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법주사(法住寺): 경상북도 군위군 소보면 달산리 (Tel: 054-382-4618)
신라 소지왕때 심지왕사 또는 은점조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고려시대 보조국사가 이곳에 주석했으며, 일연대사가 총림을 설치했다는 기록도 전한다. 현재는 비구니 스님의 수행도량이다.
법주사의 왕맷돌과 법주사 오층석탑
※ 법주사 왕맷돌<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12호/ 군위군 소보면 달산리>
이곳 법주사는 신라시대에 창건할 당시에는 규모가 대단히 컷으나 그후 소실되어 약300년전 에 소규모로 중건되었다고 전한다.
왕맷돌은 이 절 남쪽200m가량 떨어진 밭두렁에 반쯤 묻혀있던 것을 50년전에 신도들이 이곳 에 옮겨놓은 것이니 필경 옛 법주사 요사 가까이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암돌, 숫돌 모두 지름115cm, 두께15.5cm로 위쪽에서 옆쪽으로 나 있는 구멍에 줄을 매고 거 기에 굵은 나무를 꽂아서 돌린다. 현재 국내에서는 가장 큰 맷돌인데 이러한 구멍난 맷돌은 중앙아시아의 여러나라에서 간간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고대로부터 널리 쓰였던 것으로 추 정된다.
※ 법주사 오층석탑<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7호/ 군위군 소보면 달산리773>
이 탑은 보광전(普光殿) 앞의 통일신라시대 탑으로 이중(二重)기단 위에 쌓은 높이3.56m의 오층석탑이다. 상층기단과 상대덮개돌 및 4층 이상의 몸돌과 지붕돌은 유실되었다. 하층기단 덮개돌에는 2단의 굄이 있어 상대중석이 놓였던 흔적이 있다. 초층에서 3층까지의 몸돌 및 지붕돌이 같은 양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붕돌 상면에는 굄이 없고 낙수면이 깊고 전각은 경 미한 곡선으로 되어 있다. 4층과 5층의 몸돌에는 모서리 기둥이 없고 지붕돌의 양식도 다른 점 등으로 보아 4층 이상의 부재는 이후에 보충한 것으로 보인다.
신축중인 법주사의 또다른 건물과 빙계계곡의 모습
11) 빙계계곡(氷溪溪谷):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리 (Tel:054-832-9717)
군립공원으로 경북8승의 하나로 빙혈(氷穴)과 풍혈(風穴)이 있어 여름에는 찬바람이 나오고 겨울에는 더운 김이 솟아나는 신비의 계곡이다. 특히 여름에 피서객이 많이 찾고 있으며, 산 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북두산•선암산 산행을 함께할 수 있다.(약 2시간 반)
의성 빙산사지의 오층석탑과 빙혈입구
※ 의성빙산사지오층석탑(義城氷山寺址五層石塔)<보물 제327호/의성군 춘산면 빙계리 산70>
이 탑은 통일신라 말 고려초의 5층 석탑으로 높이는 8.15m이다. 한 변이 4.06m인 지대석과 단층기단 위에 모전석탑(模塼石塔)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규모가 작고 부분적으로 생략된
곳이 있어 의성탑리오층석탑을 그 모범으로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본래 이곳에는 통일신라시 대에 세워진 빙산사(氷山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며, 주변에는 석축과 주춧돌, 그리고 기와조 각들이 남아 있다. 탑의 정북쪽에 50평 규모의 금당(金堂)이 있었다고 하는데, 조선 태종(太 宗)6년(1406)에 왕명으로 절을 폐사시켰다고 한다.
탑 전체의 파손상태가 심하여 1973년 완전히 해체, 복원하였는데 그때에 3층 지붕돌 속에서 금동사리 장치가 발견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하고 있다.
빙혈입구의 옆에 있는 감실불좌대와 빙혈내부의 바닥얼음
※ 빙계서원(氷溪書院)<의성군 춘산면 빙계리 산73-1번지>
이 서원은 조선 명종11년(1566)에 매당(挴堂) 신원록(申元祿)이 창건하여 모재(慕齋)김안국 (金安國)을 봉향하였다. 창건시에는 의성읍 장천(현 남대천 상류)에 위치하여 선조9년(1576) 장천서원으로 사액을 받았다. 선조33년(1600) 학동(鶴洞)이광준(李光俊)이 춘산면 빙계리로 이건 후 회재(晦齋)이언적(李彦迪)을 합향하여 빙계서원으로 개칭하고 서애(西厓)유성룡(柳成 龍), 학봉(鶴峰)김성일(金誠一), 여헌(旅軒)장현광(張顯光)을 추향하여 오다가 대원군의 전국서 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다. 2002년 유교문화권 관광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착공한 복원공사 가 2006년 5월 완공됨에 따라 지역유림이 뜻을 모아 이건의 공적을 기려 학동(鶴洞)이광준 (李光俊)을 추향하므로서 6현을 봉향하고 있다. <2006. 5 의성군수>
빙계게곡의 안내도와 빙계서원의 입구 건물 빙월루
빙계서원과 문건너로 보이는 숭덕사 모습
12) 산운(山雲)마을: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산운 1리
산운마을은 의성에서 대감마을로 불리는 전통반촌(傳通班村)으로 자연경관이 수려한 영천이씨 (永川李氏)집성촌이다. 마을은 수많은 전설을 간직한 금성산(金誠山)을 뒤에 비봉산(飛鳳山)을 옆에 두고 나지막한 구릉과 평지에 자리 잡고 있다. 마을 이름은 신라시대 불교가 융성할 때 에 수정계곡(水淨溪谷)아래 산과 구름이 조화를 이룬 상서로운 기운이 일어 산운(山雲)이라 하였다는 데에서 비롯되었다.
마을의 역사는 조선 명종때 영천 이씨가 처음 입향하였고, 그 입향조는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학동(鶴洞)이광준(李光俊)(1531~1609)선생이다. 이후 이 마을에서는 이민성(李民宬)(1573~
1629)참의, 이민환(李民寏)(1573~1649)참판, 이희발(李羲發)(1768~1850)판서, 한일합방시 애국지사로 건국공훈을 세운 이태직(李泰稙)(1878~1913)등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문화재로는 중요민속자료 제237호로 지정된 소우당(素宇堂)을 비롯하여,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42호로 지정된 학록정사(鶴麓精舍),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74호로 지정된 운곡당(雲谷 堂) 및 제375호로 지정된 점우당(慚于堂) 등 40여동의 전통 고가옥이 유존하고, 금성산과 비 봉산이 만나는 절경 계곡에는 의상조사가 창건한 유서깊은 고찰 수정사가 있다.
산운생태공원에서 그네, 산운전통마을의 가옥모습
※ 의성 소우당(義城 素宇堂)<중요 민속자료 제237호/의성군 금성면 산운리 171-3>
이 건물은 소우(素宇)이가발(李家發)이 19세기초에 건립하였고, 안채는 1880년대에 고쳐지었 다고 전한다. 나지막한 구릉과 평지에 자리잡고 있는 이 마을은 조선 명종(明宗)년간에 영천 이씨(永川 李氏)가 처음 고향에 들오와 집성촌(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가옥은 ‘ᄀ’자형 안채와 ‘ᄂ’자 형 사랑채가 안마당을 감싸고 있어 ‘튼ᄆ’자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남측 전면에는 ‘일ㅡ’자형 문간채가 있고 문간채의 서쪽에는 외측간이, 안채의 북서쪽에 는내측간이 있다. 안채, 사랑채 일곽(一郭)의 서쪽으로는 별도의 담장을 돌려 공간을 형성하고 원림(園林)을 조성하였다. 원림 중앙부에는 안사랑채 또는 별당(別堂)으로 불리는 건물을 배치 하고, 그 남쪽으로는 연못과 수림(樹林) 및 보도(步道)를 조성하여 정원(庭園)으로 꾸몄다.
19세기 상류가옥의 멋과 함께 별서건축(別墅建築)의 귀중한 연구자료가 되고 있다.
소우당과 다른 가옥모습
소우당의 원림에서
※ 의성 운곡당(義城 雲谷堂)<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74호/의성군 금성면 산운리 158>
이 건물은 현 소유주 이목의 5대조인 운곡(운곡)이희발(이희발)(1768~1859)이 영월부사로 재 직하던 1800년대 초기에 건립하였다고 전하는 집이다. 북쪽에 솟은 금성산을 뒤로하고 남동 쪽으로 향하고 있다. 안채에 사랑방 고방 등이 한 동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평면구성은 ‘ᄆ’자 형인데 앞채의 좌우에 전면으로 나와 있어 날개집의 한 유형에 속한다. 안채의 왼쪽 뒤쪽에는
사당이 있고 문간채는 한말에 소실되었다. 평면 형태는 ‘ᄃ’자 형태의 안채와 그 앞 좌측에
‘ᄀ’자 형의 사랑채, 우측의 ‘ᄀ’자형의 고방채는 중문간을 통해 연접되어 ‘ᄃ’자 형을 이루어 안채와는 상하 병렬로 연결되어 있다.
1920년대에 일부개축되었으나, 이 마을의 고가옥 중 대표적인 건물이라 볼 수 있다.
※ 의성 잠우당(義城 慚于堂)<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75호/의성군 금성면 산운리 157>
이 건물은 현 소유주 이병직의 증조부인 죽파(竹坡)이장섭(李章燮)이 1900년경에 거립하였다 고 전하는 가옥이다. 영천 이씨들이 모여사는 마을 입구 평지에서 남서쪽을 향하고 있으며, 서북쪽으로는 운곡당과 담장을 공유하고 있다. 안채는 사랑채와 연결되어 ‘ᄃ‘자 형의 평면을 이루었고, 맞은 편에 ‘ㅡ’자형의 헛간채가 있어 ‘튼ᄆ’자형의 평면배치를 하고 남동쪽으로는 대문채가 자리하고 있다. 평면구성이나 목구조 기법에서 특이한 점은 보이지 않으나, 부근에 운곡당, 소우당 등이 인접하고 있어 여러 세대가 함께 모여살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예가 되 고 있다.
깨끗이 정돈된 전통가옥과 뒤로 금성산이 보이고, 점우당의 모습이 보인다.
13) 의성 금성산 고분군(義城 金城山 古墳群): 경상북도 기념물 제128호,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탑리리,학미리 일원
이 고분군은 대리리(大里里), 탑리리(塔里里), 학미리(鶴尾里)일원에 소재하며 전(傳)조문국(召文 國) 경덕왕릉(景德王陵)을 비롯한 약200여기(基)가 분포하고 있다. 삼한시대의 부족국가인 조문 국(召文國)의 도읍지인 이곳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조문국은 삼한시대에 소국으로 성립되 었으며, 신라 벌휴왕(伐休王)2년(185)에 신라의 영향권으로 편입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조문국 의 역사와 문화를 설명하기에는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1960년부터 국립중앙박물관의 경희대•경북대박물관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는데 그 결과 앞트 기식(橫口式)내지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과 변형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이 확인되었 다. 출토유물로는 신라토기 가운데 지역색을 강하게 나타내는 ‘의성양식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금동관•금동관장식품•금동제귀걸이 등의 화려한 장신구(裝身具)와 함께 철제 무기류, 마 구류 등이 있다. 현재 이 유물들은 국립 대구박물관과 경북대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의성군 금성면 일대는 오랫동안 조문국의 도읍지로 알려져 왔으며, 이곳에 소재하고 있는 고분 들을 통해 의성지역 지방세력과 사회구조 및 의성지역과 신라와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을 것으 로 기대된다.
의성군 관광안내도, 조문국의 고분군들
고분군들의 모습들
제5편으로 넘겨서 기록을 하렴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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