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기 등

아내와 같이 한 하늘길과 종댕이길-1

아름답지만~ 2016. 12. 20. 14:51

겨울만 찾아드는 조류독감(A I)이 올해 들어 두 번째 이동제한(Stand still)으로 강제 휴무를 하게되어 충주에서 휴무를 하고자 아내를 불러 내렸다. 저녁을 올갱이전골로 배 터지게 먹고 와 소화가 안된다고 소화제 사다먹고 13일 저녁을 보냈다.

이튿날 일찍 아침을 먹고 밖을 나서려는데 눈발이 날린다. 송계계곡을 돌아서 가려던 계획을 수정해 수안보온천을 경유해 미륵대원지로 향하는데 지릅재를 넘는 길이 눈으로 덮혀서 은근히 걱정을 하며 아주 서행하였다.





미륵대원지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09) 하늘재를 향해 석비를 지나 좌측에 하천과 그 너머에는 작은 농장을

꾸민 곳을 지나고 자연관찰로 갈림길을 지나 서서히 고도를 높이며 하천은 멀리 떨어지고 친구나무 갈림길 옆

커다란 바위(0923)에는 지나다닌 사람 중에서 정성스럽게 돌을 붙여 놓았다. 그대로 직진하며 친구나무

내려오는 길에 들릴 생각을 하고 생리현상을 참으며 정신없이 정상을 향한다.

미륵대원지 배치도[충주미륵리 석조여래입상,충주 미륵대원지 석조보살의 좌상,충주 미륵대원지 석등,충주 미륵리 오층석탑,충주 미륵대원지 사각석등,온달장군 공기돌,충주 미륵대원지 석 조귀부,당간지주,전통사찰 미륵세계사,미륵리 원터,

충주 미륵대원지 삼층석탑,미륵리 불두, 대광사]



하늘재 정상이 나무 사이로 보일 쯤 우측으로 연아를 닮은 소나무를 지나치게 되고 정상을 밟기가 무섭게 화장실로 향했다. 경상북도 문경시에서 관리하고 있는 화장실은 매우 깨끗하고 보온도 잘 되어 있어 무사히 볼일을 마치고 나왔다.(0941)

하늘재 석비가있는 곳으로 오르는 계단은 90개이다. 정상에 올라 포암산을 보니 날이 흐려서 개운치 못한 풍경이지만

담아보고 탄항산 방면은 입산금지 프랑카드로 막아 놓았다. 오늘까지 입산금지라는 공단 직원의 말을 뒤로 한 채

하산하며 친구나무를 찾았고, 좀 작은 나무가 연리목을 만들었다.

자연관찰로 갈림길을 지나고 나서 하늘재 석비(1030). 좌측 대광사 방향 10m를 가 미륵리 삼층석탑을 보고

(1031) 그 옆의 미륵리 불두를 돌아보고 미륵리 원터를 지나 당간지주, 석조귀부, 오층석탑 및 사각석등을 본 후

석조여래입상터는 먼저 하늘재 다녀올 때도 공사 가림막을 쳤더니 이번에는 해체 복원공사를 하려는지 더욱 튼튼한

재료들로 집을 지었다.(1043)

미륵리 삼층석탑(彌勒里 三層石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3,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신라석탑의 양식을 따른 고려시대 초기의 일반형 석탑으로, 높직한 2중 기단 위에 3층의 몸돌 부분을 형 성하고 그 위에 노반을 얹어 놓고 있다. 매우 안정감을 주며, 소박하고 단아한 모습을 하고 있는 신라시대 정형화된 양식을 잘 따르고 있다.

중원미륵리사지의 동쪽 200m 떨어진 한적한 곳에 탑을 세운 이유를 알 수 없으나 비보사탑설(도선국사 에 의해 제기된 이론)에 의해 땅 기운이 약한 곳을 보강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륵리 불두(彌勒里 佛頭) 충주시 향토유적 제9,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높이 138cm,최대너비 118cm의 대형 화강암 불두로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남아있다.눈매는 일자형으로 보이며 입도 일자형으로 다소 작게 표현되었고 입술 윤곽선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코와 입 사이에는 사 실적으로 음각 주름선이 나타나 있고 귀는 길며 코 끝은

오똑하지 않고 다소 편평하게 처리하였다.미완성 의 석불로 보이며 고려시대 지방 불상양식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충주 미륵대원지 당간지주(忠州 彌勒大院址 幢竿支柱)

당간지주는 깃발()을 매다는 장대(竿)를 고정하기 위한 장치로 보통 사찰의 입구에 세워 신성한 지역임 을 나타낸다.

현재 지주와 간대(竿臺)로 보이는 석재가 남아있는데 간대 윗 면에는 2중의 원각선을 양각하였다. 지주는 아랫부분이 결실되어 전체 크기를 알 수 없으나 윗부분 바깥면에 6엽 연화문을 양각한 것은 희귀한 예이 다. 통일신라시대보다 상대적으로 폭이 넓고 높이가 낮은 고려시대의 양식적 특징을 보여준다.

충주 미륵대원지 석조귀부(忠州 彌勒大院址 石造龜趺)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69

사찰의 남북 종축선에서 약간 좌측(동측)에 위치하여 북향(北向)하고 있으며 길이 605cm,높이 180cm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거북모양 받침이다. 귀갑문(龜甲紋)은 생략하였으며,좌측 어깨 부분에 작은 거북 두 마리가 기어올라가는 형태를 양각(揚刻) 하였고,

앞쪽의 발은 비교적 사실적으로 표현하였으나 형식화 되었다.

귀부의 등 가운데에 비좌(碑座)가 있으나 비를 세울 수 있는 정도는 아니며 수차례 발굴조사에서 비석 조각조차 찾지 못했음을

볼 때 원래 비는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충주 미륵리 오층석탑(忠州 彌勒里 五層石塔) 보물 제95

높이 6m의 오층석탑으로,그 자리에 있던 바위로 받침돌과 기단을 만든 후 초층탑신석을 올려놓았다. 바 위 안쪽을 파내어 만든 기단 면석 한 면이 직각을 이루지 못하고 일그러져 있는 점이 흥미롭다.

일반적인 탑의 모습과 비교할 때,옥개석의 너비가 탑신석에 비해 아주 좁고 낙수면의 기울기가 심하며 각 층의 체감율(遞減率)

고르지 못해 투박하고 둔중한 느낌을 주고 있다.

충주 미륵대원지 사각석등(忠州 彌勒大院址 四角石燈)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15

이 석등은 전형적인 형식에서 벗어나 특이한 결구 수법을 보여주는 석등으로 특히 석주형 화사석은 고려 시대에 건립된 일부

석등에서만 채용된 기법으로 고려 수도인 개성 일대에서 지방으로 전파되는 과정을 이해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특히 고려시대 절터에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한 팔각석등이 함께 세워져 있음은 통일신라문화와 고려문화 가 공존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미륵세계사 쪽 다리를 건너 좌측의 공기돌 바위를 둘러보고 천천히 송계계곡 쪽으로 방향을 잡고 뒤에 차가

붙으면 잠시 우측에 서거나 서행하며 뒷차를 보내고 삼거리(충주방향과 단양방향)에서 좌회전 해 월악나루에서

커피를 한잔 마셨다. 그리고 문강온천 쪽으로 차를 돌렸으나 유황온천은 싫다는 바람에 마즈막재 종댕이길

주차장에 차를 댄다.(1213)

공기돌 바위 비지정,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35번지

자연적인 바위에 약간의 인공(人工)이 가미되었으며,바위의 생긴 모양이 거북와 비슷하여 거북바위라 불 리워지고 있으며,정상부분에 좁은 폭()으로 길게 홈을 파서 그 홈을 따라 바위 밑 부분까지 물이 잘 빠 지도록 되어 있다.바위 위에 올려져 있는 직경 1m 가량의 둥근돌(공기돌)은 고구려 평원왕(平原王)때의 온 달장군(溫達將軍)이 신라군과 싸우기 위하여 이 지역에 주둔하고 있을 때 이 공기돌로 힘자랑을 하였다고 하여 온달장군 공기돌이라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눈발은 조금 세찬데 종댕이길을 나서서 오솔길 삼거리(1227)에서 오솔길로 들어서니 상당히 가파르지만 보조 밧줄을 설치해 안전하게 내려서고 포장도로를 만난다.(1241)


                                         위:뒤돌아 본 마즈막재, 아래 종댕이 오솔길 삼거리


                           위: 가파른 오솔길, 아래: 15분여 고생 끝에 오솔길이 포장도로를 만난다.

                                                           2부로 이어짐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