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후 처음으로 참석하는데 일찍 서둘러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도착해(09시51분) 일행들이 모이기를 10여분 기다렸다. 잠시후부터 이규춘(60),이명희(59),김영기(68),허원(64),유재설(61),윤시환(54),박노운(67) 그리고 양해피(?)가 모였다.
시간을 지나 조금더 기다리다가 출발(10시05분), 민원실 앞으로 건너가 관리사무소를 지나며 이정표에 대통령 묘소를 지시하는 곳으로 오르며 조국을 위해서 젊은 나이에 산화한 수많은 묘역을 따라 오르다가 경찰충혼탑을 지난다(10시22분).
[여수•순천 반란사건,6.25전쟁 중 전남 구례 토벌작전 및 6.25전쟁 이후 전사자 총 815위의 경찰관을 모시기 위해 1965년 부평경찰전문학교 교정에, 1967. 5.30 현위치로 이설하였다가 1979. 5.22중건하고 112㎡의 면적에 높이 13m로 설치, 이 탑의 전면에는 노산 이은상 선생이 지은 헌시가 새겨져 있고, 탑신 중앙 “경찰충혼탑”이란 글씨는 故 박정희 대통령이 휘호한 것이다.]
이어서 우측의 국가 유공자 2묘역 입구를 지나며, 좌측의 임시요인 및 애국지사 묘역을 지난다. 그리고 약수터에서는 약수로 목을 축이고 호국 지장사 입구를 지난후 박정희,육영수 묘역의 입구에 닿는다(10시40분).
[국가유공자 2묘역의 인명들 ①국무총리 이범석,②대통령 특별보좌관 홍종철,③한인샘 주시경,④전 국무총리 최두선,⑤대사 양유찬,⑥외무부장관 임병직,⑦애국가 작곡가 안익태,⑧대법원장 조진만,⑨민의원의원 곽상훈,⑩광족회 회장 김홍일,⑪고당 조만식,⑫박사 이태규,⑬국회부의장 김재광,⑭임시정부 구미의원 이원순]
[임시정부 요인묘역의 인명들 ①대통령 김은식,②국무령 김은식,③국무령 홍진,⑦국무령 양기탁,⑧국무총리 신규식,⑨국무총리 노백린,⑩의정원장 김인전,⑪통의부장 김동삼,⑫법무부장 박찬익,⑬비서장 조경한,⑭내무총장 이유필,⑮국무부장 지청천,⑯생계부장 황학수,⑰법무총장 오영선,⑱의정원의장 손정도,⑲의정원의장 이강,⑳의정원 윤세용,(21)국무위원 김성숙]
우리 모두는 박정희 대통령 내외분의 묘소에 참배한 후 장군 묘역의 일부를 다녀와 국가 유공자 1묘역 입구를 지나 김대중 대통령 묘소에 참배한 후 창빈안씨 묘역을 들리고 다시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 내외분의 묘소를 참배했다(11시13분).
[국가유공자 1묘역의 인명 ①국무총리 장택상,②경제기획원 장관 김학열,④국회의원 황종율,⑤정일형 박사,이태영 박사,⑥노산 이은상 박사,⑦하성 리선근 박사,⑧부총리 서석준,⑨외무부장관 이범석,⑩상공부장관 김동휘,⑪동력자원부장관 서상철,⑫대통령 비서실장 함병춘,⑬국회의원 심상우,⑭농림수산부차관 강인희,⑮과학기술부차관 김용한,⑯대통령 경재수석 김재익,⑰해외협력위원회 기획단장 하동선,⑱주 버마특명 전권대사 이계철,⑲대통령 주치의 민병석 박사,⑳대통령 비서실 공보비서관 이재관,(21)대통령 경호실경호원 정태진,(22)대통령 경호실경호원 한경희,(23)동아일보 사진부기자 이중현,(24)재무부차관 이기욱,(25)국회부의장 라응균,(26)연세대학교 명예총장 백낙준,(27)국방부장관 김용우,(28)국회의원 최치환,(29)광복회장 김홍일,(30)4.19과도정부 대통령권한대행 허정,(31)내각수반 김현철,(32)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 안치순,(33)제19대 국무총리 김정렬,(34)국무총리 백두진,(35)농림수산부차관 김정룡,(36)국무총리 진의종,(37)서울고등법원 법원장 김성일,(38)국회부의장 조윤형,(39)문교부장관 안호상]
※아웅산테러에 희생된 분들이 이곳에 영면하고 있음을 알게 해주는 이름이 많았다.
[창빈안씨묘역/지정번호: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54호/ 시대: 16세기후반~17세기후반
소재지: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299-10(국립현충원 내)
이곳은 조선11대 왕인 중종의 후궁이자 선조의 할머니인 창빈안씨(昌嬪安氏;1499~
1549)의 묘역이다. 원래는 1550년(명종5)3월 경기도 양주 장흥리에 묘소를 만들었는데, 이듬해 자리가 좋지 않다고 하여 이곳으로 옮겼다. 묘역의 봉분에는 호석을 둘렀고 봉분 뒤에는 곡장을 설치하였다. 신도비를 비롯하여 묘표,혼유석,상석,향로석,망주석,문인석,장명등 등의 석물을 세웠다. 창빈안씨는 1507년(중종2)에 아홉 살의 나이로 궁녀가 되었다. 중종의 총애를 입어 22세에 상궁(尙宮)이 되었고 31세에 숙원(淑媛) 이어 숙용(淑容)까지 품계가 올랐다. 그녀는 2남1녀를 낳았는데 둘째 아들이 선조의 아버지인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이다. 덕흥대원군의 셋째 아들인 하성군(河城君)이 후손 없는 명종을 이어 제14대 임금(선조)으로 등극하자 1577년(선조309)에 창빈으로 추존되었다. 묘역 입구에 있는 신도비는 1684년(숙종10)에 세운 것이다. 그녀의 자손이 왕위를 계승하였기 때문에 후궁으로는 드물게 묘역에 신도비를 세웠다. 이곳은 조선시대 후궁의 묘역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귀중한 묘역이다.]
지난번에는 창빈안씨의 묘를 참배하지 않았으나 이번에 올라보니 김대중 대통령 묘소가 들어서면서 곡장을 축소 설치하지 않았을까 의심이 갈 정도로 김대통령 묘소의 조경수들이 곡장 바로 옆에 배치되어 있었다. 이대통령 묘소에서 돌아나와 군장병들 묘역 곁으로 순환로를 따라 올라 사당출입문으로 조금 가파르게 짧은 거리를 이동해(11시30분) 현충원길을 따라 상도출입문을 향한다.
상도출입문을 지나(11시51분) 동작충효길을 따라 서달산(달마공원)에 있는 동작대(銅雀臺)에서 가져온 간식들을 나눠 먹으며 주변을 조망, 좌편에서 국사봉, 목동신시가지, 여의도, 난지하늘공원, 63빌딩, 원효대교, 안산, 인왕산, 북한산, 도봉산, 남산이 우편으로 전개되었다(12시).
우리는 숭실대입구역(1.1km)를 향해 걷다가 남묘입구를 지나 미륵암을 지나, 시내길의 혼잡함에 적응하며 숭실대 입구역 삼거리에 도착(12시45분), 때마침 새누리당 홍보차량에 정몽준이 탄채 홍보하는 모습에 손을 흔들어 답례하며 길을 건너 골목길에서 ‘고향토종 순대곱창’<숭실대 지하철 7호선 2번출구/ 전화 02-8138554>에서 내장탕과 소주로 점심을 맛있게 먹고 지하철 입구에서 각자 헤어졌다.
[남묘(사당 3동 180-1) 남묘는 동묘와 함께 현존하는 관왕묘의 하나로 원래 중구 도동1가68번지에 있다가 1979년 사당동 180-1번지로 이전 건립되었다.
관왕묘는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장수 관우를 모신 사당을 말한다. 관왕은 신격화된 관우를 높혀 일컫는 말로써 관성제군,관보살이라고도 하며, 무운과 재운의 수호신으로서 한민족 신앙의 대상이다. 공자의 사당을 무묘라 하는데 관우의 사당을 무묘라고도 한다.]
[미륵암과 느티나무: 고려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미륵암은 상도1동103번지2호에 위치하는데, 이 절은 지금으로부터 200여년전 단씨라는 사람이 포목장사를 하면서 매일 이곳을 지나면서 샘물을 마시고 쉬어가곤 하였는데, 어느날 밤 단씨의 꿈속에 미륵이 나타나 “내가 밤마다 이슬을 맞고 있으니 이슬을 맞지 않게 집을 마련해 달라”고 호소했다. 단씨는 이상히 여기고 이튿날 꿈속에서 지시하던 약수터에서 10여m 떨어진 곳을 헤치고 보니 나무와 덤불 속에 과연 꿈속에서 나타난 마륵이 발견되었으므로 그는 이곳에 조그마한 암자를 짓고 미륵을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 미륵암 사찰 경내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200년 묵은 느티나무가 자리잡고 있어 역사의 정취를 풍긴다. -상도1동 주민자치위원회]
오랜만의 참석에 지난 9월15일 참석한 동작동국립현충원의 재방문은 요지음 한참 불붙은 대선정국에 옳고 그름의 판단을 위해서도 시의 적절하지 않았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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