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이방인이 본 옛 수원화성 기획전시를 보고

아름답지만~ 2016. 7. 14. 18:16

나이들어 가면서 지난 일들에 대한 향수는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길일 것이다. 어린 시절 6.25의 상흔 속에서 많은 외국인들이 자유수호를 외치며, 그들의 많은 동료가 머나먼 이국땅에서 유명을 달리한 사실은 늘 필자의 뇌리 속에는 고마움이 배어 흐르고 있다.

이 사진전을 보면서 어떤 장면은 내가 보았던 곳의 흔적이 역력하고, 어떤 장면은 그랬던 적도 있었는가 하면서 나름으로는 다소 꼼꼼히 보는 기회를 가졌으며, 어려웠던 시절의 추억을 더듬어 보고자 한다.

어쩌다가 늘어나는 인구와 커져가는 도시를 정치적, 편의적 등으로 쪼개져 커다랗던 화성군이 이웃 도시들에게 빼앗기고 이제는 화성시와 수원시로 또 오산시까지 분할되어서 거대 도시들로 형성되기에 이르러 수원화성이라는 문구를 만든건 아닐는지~


1. 다녀온 날: 20167915~

2. 화성(華城)의 유래: 조선왕조 제22대 정조대왕이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침(陵寢)을 화산으로 천봉하면서 그곳에 살던 주민을 팔달산 아래로 이주시키면서 축성케 된 곳이다. 그 당시의 신기술이 동원되고 공기도 단축되는 쾌거를 본 성곽으로 전쟁 상흔이 역력하던 성곽을 기록을 유지하고 있어 화성의궤에 의한 복원은 수원의 자랑거리이다.

                               무더웠던 날씨는 가로수가 왕성한 곳에서 고마움을 느끼고, 더위에도 왕성한 꽃이 그립다.

3. 소회: 수원화성박물관이 위치한 자리는 나 어릴적 중학교를 다닐 때의 큰아버지 댁에서 다닌 적이 있던 곳이다. 천변쪽은 제재소가 있었으니 제재소와 인근 주택들이 흡수된 곳이고, 남수문의 흔적은 전혀 본 적이 없었으니 이 사진이 복원하는데 기초가 되었구나 느끼며 장안문이 고교시절의 기억으로는 중층문루가 완전히 사라진 기억만이 남아있다.


                       여장이 무너져 버린 남수문과 장안문의 모습이 사라지는 순서대로 담아 봅니다.



고교졸업 사진을 찍는다고 찾았던 1857년의 사진과는 전혀 다른 전쟁의 상처를 잔뜩 머금고 있었는데 오히려 복원된 봉돈과 같지 않을까 생각된다. 화서문과 서북공심돈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교적 멀쩡했고, 창룡문은 6.25전쟁 중 폭파될 당시 봉녕사에 머물며 아주머니뻘 되는 분이 지나다가 폭파를 얘기해 알던 곳이다. 그후 수없이 지나다니며 흉측한 몰골을 애써 외면하던 기억이 새롭고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은 용연 근처에 이모님이 살던 곳이라 아주 눈에 익은 곳이다.

        멀리 팔달문으로 이어지는 성벽은 지금은 빌딩으로 차 있고 가까이 낮은 곳이 남수문,아래는 화홍문과 방화수류정


                             1857년의 멀쩡한 봉돈, 아래의 팔달문 안의 버스정류장은 기억도 생생하던 곳이다.


                     똑같은 화서문과 서북공심돈을 두고 방향만 다르게 찍었으며 그 넓던 논들은 주택으로 들어찼다.


                   처참하게 부서진 창룡문 옆 상이용사촌을 짓는 것 같고, 아래는 방화수류정 북쪽의 용연

팔달산은 성벽이 극히 일부분 남아 있었던 기억 밖에는, 그 당시엔 웬 송충이가 그리도 많았던지 팔달산은 송충이 잡기에 동원되었던 곳인데 지금은 송림이 우거져 멋스런 자태가 되었으니 세월의 약발을 제대로 받은 모양새이다.

수원에서는 우수게 소리로 북문은 부서지고 남문은 남아있고, 서문은 서 있으며 동문은 도망 갔다는 얘기대로의 흔적을

더듬어 본다.

                              수원화성박물관의 정문과 전쟁 이후 유별나게 수원 인근에는 고아원이 많았다.

                      지게진 농부는 60년대의 모습 같고, 아래는 이 많은 사진들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한 월워쓰의 모습

서장대로 올라가는 성벽: 서쪽 성벽에서 서장대로 올라가는 길에서 찍은 성곽 전경이다. 팔달산 정상에는 미군 제8부대 관측소가 설치되어 있고 무너진 성벽 사이 길로 사람들이 통행하고 있다. 정상으로 가는 길에 하부 석축만 남은 서포루(西砲樓) 터가 보인다.


동북노대에서 바라본 동장대 [1968년 얀스틱 마이어]

허물어진 동북노대에서 바라본 동장대 안에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 너머 높게 솟아있는 조형물은 호국영령을 위하여 1956년에 건립된 충혼탑이다.


화서문에서 바라본 장안문과 성 밖 풍경 [화서문 안쪽으로 난 길로 바삐 손수레를 몰고 가는 남자와 아이들을 무심히 쳐다보며 앉아있는 황소가 한가로움을 느끼게 한다.]

아래는 팔달산 정상의 서장대 초석이 보이고 그 뒤로는 광교산과 산 중턱에 통신대가 살짝 보인다.

동북공심돈과 동북노대 사이로 난 대로 [성곽 안쪽에서 촬영한 것으로 사진 왼쪽의 동북공심돈과 오른쪽의 동북노대 사이의 큰 길이 나 있는데 현재의 창룡대로이다.]

아래는 성밖에서 본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의 모습

                                위는 팔달문의 오산쪽에서 담아진 모습

                      화성열차가 관광객을 팔달산-화서문-장안공원-화홍문-연무대를 오간다.

      짧은 지식으로 소상치 못한 글을 올려 수원의 모습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