다. 스위스 근위대만 유일하게 바티칸의 무력단체로 유지한 채 팔라티우스 근위대와 귀족 근위대를 해산하였다.

교황 바오로 세는 6대륙을 방문한 최초의 교황이면서 그 당시 역사상 가장 장시간 여행한 교황으로서, 그 덕분에 순례자 교황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by 위키백과)

요한 바오로

폴란드 출신 카롤 유제프 보이티와(1920518~200542)은 폴란드 추기경으로 제264대 교황(19781016~200542)으로 선출되었다. 이탈리아계가 아닌 교황의 선출은 1523년 네델란드 출신 교황 하드리아노 세 이후 455년만의 사건이었으며 당시 공산 국가인 폴란드에서 교황이 탄생한 것은 현대사에서 큰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교황 요한 바오로 세의 탄생은 냉전 체제하에서 교회가 세계에 던진 화해와 평화의 전조 였으며, 교황 자신도 동서 냉전의 빙하를 녹이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교황은 즉위 이듬해인 1979, 83, 87년 및 97년 폴란드를 방문했고, 1990년에는 체코슬로바키아, 19981월에는 쿠바를 사목순방했다.

1981513일 튀르키예인 청년 메흐메트 알리 아자의 흉탄에 맞아 심각한 상처를 입었으나 대수술후 4일 만에 의식을 회복했으며, 1984년 한국에 카톨릭교회가 전래된지 20년이 되었음을 기념하기 위해 방한해 순교자 103명을 시성하였다. (by 위키백과)

성모 마리아 발현성당에 잠시 멈춰 발현성당의 역사와 지금의 모습 등을 설명했다. 성당 내 소성당은 발현 당시 나무가 서 있던 자리라고 합니다.

발현성당을 지나 파티마 대성당(로사리오 대성당)을 들려 세 목동의 무덤도 보고나와

서편 익랑의 경사로를 묵주기도를 하며 이동하고

동쪽 익랑을 거쳐 365일 예수탄생 구유에 들리고, 베르린 장벽을 보존한 곳으로 향했다.

멀리 본 성모님 발현성당과 예수 성심탑

베르린 장벽을 보존한 곳에서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를 찾아본다.

성지순례의 글 6-2를 여기서 마침니다. 6-3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