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기 등

동해안을 콕 찍고 오기 (광교산우회; 2016.10.23.)-2

아름답지만~ 2016. 11. 2. 09:27

다시 응향각(凝香閣)과 대성문(大聖門)을 지나고 칠층석탑의 공사중인 간이 칸막이를 돌아드니 

원통보전(圓通寶殿)이다. 건칠관음보살좌상이 본존불로 안치된 원통보전에 들려 오늘의 여행의

무사안녕을 빌고 이정목을 따라가다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등재된 담장(垣墻)을 지나는 원통문

(圓通 門)을 지나며 길가 축대와 그 위로있는 담장 그리고 작은 돌탑들이 무수히 만들어진 길을

지나니 해수관음상이 있는 너른 광장이다. 이 관음상도 2005년의 화마에 그을렸다는데,불의

위력이 얼 마나 대단했던지를 생각해 보며 언덕을 내려서는 길 좌측으로 20m를 가면

해수관음공중사리탑비가 있어서 부리나케 다녀오고 가던길로 내려선 곳에는 2005년의 화재시

온전히 보존되었다는  보타전(寶陀殿)이 자리하고 있다.



원통보전(圓通寶殿)

관세음보살님을 봉안한 낙산사의 금당(金堂; 본존불을 모시는 사찰의 중심이 되는 불전)으로 671

의상대사가 홍련암 관음굴에서 21일 기도 끝에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고 여의주, 수정염주와 함께

사찰의 건립위치를 전해받은 곳에 원통보전을 세웠다.

원통보전에 봉안된 건칠관음보살좌상(보물 제1362)은 고려시대 후반의 전통양식이며 강원도에서는

유례가 없는 건칠기법으로 조성된 불상이다. 2005년 양양산 불로 전소되었으나 건칠관세음보살좌상은

금곡 정념스님과 사부대중의 지혜와 원력으로 화마 속에서도 무사할 수 있었으며,

현 전각은 200711월에 복원하였다.


원장(垣墻)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4

원통보전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으로, 조선시대 세조가 낙산사를 중창할 때 처음 쌓았다고 전한다

높이는 약 3.8m, 전체 길이 약 220m로 일부 원형이 남아있고 대부분 2005년 산불 이후에 연결보수하였다.

장대석 기단이나 자연석 석축 위에 기와와 흙을 차례로 다져 쌓고 중간에 원형 화강석을 박아 넣어 조형미가

뛰어난, 조선시대 사찰의 대표적인 담장이다. 원통보전의 담은 법당이 성역 공간임을 구분하면서

원형화강석은 단조로운 벽면의 의장에 긴장감과 변화를 연출한다.


해수관음공중사리탑(海水觀音空中舍利塔)

1692년 비구 석겸(釋謙) 등이 큰 뜻을 세우고 조성한 사리탑이다. 비문에 따르면, 1683(숙종9) 홍련암 

불상에 금칠을 다시 할 때 주변에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하더니 공중에서 사리가 탁상 위로 떨어져 이를 

봉안하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탑은 8각 원당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탑신과 상륜(相輪)은 원구형(圓 球型)이다. 기단부의

상대석중대석하대석에는 각각 다양한 문양을, 탑신부의 아래쪽에는 연꽃을 새겼으며 옥개석(屋蓋石;

석탑이나 석등 따위의 위에 지붕처럼 덮는 돌)상륜부(相輪部; 불탑의 꼭대기에 있 는 쇠붙이로 된

원기둥 모양의 장식)는 통돌로 되어 있다. 2006년 해수관음공중사리탑을 해체보수하는 과정에서

진신사리와 장엄구가 발견되었으며 홍련암으로 가는 입구에는 사리탑의 유래를 새겨 넣은

해수관음공중사리탑비가 있다.

보타전에서 남쪽방향으로 내려서면 보타락(寶陀落)이란 2층 누각 그 앞 낮은 곳의 연못에는

분수를 겸한 작은 섬이 두 곳에 있으며, 다소 작은 분수가 있는 섬에는 무수한 량의 동전들이

떨어져 있어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많은 사람들이 기원하고 있는 듯 했다. 연못을 좌편에

끼고 지나서 좌측 방향으로 진행하니 의상대(義湘臺)가 해송과 어우러진 자태로 뽑내고 있으며,

좌편 멀리 홍련암(紅蓮庵)이 있고, 홍련암 바로 앞 절벽과 파도치는 바다의 품세가 한껏 멋스럽다.





의상대(義湘臺)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48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671(문무왕11) 낙산사를 창건할 때 이곳에서 좌선(坐禪)한 것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이다. 1925년 당시 주지 만옹스님이 건립하였고 만해스님이 의상대기를 지었다. 이후 수차례 

중수를 거듭하였으며 20099월 해체복원하였다.

육각형의 정자로 이익공[二翼工; 공포의 구조형식인 주심포(柱心包)다포(多包)익공(翼工)계의 세가지

형식 중 구조적으로 가장 간결하게 꾸며진 형식, 이익공은 익공이 2개인 양식]양식의 공포(栱包/貢布;

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기 위하여 기둥머리에 짜맞추어댄 나무쪽)에 겹처마 모임지붕으로 상부에 화강암

절병통(節甁桶; 궁전사모 정자육모 정자팔모 정자 따위의 지붕마루 가운데에 세우는, 기와로 된

항아리 모 양의 장식)을 올렸다. 주변의 해송(海松)과 암벽 그리고 동해바다가 어우러진 동해안의

대표적인 해안정 자로 의상대에서 맞는 일출경(日出景)은 낙산사의 백미(白眉)이다.



홍련암으로 가는 길목에는 절편을 놓아두어 지나는 분들이 집어 먹을 수 있도록 해 놓았으며

이곳을 지나서는 마음을 씻어준다는 약수가 있고 자그마한 동종이 있다. 산기슭에는 홍련암

공덕비 2기와 해수관음공중사리탑비가 있으나 멀리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화재당시의 사진이 홍련암의 무사함을 알리고 있으며, 법당 안은 무수한불자들이 기도하고

있어 비집고 들어가기 불편스러워 되돌아 나와 낙산다래헌 앞을 지나서 후문으로 나아가니,

옛 기억이 조금 살아나는 듯 했으며, 예전의 호텔은 리모델링을 하려는지 간이 가림막을

설치했다. 일행들 몇을 볼 수 있 었는데 되돌아가는 길이 헷갈리는 듯 했다.


홍련암(紅蓮庵)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6

의상 대사가 동굴 속으로 들어간 파랑새를 따라가 석굴 앞 바위에서 기도하다 붉은 연꽃 위의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세운 암자로, 홍련암이란 이름도 여기서 유래한다. 676(문무왕16) 의상 대사가 창건한 이후

수차례 중건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현재의 전각은 2002년에 중건한 것으로 관음굴이 있는 해안가 절벽

위에 세워진, 흔치 않는 건물이다. 정면 3, 측면 3칸이며 앞뒤의 지붕 형식이 다른 불전(佛殿)으 로 전면은

팔각지붕, 배면은 맞배지붕 형식이다. 불전 내 바닥에 난 구멍의 유리를 통해 절벽 아래 관음 굴을 볼 수 있다.





4. 한계령휴게소 등 휴게소

한계령휴게소에서는 안개가 끼어 있어 사계가 흐릿하고, 여기까지 오는 잠깐의 졸음이

계곡미도 보지 못한채 휴게소에 도착한 것이었다. 한계령휴게소의 기온은 초겨울의 날씨를

경험하기에 충분했으며, 설악산 탐방코스인 수많은 계단과 감시초소가 있는 입구를

쳐다보며 옛날에 신나게 등산하던 추억을 곱씹어 보았다.




이후의 가는 길은 차량의 지체로 진행은 더디기만해 낮의 회와 곁드리고 차내에서 간간히

넣은 음료수(?) 덕으로 생리현상은 빨리 오고 그래서 찾아든 삼팔휴게소, 삼팔교의 석비가

눈에 띄어 기념으로 담고 모두는 서둘러 애마에 올라 갈길을 서두르지만 차량의 홍수 속에

진행은 더디다. 철정휴게소 근처 까지는 주위를 분간하고 있었으나,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는지 애마는 신 나게 달리는데 어두워진 밖의 경치는 우리가 달리고 있는 위치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이때 스 마트폰의 진가를 활용하여 중앙고속도 춘천과 만종분기점 사이를

달림을 알 수 있었다. 원주휴게소와 덕평휴게소에서는 생리현상만을 해결하고 부리나케 차에

올라 내달리지만, 용대 리에서부터 동홍천 나들목까지와 여주분기점에서 호법분기점까지의

정체된 흐름이 시간을 많이 허비해 지체될 수 밖에 없는 늦은 시간에 수원을 올 수 있었다.

                                             아래의 44번 국도의 차량이 정체된 모습(삼팔교휴게소에서)

3) 소회(素懷)

인생사가 모두 그러하듯이 지나고 나면 그게 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게

되듯이 이번 우리 광교산우회의 모든 회원들의 뇌리에는 맛있고 싱싱한

대선횟집의 모듬회와 바닷가에서의 파도가 그리울 것이다.

필자처럼 직장을 갖고있는 회원이라면 월요병에서 고생을 한 것은 분명할

것이다. 낙산사의 추억은 화마가 할퀴고 간 문화재들이 거의 모두 복원되어

그대로 살아나는 기분이었지만, 그 많던 노해송(老海松))이 어쩔 수 없이

젊어져 자연의 위대함을 인간으로서는 어찌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느끼고

온 기분이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