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도봉서당(慶州 桃峯書堂)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97호, 경주시 서악동 709-1
도봉서당은 조선(朝鮮) 성종(成宗)대의 학자였던 불권헌 황정(不倦軒 黃玎, 1426~1497)의 학덕과 효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1545년(중종 1) 지금의 위치에 추보재(追報齋)라는 묘하재실(墓下齋室)로 건립하였다. 이후 전란(戰亂)과 긴 세월을 거치며 훼손되었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불권헌 황정(不倦軒 黃玎)의 후손들이 1915년 추보재가 있었던 자리에 도봉서당(桃峯書堂) 일곽을 중건한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이 서당은 숭앙문(崇仰門)•도봉서당(桃峯書堂)•추보재(追報齋)•연어재(鳶魚齋)•상허당(尙虛堂) 등 모두 7동(棟)이며 일종의 서원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배치형식은 재사(齋舍)를 강당 뒤에 둔 전강당 후재사형(前講堂 後齋舍型)인데, 이는 경상도 지역에서 보기 드문 예(例)이다. 강당(도봉서당)은 정면 5칸•옆면 1.5칸으로 전면에 툇마루를 두었고, 옆뒷면에 쪽마루를 둘렀다. 사당(상허당)은 정면 4칸•옆면 1.5칸이며, 중당협실(中堂狹室)로 구성된 바로 볼 때 강당형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서재(연어재)는 남쪽과 동쪽면을 모두 팔작지붕으로 처리하여 두 개의 정면을 갖게 한 점이 눈길을 끈다. |
◐ 1월 13일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이곳에서 내리자마자 만나본 곳이다.
10) 경주 서악동 삼층석탑(慶州 西岳洞 三層石塔) 보물 제65호, 높이 4.06m, 통일신라시대
이 탑은 화강암으로 축조된 통일신라시대의 3층 석탑으로 모전탑 계열에 속하며, 서악서원(西岳書院)의 뒤편 선도산(仙桃山) 기슭에 위치해 있다. 기단은 바닥돌 위에 다듬은 돌덩이 여덟 개를 2단으로 어긋물리게 쌓아 만들었다. 1층 몸돌 남쪽에는 문틀을 얕게 파서 표시하였으며, 그 양쪽에는 인왕상(仁王像0을 돋을 새김 하였다. 지붕돌은 하나의 돌에 밑받침과 윗면의 층급을 두었으며, 몸돌에 비해 커서 무거운 느낌을 준다. 이 탑은 돌을 벽돌처럼 다듬어 쌓은 모전석탑 형식의 유형분포를 조사•연구하는데 하나의 지표가 되므로 중요시 된다. 경주시 남산동 동탑(보물 제124호)을 모방한 듯 하며 시대와 조각 수법에서 다소 떨어진다. |
◐ 1월 13일 서악고분군을 방문하러와 처음 가까운 곳이라 먼저 들려본 곳이다.
서악동 삼층석탑과 바로 옆 고분군들이 무수히 많이 분포한다.
11) 서악동 바위구멍유적과 주상절리
이 유적은 표면에 크고 작은 홈들이 500여개가 새겨져 있어 성혈(性穴)바위 또는 바위 구멍으로 불리운다. 제작 시기는 선사시대로 추정되며, 바위의 크기는 장축 780cm, 단축 210cm이다. 바위에는 기하학적 문양과 여러 선들이 연결되어 있어 농경시대의 민간 신앙과 유적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형태의 바위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보이는데 학계에서는 바위 구멍을 별자리와 태양숭배, 풍요와 다산의 상징물 등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알바위, 알터와도 관련이 있다. 『경주 풍물지리지』에는 이 곳을 용작곡(龍作谷)으로 표기하고 있어 용 신앙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는 학설이 있다. |
난해한 바위구멍 유적을 어느 어르신(산불감시원)은 친절히 막대로 가리키면서 전체적인
호랑이상, 홈을 이곳 저곳 가리키며 남성과 여성의 성기, 북두칠성, 용트림의 홈패인 선이
용이 승천하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등 재미있게 설명하시며, 용지골로 불리는 곳의
주상절리 입구를 손수 가르켜주시며 노구를 이끌고 오시는 친절함으로 오묘한 주상절리의
절경을 볼 수 있었다. 단 계곡이 좁아서 강수기에는 쉽게 접근하기가 어려운 단점이 있다는
것이며 친절한 어르신의 설명을 빌자면 이 계곡이 용트림하는 흔적이라며 계곡 초입부터
끄트머리까지 군데군데 설명을 덧붙여 주셨다.
주상절리(柱狀節理)
용암이 식을때는 수축하면서 갈라지게 되는데 이 때 용암 표면에는 수축 중심점들이 생기고 이러한 점들이 고르게 분포하는 경우 용암은 6각형의 무수한 돌기둥으로 갈라지게 된다. 마치 여름철에 가뭄이 들면 논바닥이 거북등처럼 갈라지는 현상과 같다. 그러나 반드시 돌기둥 단면이 6각형은 아니며 4각형,5각형 등 다양하다. by 다음백과
◐ 1월 13일 눈내리는 가운데 서악동 고분군과 함께 찾은 곳이다.
우측에 바위구멍유적, 시멘트길 따라가면 용지골, 아래 매직으로 입구를 자세히 기록
시멘트 도로를 따르다 만나는 다리 앞, 석비와 전주사이로 들어 개울로 진입한다.
주상절리는 들어서는 지점부터 끝까지 갔다가 되돌아 초입 사진으로 끝이다.
3부로 이어서 갑니다.
'국내 여행기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O•V트레인 네 가족여행-1 (0) | 2017.02.17 |
---|---|
경주여행에서 빠진 기록들-3 (0) | 2017.02.06 |
경주여행에서 빠진 기록들-1 (0) | 2017.02.06 |
신라의 왕릉들-2 (0) | 2017.02.04 |
신라의 왕릉들 (0) | 2017.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