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

동유럽 여행기(3)-1

아름답지만~ 2015. 6. 11. 12:41

헝가리가 자유민주주의로 바뀐지가 그리 오래되지 못해서일까?, 부다페스트가 도자기 굽는 마을이란 뜻을 가졌다는데 선입감은 어정쩡한 속에서 대하는 12일의 짧은 여정을 첫날은 어쩔 수 없이 따라다녀야 했기에, 나의 여정은 한없이 지루하고 고단하게 느껴지는 길고도 힘든 여정을 사전에 들여다 보았던 얕은 지식으로 기억하고 담아야만 했다.

      3월의 개나리가 핀건 반가웠고, 길을 달리다가 보니 산위에 투를, 도나우 강과 멀리 마르깃 앞에 세체니 다리

                                       게레르트 언덕에서 본 부다왕궁, 시내에서 본 소공원

                                         도나우 강변 도로에서 오르는 어부의 요새(아래, 위)                        

        성 이슈트반 대성당 내부의 단아한 모습, 그리고 대성당 앞 광장 근처의 로즈 아이스크림 포토포인트에서 

1. 다녀온 날; 2015. 3.22(14:22)~3.23(15:20)

2. 과정요약; 22: 낮에서부터 허리의 통증-도로 주변은 끝없는 벌판-카르파티아산맥의 끝자락-휴게소(15:56~16:11)-길가 산정의 고성과 투를(16:30)-겔레르트 언덕(17:16~17:46)-식당(18:03~18:58)-유람선(19:11~20:00)-

호텔(Expohotel; 20:20~)

                           헝가리 국경검문소의 근무자 복장이 색다르고 저속으로 달려가며 길가의 모습

23: 새벽 산책-에르제베트다리-어부의 요새마차시교회부다왕궁(08:36~10:04)-성 이슈트반 대성당(10:16~11:34)-영웅광장(11:50~12:09)-식당(한국관;12:16~12:56)-부다페스트 동역(캘러티;Keleti pu)-에르제베트 다리 건너(13:05)-크로아티아로~

3. 상세내역; 버스를 오르고 내리는데 다소 불편했던 몸 상태가 겔라르트 언덕에서는 더욱 불편해 어쩔 수 없이 신부의 걸음이 되고 이 지역의 가이드 황정수가 열심히 설명하지만 나는 통증의 진정에만 신경을 써야만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로컬가이드는 고교의 새까만 후배 였었다. 겔라르트 언덕 주차장에서 약간의 경사를 조심해 오르며 좌측의 돌기둥은 어떤 뜻인지 모르겠고, 치타델라 성(Citadella Castle)은 탄흔자국이 많았는데 세계 제2차대전의 상처인 듯 했다. 성벽을 좌에서 우로 돌며 시내가 잘 보이는 곳에는 자유를 외치는 두 남자의 청동상과 그 중간 40m의 높은 탑 위에 자유의 여신상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의 언덕 바로 아래에는 옛 고택가(古宅家)가 자리하고 있었다.

                      겔레르트 언덕의 상징물인 듯한 선바위와 이곳에서 본 페스트 지역, 치타델라성의 모습

                                     겔라르트 언덕 아래 부다지구의 모습과 성 겔라르트 동상

겔레르트언덕(Gellert-hegy): 1046년 헝가리에 카톨릭을 전파하려다가 이교도들에 붙잡혀 산채로 못이 박힌 와인통 속에 갇혀서 언덕에서 도나우강으로 굴려졌다. 본래는 케렌 언덕이었으나 헝가리 최초의 순교자인 이탈리아의 수도사인 성 겔레르트가 순교한 장소를 기리기 위해 겔레르트 언덕이라 부르게 되었다. 겔레르트 언덕에는 합스부르크 왕가가 헝가리인들의 독립운동을 진압한 후 헝가리인들의 동태를 감시하기 위해 1851년에 세운 치타델라(Citadella)란 요새가 있다. 해발 235m의 언덕에 동서 200m, 높이 4~6m, 벽 두께 1~3m로 이루어져 있으며, 세계 제2차대전 때는 독일군이 부다페스트를 공격할 때 머물렀으며 이로인해 성벽에는 많은 탄흔자국이 있었으며, 치타델라는 헝가리어로 이란 뜻이다.

치타델라성 한쪽에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데, 이는 공산정권 시절 헝가리를 위해 싸우다가 전사한 소련군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모스코바 쪽을 향해 도나우강을 바라보며 두 팔을 치켜든 채 승리의 나무인 종려나무를 들고 있으며 좌우로 용감한 남성상이 조각되어 있다. 본래 자유의 여신상 기둥에는 소련의 상징인 도끼와 낫이 있었으나 그 표식만을 철거하고 나머지 시설은 보존해 그때를 잊지않기 위하고 있었다.

겔레르트 언덕을 내려와 에르제베트 다리를 건너 페스트 지역의 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야간투어를 위해 도나우강을 우측에 두고 한참을 거슬러 올라 유람선 승선장에 도착해 배에 올랐다. 오르자마자 음료수 주문을 받는데 와인을 주문했으나 그 맛이 별로라 갑판에 올라 주변 풍광에 푹 빠져들어 다리(마르깃드, 세체니, 에르제베트, 사바차그)를 지났다가 다시 돌아 온 코스로, 국회의사당, 어부의 요새, 마차시교회, 부다왕궁, 스페인 승마학교, 겔레르트 언덕등의 야경을 보고 돌아왔다. 배를 돌려서 돌아오는 동안 짧지만 하모니카를 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건만 허리의 통증으로 배낭을 챙기지 못해 아쉬웠다. 15분여 달려서 도착한 호텔은 시설이 괜찮아 보이지만 외따로 서있는 큰 규모였고 주변은 철로가 겹쳐지고 언제인지 국제적인 행사가 있었던 듯 했으며 인근에 버스터미널이 보이는 곳이었다.

             도나우강 야간투어에서 본 어부의 요새와 마차시 성당의 모습과 배에서 페스트 지역을 배경삼아

                 부다왕궁과 에르제베트 다리 뒤로 겔레르트 언덕의 자유의 여신상과 치타델라 성의 모습

                                     사바차그 다리가 보이고, 되돌아 가며 다시 사그차바 다리

마르기트 다리(Margit Hid): 이 다리는 다리 중간에 있는 섬 마르기트로 인해 붙여진 이름이며, 파리의 에펠탑을 건설한 구스타프 에펠에 의해서 1879년에 완공되었다. 마르기트섬은 길이 2.5km, 너비 500m로 길게 뻗은 섬이다. 13세기 벨라왕의 딸 마르기트(마가렛)를 하나님께 바치기로 약속하고 전쟁에서 나라를 구하자 마르기트는 이 섬에서 생을 마쳤고 훗날 성녀 마르기트로 시성되고 섬 이름도 마르기트라 부르게 되었으며, 왕가의 사냥터였다가 각종 위락시설을 갖춘 놀이공원이 되었다.

세체니 다리(Szechenyi lanchid): 이 다리는 도나우강에 최초로 놓인 현수교로 1849년에 개통되었다. 다리 건설의 주요 후원자였던 헝가리의 국민적 영웅인 이슈트반 세체니에서 따온 것으로 밤이 되면 380m의 케이블로 이어진 수천개의 전등이 도나우강의 수면을 비추는데, 부다페스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에르제베트 다리(Erzsebet Hid): 합스부르크 왕가의 프란츠 요제프황제의 아내 에르제베트(엘리자베트, 시시)황후를 기념해 놓은 다리로 1903년 개통되었으며, 세체니 다리의 아래쪽에 있다. 에르제베트 황후는 헝가리를 너무 사랑했고,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이중제국이 되는데 중요한 공헌을 하였으며 헝가리 국민들로부터도 사랑 받고 있다. 마차시교회 안에는 그녀의 동상이 있다.

헝가리 국회의사당(Orszaghaz): 헝가리어로 국회의사당을 오르사그하즈라고 한다. 오르사그는 나라하즈는 ’, 즉 나라의 집이란 뜻이니 헝가리 민족에게는 가장 신성한 건축물이다. 헝가리의 건국 1000주년을 기념해 1884년부터 1904년에 완공되었다.(건국 1000주년은 1896)

총길이 268m, 너비 123m, 높이 96m인 이 건물은 높이를 헝가리 건국의 해인 896년과 건국 1000년을 기념하는 해인 1896년을 상징케 했으며, 둥근 돔이 있는 중앙홀을 중심으로 도나우강을 따라 좌우 대칭으로 날개를 펼친 형태로 고딕 양식의 크고 작은 첨탑을 365개 배치하고 있는데, 이는 일년 365일을 상징한다.

                                                   1부를 끝내고 다음 편으로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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