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기 등

외도 등 여행(거제, 통영, 산청, 함양, 남원)-6

아름답지만~ 2012. 12. 1. 16:09

 

<2012년11월 5일~11월 8일>-지리산빨치산토벌전시관~함양상림

⑻ 지리산 빨치산토벌전시관

우리 민족 최대의 비극 6.25전쟁은 많은 인명의 손실을 가져왔으며, 지리산에서 활동한 빨치산은 또다시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다. 이에 빨치산들의 생활상과 군경의 토벌상황, 그리고 인근 양민들의 고통 현장을 전시하여 후손들에게 알리려는 목적으로 기념관을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의 선배들이 고생한 보람도 없이 세대간 혹은 이념적인 차이로 빛을 발하지 못하는 장소로 전락한 모양이었다. 다소 부실한 전시도 운영을 어렵게 하는 요인인지는 모르지만, 보다 많은 자료와 실감나는 모형물의 전시 등 개선과 홍보가 병행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이다.

                         지리산빨치산토벌전시관의 입구와 민가아지트(1963년11월12일 마지막 빨치산인 이홍이 사살, 정순덕 생포로 종식)

                                                                          초막아지트와 순두류아지트의 재현된 모습

이 전시관이 위치한 산청군 시천면 지리산대로 536(중산리 519-2)는 산악인들이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기 위해 최단거리로 이용되는 곳이며, 이렇게 깊은 골짜기에 국영기업체들의 연수원이 들어서 있다는게 그렇게 보기가 좋지는 않았다.

                                                    경찰관 권영도의 흉상과 중산리에서 나오다가 가지가 찟어질 정도의 감나무

④경위 권영도(警衛 權永道:1926. 7.27~1952. 7.13)

권영도 경위는 1949년 3월20일부터 산청군 금서면 면사무소 서기로 근무하면서 지역 향토방위대원으로 공비소탕 작전에 참가하였고, 1951년 1월 1일 산청군 금 서면 방곡리 하천에서 매복 중 공비 7명을 사살하였으며, 2월10일 경남경찰청 관 내 서하특공대에 입대하여 11월 9일 산청군 국수봉 전투에서 적 게릴라 150명과 접전 중 결사대를 조직, 23명의 적을 사살하고 다수의 장비를 노획하는 등 11여 회의 대소작전에 참가하여 큰 공을 세워 1951년12월21일 순경으로 특채되었다.

1952년 7월13일 웅석봉 일대에서 공비 이영희 부대 주력이 준동하고 있어 전투 경찰대가 수차 공격했으나 오히려 역습을 당하여 실패함에 따라 특공조장으로서 5 명의 특공대원을 선발하여 본인이 인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적의 요새로 포 복 접근 중 5부 능선에서 대원 3명은 중경상을 입어 포기하고, 정상수 순경과 함 께 8부 능선까지 접근하여 요새를 공격, 적을 섬멸하였으나 본인 또한 적의 집중 사격을 받고 26세의 나이에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정부는 6.25전쟁 중 게릴라 소탕에 큰 공을 세운 공적을 기려 순경에서 경위를 추서하였고,1952년 4월10일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하였으며, 6.25전쟁 호국인물 100인으로 선정하였다.

                                                           지리산빨치산토벌전시관의 풍경과 탐스럽게 달린 감

⑼ 함양 상림 등

함양읍 들어가는 길을 놓치고 한참을 돌고 달려 들어간 함양읍은 소도시의 분위기를 한껏 발휘하는 듯 했다. 읍으로 진입하며 상림은 어느 정도 달려가면 있으리라는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넓은 주차장과 넓은 산책로는 외지에서 온 사람에게는 아늑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마음껏 발휘하는 듯 했다.

                                        위천의 산책길에서 본 상림과 좌측에는 군민의 종과 종각이 있다. 아래는 군민의 종각에서 본 상림

역사와 전통을 업고있는 넓은 수목지대는 함양읍에 거주하는 사람이 얼마나 복을 많이 타고난 사람인가 절로 샘이 솟아나게 한다. 어둠이 드리운 이곳은 다음날 다시 둘러 보리라 마음 먹고 숙소를 잡고 저녁을 먹은 후 내일의 계획을 세워본다.

                                                연리목(느티나무와 개서어나무가 합쳤다)과 상림내의 붉게 물든 적단풍

아침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둘러 본 상림의 넓이는 대단했으며(40여종의 낙엽관목 등 116종의 나무가 1.6km의 둑을 따라 80~200m 폭으로 조성), 갖가지의 부가 시설들이 이곳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듯 했다. 빠데리 때문에 사진으로 담지는 못했어도 상림연꽃단지의 재배면적이 20,000평이며, 308종 중 열대수련78종, 한대수련 60종, 고나상련 100종, 수생식물 70종이 있어 11월에도 연꽃과 수련의 꽃들을 보며 좋은 시절 다시한번 이곳을 방문하도록 유혹하는 듯 했다.

                                   상림내의 풍경과 나무아래 파릇파릇한 건 9~10월이면 볼 수 있는 꽃무릇(일명 상사화)의 잎이다.

                                                                      상림의 산책로의 모습과 아내와 두 처제

※①함양 상림(咸陽 上林) 천연기념물 제154호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대덕리, 운림리

약 1100여년 전 신라 진성여왕 때 천령군(天嶺郡:현재 경남 함양군)태수였던 고 운 최치원 선생이 재임 중에 강둑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했던 인공림이라 전해지고 있다. 당시에는 지금의 위천수가 함양읍의 중앙을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잦은 홍 수 피해가 있었다. 이러한 피해를 막기 위해 현재와 같이 강물을 돌려 둑을 쌓고, 둑 위에 나무를 심어 가꾸게 되었다 한다.

처음에는 대관림(大館林)이라 이름지어 잘 보호하였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홍수 로 중간 부분이 유실되어 상림(上林)과 하림(下林)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이후 하 림은 많이 훼손되었지만, 상림은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숲의 면적은 약21ha로, 120여 종류의 2만여 그루 정도의 나무가 자라고 있다. 전형적인 남부의 온대낙엽활엽수림이 잘 보존되고 있어 학술적 가치도 매우 높은 숲이다. 이 숲의 나무들은 합천 가야산에서 옮겨 심어진 것이라고 전해진다.

                                                                                            상림의 이모저모

※⑤역사인물공원기(歷史人物公園記)

지리산과 덕유산의 정기를 이어받아 숭고한 사상과 고귀한 정신으로 다볕골에 빛을 발한 선현들을 영원히 기리고자 고운선생의 애민정신이 깃든 이곳 상림에 흉 상(胸像)을 세워 만민의 귀감으로 삼고자 한다.

옛부터 우리 함양은 좌안동 우함양이라 불리어온 영남의 대표적 선비고장으로 오랜 역사를 통하여 훌륭한 인물이 수 없이 배출되었는데 그중 열한분 최치원(崔 致遠)조승숙(趙承肅)김종직(金宗直)양관(梁灌)유호인(兪好仁)정여창(鄭洳昌)노진(盧 稹)강익(姜翼)박지원(朴趾源)이병헌(李炳憲)문태서(文泰瑞)등을 이곳에 모셔 그분들 의 발자취를 밝혀 그 얼을 계승코자 새로운 천년을 열어가는 기념사업으로 역사인 물공원을 조성하였다.

                                                   역사인물공원의 전신상과 물레방앗간이 있는 상림의 최북단 지역

                              11월 8일 아침을 먹기 전까지의 글을 마침니다. 다음에 계속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