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및 산행

영덕 지역 여행 (팔각산 등)-3

아름답지만~ 2015. 11. 24. 07:19

팔각산의 전설 및 유래: 산 정상을 따라 8개의 바위 봉우리가 구름 쌓인 하늘을 향하여 첩첩이 솟아 있다고 하여 팔각산(八角山)이라 하며, 달 밝은 날에 팔각산 정상에 오르면 그림자가 동해바다에 어른거 린다고 한다. 옥같이 맑고 투명한 물이 흐르는 옥계계곡과 그 비경이 팔각산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산행안내: 현위치~8봉코스 약 2시간 소요[-현위치~1:15/-1~2:15/-2~7:30 /-7~현위치:1시간]

현위치~안내소 약 5시간40분 소요[-현위치~독가촌:3시간30,-독가촌~청 석바위:40,-청석바위~황소바위:40,

-황소바위~안내소:50] *3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데 잘못된 안내 소요시간임

일몰시간; (18:30~19:45),여름(19:45~19:05),가을(19:05~17:20),겨울(17:20~18:30)

영덕옥계 침수정 계곡일원(盈德玉溪 枕漱亭 溪谷一圓) 경상북도 기념물 제45

이 계곡은 팔각산과 동대산에서 흘러 내리는 맑은 물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계곡에는 삼귀암(三龜岩 )

학소대(鶴巢臺) 병풍석(屛風石) 일월봉(日月峰) 진주암(眞珠庵) 37경 의 관광명소를 만들고 있는데 명소마다 전설이 깃들어 있다고 한다.

 계곡 입구에는 조선 정조 때 손성 을(孫星乙)이 건립한 침수정이 있다.

[37: 일월봉, 팔각봉, 복룡담, 천연대, 부복대, 삼층대, 향로봉, 촛대암, 삼귀담, 소영담, 세심대, 탁영담, 학표석, 학소대, 병풍암,

조연, 천조, 구정담, 부연, 존심대, 옥녀봉, 마제석, 선인굴, 구룡담, 진주암, 부암, 봉관암, 광명대, 귀남연, 둔세굴, 강선대, 다조연,

계관암, 풍호대, 채약봉, 명귀대, 사자암]

안동시의 문화공원과 융부공원-안동파크에서 일어나 비오는 거리를 대안로동흥1길로 가면서 역 앞의 동네라 잠 자리가 풍부했고 밥 먹을 집을 기웃거리며 가는데 앞에 넓은 터와 커다란 한옥이 나타나 가보니 문화공원 석비와 선비의 문이다. 들어선 좌측에는 문화쉼터라는 팔각정, 우측으로는 안동문화원이다. 정면의 건물은 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이나 스치고 지나 좌측의 영가헌과 대동루를 돌아보고 아침밥을 먹으러 갔다.

영가헌(永嘉軒): 영가헌은 고려시대부터 안동대도호부의 행정중심부 역할을 한 관아건물을 복원한 것 이다. 이 건물은 1998년 이 곳 안동대도호부의 옛터에 역사와 문화 그리고 행정중심지로서의 위상을 되 찾기 위하여 안동웅부관아 복원사업이 필요하다는 시민들의 여론에 따라 문루와 함께 건립하였다. 2002 년에 완공되었으며 2004년에 이 건물과 앞쪽에 있는 문루의 현판명칭을 공모한 결과 영가헌과 대동루 로 명칭이 결정되었다. 영가헌은 정면 7, 측면 4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대동루는 정면 3, 측면 2 칸 규모의 팔작지붕 누각식(樓閣式)건물이다.

영가헌은 낙동강과 반변천의 두 강이 합쳐진다는 의미를 지닌 ()’자와 아름답다는 뜻의 ()’자 가 합해서 이루어진 안동의 옛 이름에서 따온 것이며, 대동루(大東樓)는 고려 왕건이 후삼국 통일에 결 정적인 도움을 받고 하사한 안동이란 지명의 유래가 되는 안어대동(安於大東)에서 따온 것이다.

전 사벌왕릉-916지방도 우측으로 사벌면사무소를 가르키는 반대편 길로 좌회전해 충의로를 달려 서둘러 화달 2길로 좌회전 해 좁은길을 한참 달리니 화달 1길과 만난다. 차를 멈추고 동리분께 물어 곧 전 사벌왕릉에 도착해, 왕릉과 화달리 3층석탑 영사전 등을 돌아본다. 전하는 사벌국 왕릉이 선대들이 보듬고 관리해 상당히 깨끗하고 정연하다. 곶감 생산지를 검색하다가 화달리의 왕릉을 발견해 휘돌아 다녀오게 된 곳이다.

전 사벌왕릉(傳 沙伐王陵) 경상북도 기념물 제25, 소재지: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면 화달리 산 44-1

이 능은 상주에 있었던 소국인 사벌국의 왕릉으로 전하고 있다. 주변에는 삼국시대 고분들이 많이 분포 하고 있다. 봉분의 크기는

장축직경 16m, 단축직경 14.5m, 높이 4.5m인 동서향의 타원형 봉토분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도 이 왕릉의 위치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서편에 있는 신도비 에는 상산박씨(商山朴氏)

시조인 신라 경명왕(景明王)의 아들 박언창(朴彦昌)이 신라말(917)에 사벌군 (沙伐君)으로 책봉되어 있다가 후삼국 동란기에

사벌국을 세웠고 이 능이 그의 묘라는 내용이 있다.

그동안 황폐된 체 돌보지 않다가 조선 현종(顯宗) 이후에 누차에 걸쳐 국가에서 수축 또는 보수를 해왔 고, 1825년 상주목사

민종열(閔宗㤠)이 현재와 같이 보수하였다. 인접한 헌신동 고분군은 5세기 후반 이후에 해당하는 큰 석실 봉토분들이 밀집 분포되어

 있어서 당시 이 지역 세력들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상주 화달리 삼층석탑(尙州 化達里 三層石塔) 보물 제117, 상주시 사벌면 화달 12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의 3층 석탑으로 높이는 6.24m이며, 건립연대는 9세기경으로 추정된다. 8매의 장 대석으로 구축한 지대석 위에 탑을 세웠는데, 기단부는 단층으로서 하층기단 면석을 생략한 형식이다. 이는 상주나 문경지방에 분포된 탑의 특징이기도 하다. 하대석은 마치 하층기단의 덮개돌과도 같이 그 상면에 높직한 원호와 낮은 각형의 핌을 조출하여 그 위에 기단 면석을 받고 있으며, 상면 네 귀퉁이에 는 약간의 경사로 합각이 뚜렷하다. 기단 면석은 8매석으로 짜여지고 있다. 각 면에는 모서리 기둥과 안 기둥이 정연하다. 기단 덮개돌은 다른 석탑에 비하여 이례적으로 넓어서 신부와 면석 보다 상당히 내밀어져 있음을 느끼게 한다. 현재 기단 덮개돌 위에 있는 목 없는 불상 1구와 석탑 부재는 이 석탑과 무관한 것은 아니다.

5)에필로그: 장거리 운행에 아침을 다소 이르더라도 고속도휴게소에서 해결했어야 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쉬웠으나 그 바람에 봉구스란 간편식을 알게된 것으로 위안을 하였으며, 어찌된 영문인지 등산한다면서 간식거리도 준비하지 않는 범실을 저질러 팔각산을 등산하는 내내 아내에게 질책 당하며 완주한건 이번 여행에서 대단한 소득일 것이다.

하지만 등산후 대게를 먹는다고 옥계계곡에서 침수정 주위를 대충 훑어보고 떠난 아쉬움, 그래서 강구항 가는 길에 양갱 등을 구입해 약간의 허기를 달래었던 건 결국 대게를 포식하게 되었고, 밤길로 안동으로 이동하는 일은 다시는 익숙치 않은 길에서는 야간운행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하는 일이 되었다. 안동 자료를 준비하지 않아서 안동에서 시간 보낼 여유를 갖지 못하고, 곧바로 상주로 향하는 길을 내달린 일은 전 사벌왕릉을 둘러보고 곧바로 상주로 가서 농협에서 구입한 감은 아내는 상당히 싸다고 2 박스나 삿지만 그래도 이른 시간이라 국도로 귀가길을 택하였었다.

수안보 들릴까 하다 여러번 갔던 곳이라 지나치게 되고 월악휴게소(; 느티나무휴게소; 충주시 수안보면 중원대로 1296)에 들려 커피 한잔으로 졸림을 방지하고 안성의 고삼저수지로 빠지는 길목의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은 건 다소 늦은 점심이지만 대게를 먹던 시간보다는 빠른 것으로 생각할 일이었다. 고단한 여정의 후유증은 없었지만 푹 휴식을 취해야 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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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대게(盈德竹蟹): 이 게는 전국적으로 잘 알려져 있고 껍질이 얇고 살이 많으며 맛이 담백하여 구미를 돋우는 명물이다. 대게라는 이름은 그 발이 붙어나간 모양이 대나무의 마디와 같이 이어져 있는 데에서 연유한다. 서식처는 이 군의 영해 대진(大津) 앞바다에서 감포(甘浦) 앞바다에 걸쳐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영덕군 일원의 앞바다가 주산지이다.

암케와 수케의 교미기간은 매년 34월이며, 산란기는 그 다음해의 봄철인데 한 마리의 암케가 대체로 78~15만개의 알을 낳게 된다. 산란 후 1년이 지나야 부화되어서 게로 된다. 어획기간은 12월에서 다음해 3월까지이고 이 기간에 잡힌 것이 살이 많고 맛이 있으며, 4월에서 11월까지는 금획기간으로 되어 있다. 또한 12cm(몸너비)이하의 새끼대게는 잡을 수 없으며, 그것을 남획하였을 때는 <수산물어획법>에 의하여 처벌을 받게 된다. (by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감은 동아시아 특유의 과수로서 한국중국일본이 원산지이다. 중국 최고(最古)의 농업기술서 <제민요술(齊民要術)>에 감나무의 재배에 대한 기록이 있고, 당나라의 <신수본초(新修本草)>에도 감나무를 분류 수록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일찍부터 재배한 과일로서 <향약구급(鄕藥救急)>에 경상도 고령(高靈)에서 감을 재배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에는 8세기경에 중국에서 전래하였다는 설이 유력하며, <화명유취초(化名類聚抄)>(931~938?)에 야생종과 재배종을 구별하고 있다. 감은 단 것이 귀했던 시대에 귀중한 과일이었으므로 가공저장이용에 힘써 왔다. 수세(樹勢)가 강건하고 병충해도 적어서 비교적 조방적 재배가 가능하다.

또한 내한성(耐寒性)이 약한 온대 과수로서 한국의 중부 이북지방에서는 재배가 곤난하다. 감에는 단감과 떫은 감이 있는데 중부 이북지방에서는 단감재배가 안된다. 감은 주로 생식용으로 이용되며, 그 밖에 건시(乾柿)등의 가공용 및 시삽(柹澁:떫은 감)을 만들어 공업원료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가공을 위해서라면 떫은 감을 재배하여야 한다.

현재 재배되고 있는 단감은 모두 일본에서 도입된 품종들이며, 재래종은 거의 모두가 떫은 감이다. 한국에서 재배되고 있는 품종에는 떫은 감에 사곡시(舍谷誇), 단성시(丹城誇), 고종시(高種誇), 분시(盆誇), 원시(圓誇), 횡야(橫野), 평핵무(平核無) 등이 있고, 단감에는 부유(富有), 차랑(次郞), 어소(御所), 선사환(禪寺丸) 등이 있다. (by 두산백과)

                                                                   끝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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