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

동유럽 여행기(1)-1

아름답지만~ 2015. 5. 20. 16:26

모처럼의 기회에 회사의 허락이 떨어져 아내의 칠순을 겸한 여행을 다녀와 그 과정과 찬란한 역사의 현장을 기록해 보고져 한다. 짧은 영어도 때로는 힘든데 체코어나 헝가리어 및 크로아티아어는 어림도 하지 못하고 오스트리아나 독일의 독일어권은 다소 어림하기가 나은 편이었으나 그것도 쉽지않은 행보일 밖에 도리가 없어 다소 틀리는 일도 있을 것이다.

1. 다녀온 날; 2015.3.20.~3.30 ( 911)

2. 과정요약; 20:인천공항(1250)-프라하관광(구시가지) 및 야간관광(구시가지)-<숙박;프라하호텔>21:프라하관광(프라하성,바츨라프광장,구시가지)-체스키크롬로프

                                                                                                                          인천국제공항에서

3. 상세내역; 서둘러 동수원터미널로 가 리무진(0805)-인천공항(09~11; 일행이 모이고 짐을 부치고(11), 검색대를 통과해 면세점에서 아내의 화장품 몇 점 구입하고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가 탑승해 출발(1250)-길고긴 시간을 지낸다. 상승고도를 올라 음료로 목을 축인 후 기내식을 주는데 위스키 두 잔을 거푸 마시니 11시간40분의 비행시간을 다소 편안하게 도착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의 가이드 이경*는 비행좌석을 확보하지 못해 다른 코스로 입국하게 되어 당초에 합류하지 못하고, 공항에서 만난 박성훈가이드 팀장과 운전기사 미카엘’(슬로베니아인; BJ318BT벤츠버스)의 안내로 구시가지 광장의 구시청사 & 천문시계탑, 틴성당과 광장의 얀후스 군상(Pomnik Jana Husa)을 보고 이지역 특산이라는 로컬맥주를 곁드린 호이리게로 저녁을 하고 프라하 야간투어(틴성당, 천문시계탑, 성 프란시스코성당, 성 살바도르성당 및 카를교)를 했고 호텔(Clarion Congress Hotel Prague)에서 우리 가이드 이경*가 정리한 방으로 들었다.

                                                 위는 인천국제공항의 무화행사 및 음식점의 국악, 체코 프라하의 바출라프 하벨 공항

                                                                                                                      아래, 위 블타바 강의 모습

                                                                                  위는 박물관 건물, 호이리게를 먹는다고 로컬맥주 맛에 푹 빠져들고

틴성당(Tyn Church); 1365년 건립되었으며 그후 계속 변형을 가해 17세기까지 다양한 건물 양식이 가미되었다. 외관은 고딕양식이며 내부는 바로크양식으로 되어 있다. 두 개의 탑(높이 80m)은 아담과 이브를 상징한다고 한다. 동북쪽의 아름다운 출입문과 황금 성배(聖杯)로 만든 성모마리아상 고딕양식으로 조각된 예수 그리스도상, 백랍으로 만든 세례받침 등도 성당의 명물로 꼽히고 있다. 후스파 본거지였던 틴성당은 종교전쟁 후 카톨릭의 지배를 받게되어 첨탑 사이에 있는 후스파 상징인 황금성배와 보헤미아 왕의 조각상을 녹여 지금의 황금 마리아상을 만들었다고 한다.(여러 블로그를 인용)

                                                                                             틴성당의 모습, 위의 우측 앞은 얀 후스의 청동상이 있다.

천문시계(Prazsk orloj);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의 구시청사 건물(고딕양식)벽에 붙어있다. 프라하 시청사의 요청으로 두 명의 시계공(미쿨라스,하누쉬)과 한명의 수학자(얀 센델)1410년 최초로 설치되었다. 천동설에 기초한 두 개의 원이 나란히 돌아가며 매시간 정확히 시간을 알리며 두 개의 원반 위에 있는 천사의 조각상 양 옆으로 창문이 열리고, 죽음의 신이 울리는 종소리와 함께 그리스도의 12제자가 창 안쪽으로 천천히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마지막으로 시계 위쪽에 있는 닭이 운다. (by 다음백과 인용)

얀 후스(Jan Hus); 체코의 신학자로 성서를 기독교 믿음의 유일한 권위로 인정하는 복음주의를 보였으며, 교황 등 로마교회 지도자들의 부패를 비판하다가 1411년 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교회로부터 파문 당하고 1415년 화형에 처해졌다. 그가 화형 당한 이후 그의 신학사상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보헤미안 공동체라는 공동체를 만들고, 긍의 주장은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가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카를교(Karluv most); 블타바(Vltava;독일식 몰다우)강의 돌다리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프라하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카를 4세가 1357년에 건설을 시작해 바츨라프 4세때인 1402년에 완공된 너비 10m에 길이 520m16개의 아치가 떠받치고 있으며 다리 양끝의 탑은 본래 통행료를 받기위한 시설이었으나 지금은 전망대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 17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약 300년에 걸쳐 제작된 30개의 성인상도 있다. 성인상은 성인들을 조각했으며, 그 중 성 요한 네포무크 성인상이 소원을 비는 곳으로 유명하다. ‘성 요한 네포무크는 바츨라프 4세가 왕비 조피에의 고해성사 내용을 알려달라는 청을 거절한 연유로 혀가 잘리고 이 다리 밑으로 떨어져 죽게되었다고 한다. 그의 조각상 밑에는 그의 순교장면이 묘사된 부조와 바츨라프 4세와 개의 부조도 있다. 이 부조를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전설 때문에 손때를 많이 탓으며, 성인상들은 모두 모조품이고 진품은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시차 때문에 선잠을 자고 첫 번째 찾은 프라하성에서 대통령궁의 교대식, 성 비투스성당 등을 보고, 프라하의 울긋불긋한 고대도시의 정취에 푹 빠져 보기도 했다. 바츨라프 광장을 지나고 오페라극장을 지나 한식당에서 밥을 먹고 다시 구시가지의 야간투어에서 보았던 건물과 동상을 담았다. 종교라는 이름 하에서 벌어졌던 끔찍한 사연들(얀 후스의 화형)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며 역사의 수레바퀴는 돌고돌아 또다른 범죄를 잉태하는 것 같았다

                                                                    여행의 첫날 밤을 보낸 호텔(Clarion Congress)와 프라하성 조감도

                                                               프라하성 제2광장의 레오폴드 분수와 우물이고, 흐라트차니 광장서 본 프라하 시내

위는 흐라트차니광장서 본 시가지와 아래는 프라하 중앙역

프라하성(Prague Old Royal Place); 블타바강 서쪽에 있으며 길이 570m, 128m의 현존 중세양식의 성 중 가장 크다. 이 성은 9세기 말부터 건설되기 시작해서 카를 4세 때인 14세기에 많은 건물이 들어섰으며 그후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기까지 거의 900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성안에는 성()비투스대성당, ()조지 바실리카성당, 성십자가성당등을 비롯해 성 베네딕도 수도원이 있다. 1918년부터는 대통령관저로 사용되고 있으며,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2광장의 레오폴드 분수(레오폴드 1세 황제의 이름을 딴 분수대)와 왕궁 정문(마리아테레지아 문)의 기둥 위에는 동상이 있는데 몽둥이를 들고 위협하고 있는 인물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인 타이탄의 형상으로 막강한 힘의 지배자인 합스부르크 왕가를 의미하며 밑에 깔려 고통받는 사람은 체코인이다. 합스부르크 왕가가 체코를 지배할 당시의 조형물인데 그들은 치욕적인 상징을 쓰라린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고자 이 동상을 그대로 두고 있다.

                                                                                      야간투어에서 블타바 강건너의 프라하 성과 아래는 프라하 성의 후문

                                                                   위; 지붕 위에 깃발이 나부끼고 있어 대통령이 근무중이고, 아래는 우물을 덮는 시설

                                                                                                   위는 프라하 성 정문과 아래는  조각상,

성 비투스대성당(St.Vltus Cathedral); 프라하성의 중앙에 있으며, 1344년 카를 4세 때 착공(최초의 설계자는 프랑스 출신의 마티아스<Matthis of Arras>’였다가 숨을 거둬 페터 파를러<Peter Parler>’가 뒤를 이었고, 이후 파를러의 아들과 또다른 건축가들)하여 작업이 이어져 16세기 중엽 르네상스식 첨탑이 완공되고, 17세기 양파 모양의 바로크식 지붕이 건축되었으며 1753~1775년 사이에 오늘과 같은 신고딕 양식의 형태를 갖추었다. 성당의 규모는 길이 124m, 60m, 천장높이 33m, 첨탑높이 100m에 이른다. 대성당의 정문은 육중한 철동문으로 바츨라프 왕의 일대기가 부조되어 있다. 정문 바로 위를 장식한 지름 10.5m의 장미의 창이 인상적이다. 성당 지하에는 역대 체코 왕들의 석관묘가 안치되어 있으며, 본당 주위에는 체코의 수호성인 성 바츨라프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화려한 예배당이 있다. 예배당의 벽면은 도금으로장식되었고, 여러 성인들과 성서 속 장면을 그린 그림들이 걸려 있다.(인터넷에서 차용했음)

                                                                     성 비투스 성당입구의 성당의 역사를 나타내는 조형물들

                   위는 성자와 성부의 문으로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성당을 헌납한다는 뜻을 나타낸다고 한다.아래는 물홈통 처리를 한 악마의 모습

                                                      성당의 스테인드그라스는 더욱 분위기를 엄숙하게 하고, 측면에서 보이는 성 비투스성당의 전경

바츨라프광장(Vaclav Namesti); 광장의 동쪽 끝 국립박물관에서 나프지코페거리 까지의 750m의 거리와 폭 60m로 이루어진 대로로 이루어졌으며, 이 광장은 20세기 초까지는 우시장이었다. 국립박물관 앞에는 10세기 경 보헤미안 기사들과 함께 적군을 물리치고 체코의 국난을 극복했다는 체코의 영웅 바츨라프 의광장은 프라하의 봄사건 당시 점령군과 시위대의 격돌로 100여명이 희생당한 장소이다.(두산백과)

                                                                        다음 편에서 이어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