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을 뒤로하고 내려서 절벽도 내려서고 암봉으로 가득찬 중간길도 지나고 전에는 이리저리
더듬던 길을 잘 다듬고 계단으로 만들어 놓은 길도 지나서 토끼재에 다다른다. 이곳에서
귤 2개로 갈증을 해소하고 종루봉으로 향하는 길, 처음 만나는 계단길이 추억을 떠올리게
하며 바위길을 우회해 오르니 종루봉 못미쳐 등로를 말끔하게 만들고 깔개를 깐 모습이 마치
연회장 입구의 카펫 같은 느낌이다.
시루봉(정상석)서 종루봉 쪽으로 이어진 길, 토끼재의 모습
종루봉으로 향하는 계단, 잘 정돈된 종루봉에 이르는 등로
종루봉(14시43분)에서 주변을 둘러보고 종루봉에도 1999년에 당선된 글 “광교라 부른다”가
설치되어 있다. 내려서 형제봉으로 향하는 등로는 정비가 잘 되어 내려서기가 여간 수월치
않다. 오랜만에 김준용장군 전승비로 내려서서 바위벽을 돌아서 전승비가 새겨진 곳
(14시53분)을 다녀 나오다가 아늑한 곳에서 나머지 떡을 먹고 나서서 얼마가지 않아
계단길로 이어지는 데크를 만난다.
종루봉의 팔각정과 우수상을 수상한 '광교라 부른다' 시비
김준룡장군 전승지 및 비 (경기도기념물 제38호,수원시 장안구 하광교동 산1-1,1977.10.13.지정)
이 비는 병자호란[1636년(인조4)12월~1637년 1월]때 광교산에서 청나라 군사를 물리쳤던
김준룡(金俊龍;1586~1642)장군의 전승지에 비 모양으로 암반에 글자를 새긴 것이다. 김준룡은
원주김씨로 1609년(광해군 원년) 무과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전라도 병마절도사에
재임하던 중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병사를 이끌고 광교산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격전을 벌인 끝에
청 태종의 매부이자 후금 태조의 사위이며 적장수였던 양고리(楊古利,楊古里,백양고리)등을 사살하였다.
김준룡 장군은 1792년 정조대왕 때 ‘충양공(忠襄公)’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화성축성의 총리대신이었던 체재공이 석재를 구하기 위해 광교산에 갔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김준룡장군 전승 사실을 새기라고 했다고 한다. 암반에는 세로로 ‘충양공김준룡장군전승지
(忠襄公 金俊龍將軍戰勝地)’라 큰 글씨로 새겼고, 그 좌우에 조금 작은 글씨로 ‘병자청란공제호남병
(丙子淸 亂公提湖南兵)’과 ‘근왕지차살청삼대장(勤王至此殺淸三大將)’이라 써 놓았다.
이는 ‘충양공 김준룡장군의 전승지’라는 것과 함께 ‘병자호란 때 호남의 근왕병을 이끌고 이곳에서
청나라 3명의 대장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이 시간에 산객들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며 양지농원쪽 철조망을 지나 형제봉
자락의 오름길이 지그재그로 이어진다. 가파른 계단길이 꽤 많이 이어진 중간쯤서 뒤따르는
산객이 언제 빠르게 뒤따라왔는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뒤따른다. 내 속력이 늦어
선두를 내어줄까도 생각했지만 그 사람도 꽤 멀리서 빠르게 쫓아왔지만 급경사 계단길은
빠르게 진행을 못하는지 계단을 다 오를 때까지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좌측으로 오르는
형제봉 정상을 향하는데도 보이지 않았다.
위는 종루봉에서 내려오며 이어진 계단 일부, 아래는 형제봉 오르는 계단길
바위들을 요리조리 피해서 형제봉 정상에 오르니 어느 산객이 카톡을 보냈는지 싱글벙글
거리며 정상석 주변에 머물러 원경은 제대로이지 못했으나 다가서니 물러나 정상석을 담고
(15시39분) 절벽에 드리워진 밧줄을 타고 내려선 후 능선을 옮겨 계단데크의 장거리 하산을
하고 백년수 정상의 길 이정표(15시56분)에서 그옛날 성불사 지를 다녀왔던 기억을 더듬었고
옛날 이른 봄이면 어지간히 질었던 구간을 지나니 멀리서도 태극기를 꽂은 지역이 눈에 들어온다.
형제봉의 정상석,이정표와 절벽의 밧줄, 백년수정상의 이정표
가까이 가보니 유해발굴 석비(16시)가 등로 좌우에 있고 누군가 조의를 표하는 술 한잔과
과일 등이 그 앞을 장식하고 있다. 잠시 조의를 표하고 오름을 지나며 깔개로 잘 정비된
등로는 고압철주 옆으로 길게 이어져 있다. 많은 산객들이 다니며 망가지는 등로를
보전코져 등로사거리(백년수,우회로)까지 이어지고 얕지만 산봉우리로 직진해 올라가 쉼터
의자에서 귤 두 개를 먹고 일어선다. 산 속의 밝기는 벌써 어두워지는 느낌이라
서둘러 갈길을 재촉해 본다.
6.25 전사자 유해발굴지의 석비와 천년수 정상의 철탑 주변 등로의 깔개
고속도로의 소음이 잦아들 쯤에 우측 떨어진곳의 기독교회관이 전에 없이 크게 느껴지는
곳을 지나고 한참을 달려 경기대학교 울타리를 지나고 반딧불이 화장실에 들렸다가
광교저수지 둑방(16시53분)을 지나고 또다시 산으로 들어 정상근처에서 양갱을 먹으며
능선길을 따라 수일고 앞쪽(17시30분)으로 하산한다. 부리나케 걸어서 집에 드니
18시10분경이다. 3일의 상태보다 훨씬 컨디션이 좋게 느껴진다. 오늘 내가 걸었던
걸음수는 36,989걸음이고, 거리는 27.55km를 가리킨다.
광교저수지 둑방에서는 그래도 밝은데, 수일고가 보이는 산끝은 땅거미가 내렸다.
과연 나의 척추관협착증은 등산으로 척추 주변의 근육을 강화하므로서 투약과 함께 치료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의사선생님과 의논해 조언을 들어봐서 향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 지어야 할 것이다. 어찌보면 이보다 더 저렴한 치료법은 없을 것이다.
너무 운동량이 과하다면 이튿날 피로와 함께 컨디션 난조가 있어야 하지만 현재는 전혀
그러한 증세를 감지할 수가 없으니, 퇴직후의 첫 번째로 얻은 나에게 준 하느님의
선물일까 생각해 본다.
끝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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