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기 등

외도 등 여행(거제, 통영, 산청, 함양, 남원)-7-a

아름답지만~ 2012. 12. 4. 08:43

 

<2012년11월 5일~11월 8일>-함양의 지리산자락, 남원 실상사

⑽ 함양의 지리산 산자락

지리산 자락을 찾아가는 길은 나에게는 신비로운 자연을 열어 본다는 희망을 안고 준비했으나 다소 빈약했던 지식으로 몇 곳 밖에는 더듬지를 못하는 아쉬움 속에서 시간에 쫓기는 여정으로 마무리를 해야만 했다. 돌아다니며 주워온 자료를 정리하며 함양의 또다른 매력 지리산 자락을 정리해 본다.

                          용유교 위의 두 처제들 풍경에 빠져버리고, 용유교 주변의 풍경은 마음까지 뺏어버린다.

※함양 8경

①상림사계(上林四季) 상림의 아름다운 사계절 풍경

②금대지리(金臺智異) 금대에서의 장엄한 지리산 조망

③용추비경(龍湫秘境) 용추계곡과 기백산의 빼어난 경치

④화림풍류(花林風流) 거연정,동호정을 잇는 화림계곡의 빼어난 절경

⑤칠선시류(七仙矢流) 지리산 칠선계곡의 경치와 화살과 같이 빠르게 굽이쳐 흐르 는 물

⑥서암석불(西庵石佛) 벽송사와 서암정사의 고즈넉한 풍경과 경이로운 석불

⑦덕유운해(德裕雲海) 남덕유산 아래로 펼쳐진 구름바다의 신비로움

⑧계관(鷄冠)철쭉 백운산, 계관산으로 이어지는 고산(高山)철쭉의 아름다움

                      60번지방도를 끼고 펼쳐지는 용유담은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인 곳이다. 

※①용유담(龍遊潭)

엄천강의 상류에 있는 용유담은 마천면과 휴천면의 경계인 이 곳에 위치하고 있 다. 지리산의 아름다운 계곡들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이 합류되어 용유담에 이르러 서는 해가 쨍쨍 내리쬐는 화창한 대낮에 우뢰소리 같은 폭포의 쏟아지는 소리를 비롯하여 장방형의 평평한 호수를 이루게 된다. 화강암으로 된 기암괴석이 첩첩이 쌓인 험준한 봉우리는 용이 하늘로 날아 올라가는 형상이라고 한다.

이 용유담은 신선이 노니는 별유천지로 옛부터 시인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 았던 곳으로 여름이 되면 각처의 피서객들이 휴식처를 찾아 모여들어 붐비는 곳이 기도 하다.

                                 용유담을 각인한 사람은 누구일까? 이렇게 커다란 바위가 떠내려 왔을까?

서편의 벼랑으로는 절경을 이루는 풍치와 청아한 물빛, 거울같은 물에 비친 상 그림자, 푸른 못의 반석에 펼쳐진 모래는 가히 도원경의 경지에 이르는 듯 황홀한 풍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하염없이 도취되게 하곤 한다. 길 언덕위에 구룡정이라 는 정자가 있고 이 용유담 가에는 당나귀바위와 장기판이라는 바위가 있다.

용유담에는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전설과 마적도사와 당나귀 관련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②한국선불교 최고의 종가 벽송사

벽송사(碧松寺)는 조선중종시대인 1520년 벽송지엄(碧松智嚴)선사에 의해 창건 되었으며,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가 수행하여 도를 깨달은 유서 깊은 절이다.

                                                 벽송사, 서암정사 오름길의 모습과 서암정사 입구의 석주

조선시대 불교의 선맥(禪脈)에서 보면 벽계정심,벽송지엄,부용영관,경선일선,서산 휴정,부휴선수,사명유정,청매인오,환성지안,호암체정,회암정혜,경암응윤,서룡상민 등 기라성 같은 정통조사들이 벽송사에서 수행 교화하여 조선 선불교 최고의 종가를 이루었다. 아울러 선교를 겸수한 대종장들을 108분이나 배출하여 일명 “백팔조사 행화도량(百八祖師 行化道場)”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서암정사 입구의 사천왕상 부조물들

벽송사는 지리산의 천봉만학(千峰萬壑)을 앞뒤 동산과 정원으로 하여 부용(芙蓉: 연꽃)이 활짝 핀 것과 같은 부용만개(芙蓉滿開), 혹은 푸른 학이 알을 품고 있다는 뜻의 청학포란(靑鶴抱卵)의 형국에 자리하고 있다. 고인이 “운거천상(雲居天上)별 유천지(別有天地),부용정토(芙蓉淨土)조인만대(祖印萬代)”라는 말로 표현하였듯이 벽송사는 만고에 수려한 풍광 속에 위치하고 있다.

                                                                                         서암정사 주변에서

벽송산문의 제2대 조사가 부용영관(芙蓉靈觀)선사인데, 그의 문하에 가장 뛰어난 제자가 서산대사라 불리는 청허휴정(淸虛休靜)과 부휴선수(浮休善修)이다. 서산대 사는 벽송사에서 깨달음을 얻은 뒤 벽송산문의 제3대 조사가 되어 지리산 일대에 서 행화하다 이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팔도도총섭이 되어 승군을 일으켜 도탄에 빠진 나라와 백성을 구하는데 진력을 다하게 된다.

한국 선문의 거장 서산대사 휴정이 벽송조정의 제3대 조사라는 사실은 벽송사 사적의 가장 큰 자랑이다. 서산대사 문하의 사명대사와 청매조사도 이곳 벽송사에 서 오도하여 크게 불법을 떨쳤다. 특히 함양 넘어가는 오도재(悟道峙)는 청매조사 의 설화가 깃든 곳으로 유명하다. 1704년(숙종30년)에 선교침수의 대종장인 환성 지안(喚醒志安)대사가 벽송사에 주석하여 도량을 크게 중수하였다. 이때에 불당,법 당,선당,강당,요사 등 30여 동의 전각이 있었으며, 상주하는 스님은 300여명에 이 르렀고,부속 암자는 10여개가 넘었다고 한다.

                                              앞에 보이는 바위의 속이 법당으로 꾸며진 곳이며, 그 입구에서 한 컷

이로부터 선교를 겸한 큰스님들이 벽송사에 주석하였으며, 강당을 거쳐 간 강주 (講主)스님만도 약 일백여 인이나 되니 학인과 납자의 수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 을 정도이다. 그리고 근대의 선지식인이신 경허선사도 벽송사에 주석하며 서룡선 사 행적기를 집필하였다.

특히 벽송사 강원의 마지막 강주를 역임한 초월동조(初月東照)대사는 일제강점기 에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혜화전문학교의 교장을 역임하였으며 이후 독립운동에 투 신하여 옥고를 치르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400여년간 지속되어 온 한국불교 최고의 조정인 벽송사는 한국전쟁으로 시작된 빨치산들의 점령(당시 벽송사는 빨치산의 야전병원으로 이용)으로 말미암아 국군에 의해 방화되어 완전 소실되고 말았다.

                                                                     곳곳에 석물을 다룬 솜씨가 돋보인다.

60년대 이후 구한원응(久閒元應)대사의 원력에 의해 선원과 법당 요사 등 건물 의 일부가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벽송사에는 신라양식을 계승한 3층석탑(보물 제474호)과 경남유형문화재인 벽송 선사 진영,경암집 책판,묘법연화경 책판과 경남 민속자료 제2호인 목장승 등의 문 화재가 보존되고 있다. 특히 목장승은 변강쇠와 옹녀의 전설이 깃들어 찾는 이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선방 뒤 탑전 앞에 천년의 세월을 묵묵히 서 있는 “도인송(道人松)”과 “미인송(美人松)”의 전설 또한 유명하다.

예로부터 목장승에 기원하면 애정이 돈독해지며, 도인송의 기원을 받으면 건강 을 이루고 한가지 소원이 이루어지며, 미인송에 기원하면 미인이 된다는 말이 전 해 내려오고 있다. 그리고 벽송사 선방에서 도인이 수 없이 많이 나서 “선방 문고 리만 잡아도 성불한다”는 말이 여기서 생겨났다고 한다. 불자가 되어 지리산을 찾 아 조선 선불교 최고 종가의 역사를 간직한 성지인 벽송사를 참배하여 역사 속에 감추어진 민족정신을 배우고 느끼는 시간을 가지면 수승한 청복(청복)이 될 것이 다. 아울러 벽송사 목장승과 도인송,미인송의 기운을 받아 건강과 소원을 성취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올릴 욕심으로 나누어 올림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