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기 등

사지(寺址)와 소금산(小金山)-2

아름답지만~ 2019. 3. 2. 19:22

원주 법천사지(原州 法泉寺址) 사적 제466호, 소재지: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법천사는 고려 중기의 대표적인 법상종(法相宗)사찰로 명봉산(鳴鳳山)자락에 위치해 있다.

이 곳에는 당간지주를 비롯하여 지광국사 현묘탑비(智光國師 玄妙塔碑)와 법당터 및 석탑의

일부 등이 남아 있으며, 주변에는 이 절터에서 나온 석재(石材)들이 흩어져 있다. 절터의 동편

산기슭에는 지광국사의 부도를 모셨던 탑전지(塔殿址)가 남아있다. 부도는 서울로 옮겨졌으나

탑비는 그대로 남아있다. 탑전지는 높게 쌓은 축대 위에 건물을 지었으며, 왼쪽의 건물터

위에는 기둥을 받치던 돌인 주초석, 불상의 뒤를 장식하던 광배(光背), 계단 사이를 장식하던

대담하고 화려한 조각의 답도석(踏道石), 그리고 예배를 드리던 단인 배례석(拜禮石)•석탑재

등 이 곳에서 출토된 석재를 모아 놓았다.

 

 

 

 

 

 

 

 

법천사(法泉寺)지광국사(智光國師)현묘탑비(玄妙塔碑)  국보 제59호

이 탑비는 고려 시대의 스님인 지광국사(984~1067)의 사리를 모신 현묘탑(국보 제101호)을 세운

이후 1085년(고려 선종 2)에 스님의 삶과 공적을 추모하기 위하여 현묘탑 옆에 세운 비이다.

현묘탑은 일제강점기인 1912년에 일본인들이 몰래 일본으로 가져갔으나 이후 1915년에 되돌려 받아

현재는 경복궁 경내에 세워져 있다.

비의 앞면에는 스님이 984년에 태어났고 이름은 원해린(元海麟)인 것과 16세(999)에 스님이 되어

승통•왕사•국사의 칭호를 받고 84세(1067)에 이곳 법천사에서 돌아가신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비의 뒷면에는 1,370여 명의 제자들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탑비는 거북 모양의 받침돌 위에

비의 몸돌을 세우고 머릿돌을 올린 모습으로 전체 높이는 4.55m이다.

거북의 등에 새겨진 ‘왕(王)’자, 연꽃잎과 구름속의 용이 조각된 왕관 모양의 머릿돌, 그리고 비 몸돌에

섬세하고 화려하게 새겨진 연꽃•구름•용 등을 통하여 당시 조각예술의 훌륭함을 느낄 수 있다.

 이 절에 관하여 남아 있는 최초의 기록은 928년(경순왕 2)으로, 신라 하대에 이

지역의 대표적 사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에는 무신정권 이전까지 법상 종의

대표적인 사찰로 문벌 귀족의 후원을 받아 번성한 사찰이었을 것으로 보이 며,

10세기에서 12세기까지 관웅(寬雄),지광국사,정현(鼎賢),덕겸(德謙),관오(觀奧),

각관(覺觀)등 유명한 승려가 계셨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유방선(柳方善)이란 학자가 이 곳에 머물며 제자를 가르쳤다고 하며,

이 때 한명회(韓明澮)•서거정(徐居正)•권람(權擥)등이 그에게서 배웠다고 한다.

허균(許筠)의 기록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아름다운 절정, 영혼이 머문 자리

법천사지광국사탑(국보 제101호)터

  이곳은 고려시대 고승 혜린 스님의 유해를 모신 지광국사 탑이 있던 자리이다.

탑의 이름은 현묘(玄妙)이다.984년 원주에서 태어난 스님은 승려로서 최고 지위인 왕사,국사가 되어

온 백성과 왕의 존경을 받았다.

 

 1070년 10월, 스님이 돌아가시자 법천사 동편 산기슭에서 다비를 하였다. 1085년, 왕실과

스님의 제자 그리고 고려 백성들은 정성을 다해 아름다운 탑을 세워 스님의 유해를 모시고, 비석에는

스님의 행적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아름다워서 슬픈 영혼을 위하여

  이 탑은 우리 민족의 수난과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수탈되어 현해탄을 건넜고, 한국전쟁 때에는 포탄에 온 몸 이 찢어지는 큰 상처를 입었다.

그 쓰라린 역사에서 스님의 영혼이 어느 한 순간인들 편한 날이 있었으랴!

 

  제자리를 떠난지 100여년, 아름다워서 슬픈 탑과 탑비, 스님의 영혼이 이제 이곳에서 다시 만나

아픔이 영원히 치유되길 빈다.

 

지광국사탑, 수난과 아픔의 기록

1911년 9월

1912년 5월

1912년10월

12월

1915년 9월

한국전쟁

2005년10월

2015년 3월

일본인 골동상 모리가 불법 반출하여, 실업가 와다 쓰네이치에게 매각

후지타 헤이타로에게 매각, 오사카(大阪)로 밀반출

조선 총독 데라우치의 반환 명령

총독부에 기중형식으로 반환

조선물산공진회 전시, 그후 명동성당 부근, 경회루 동편 등 모두 9차례 이전

피폭으로 옥개석 이상 대파(12,000조각), 1957년 시멘트로 복원

안전상 국립중앙박물관 용산 이전시 제외, 경복궁 내 고궁박물관 뜰에 존치

보존처리를 위하여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이전

☀ 거돈사지를 본 후의 법천사지는 너무도 어수선하고 뒤늦은 복원사업이 아직도 많은

시간을 지내야 할 사찰지였다. 당간지주를 보고난 후 사찰의 규모는 너무도 큰 규모임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걷어낸 수많은 석재와 뒤엉킨 흙들이 정리되기에 필요한 시간은

 언제쯤일런지~

 

주변을 정화하고자 노인 분들이 쉬고 있다가 일어나 인사를 나눈다. 국가에서 노인들 일자리

차원에서 동원했을 것으로 짐작은 되지만 4,5인이 청소를 하기엔 너무도 할 일이 부족할 듯해

보였다. 일자리는 늘리되 다른 사람들 눈에 놀고 먹는다는 인식은 들지 않도록 행정당국은

신경을 좀더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간현관광지: 남한강 지류인 섬강과 삼산천이 합쳐지는 지점에 위치한 간현관광지는

오형제 바위와 같은 웅장한 기암절벽과 작은 금강산이라는 뜻인 소금산 등 수려한 경관과

거대한 암벽이 절경을 이룬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섬강축제가 열리고, 넓은 백사장과

얕은 수심의 강물, 원주 소금산 출렁다리, 야영장 등이 갖춰져 있는 원주의 대표적인 여름휴가지이다.

 

 

 

 

 

 

 

 

 

 

☀원주소금산출렁다리[원주의 대표적 관광 콘텐츠인 소금산 출렁다리는 길이 200m, 높이 100m,

폭 1.5m로 산악 보도교 중 국내 최장,최고의 규모입니다. 공중에서 느끼는 아찔함은 원주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부족함이 없으며 출렁다리가 있는 소금산 암벽 봉우리 스카이 워크 전망대에서는 섬강의

빼어난 풍광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출렁다리 진입로는 데크로 조성해 어른, 아이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소금산 정상[제일 높은 곳은 343m, 지금 여기부터 쉼없이 오르면 1시간이내 도달할 수 있으며 능선을

따라가며 오른쪽으로 낭떠러지와 그 아래로 삼산천을 중간중간 내려다 볼 수 있고 삼산천 건너편으로

간현봉을 두는 산행길이 될 것입니다.]

 

☀404철계단[계단수가 404개여서 붙여진 이름인데, 원래 길이 없던 낭떠러지를 계단을 만들어 길을

곳이어서 경사각이 거의 90⁰에 가까운 곳도 있습니다. 이 철계단은 설악산 울산바위 808 철계단을

만드신 분들이 만드셨다고 합니다.]

 

☀소금산과의 약속[1. 낙엽조차 아끼는 마음. 2. 음주산행 및 등산로 이탈금지.

                         3. 취사,야영,화기소지,쓰레기 투기금지. 4. ‘남’을 배려하기.]

 

* 원주소금산출렁다리: 원주의 대표적 관광 콘텐츠인 소금산 출렁다리는 길이 200m,

높이 100m, 폭 1.5m로 산악 보도교 중 국내 최장,최고의 규모입니다. 공중에서 느끼는

아찔함은 원주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부족함이 없으며 출렁다리가 있는 소금산 암벽

봉우리 스카이 워크 전망대에서는 섬강의 빼어난 풍광을 감상 할 수 있습니다. 출렁다리

진입로는 데크로 조성해 어른, 아이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 간현유원지는 제철(여름철)에는 매우 혼잡스러운 곳이라 지나치기만 일수였던 곳이다.

출렁다리를 타기위해 들렸고, 매우 세심한 설치로 578개의 계단은 그리 힘들지 않도록

지그재그로 설치해 쉬엄쉬엄 오르기에 무리가 없었다. 그리고 데크 길 군데군데 쉬었다가

갈 수 있도록 배려했으며, 간간히 팔십객도 보임은 그리 어 렵지 않다는 반증은 아닐까 한다.

 

그 끝에서 만나는 출렁다리는 가장 뒤늦게 설치해서인지 매우 안정적인 느낌이었다.

출렁다리 끝에서 만나는 게이트는 예전 같으면 소금산 정상까지 다녀오련만 지금의 나로서는

이곳까지 오를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할 처지이다. 모든건 순리대로 살아 야 한다는

대명제를 잊지 말아야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