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코스는 예전 정보로 내려가는 열차에서 통화했다. 인원관계로 오후 3시에
확정짓는다는 통화에 안될 수도 있다는 배수진을 쳐 놓았는데, 12시경 확정되었다는
연락이 와서 출발한 코스였다. 명주(名酒)와 명주(明紬)가 헷갈리는 순 한글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랄까?
학창시절 어렵던 시절이었기에 뽕나무 심기와 누에치기가 성행했던 시절이 있었으나
곧 폐농의 전철을 밟으며 동충하초가 명맥을 잇는 줄 알았던 양잠이 자라나는 학생들의
견학코스가 됨직한 작업장은 나이 든 부인네들의 고단했던 시절을 재현해 놓은 듯했다.
아주머니께 ‘후계자라도 있나요?’하니 우리가 마지막 세대일 거라는 대답이다. 잊었던
추억을 재학습한다는 뜻으로 둘러본 일들을 적습니다.
1. 다녀온 날: 2019년 3월 21일
2. 가는 길: 시티투어를 이용해 도착
3. 둘러보기: 시티투어라 안내인이 기다려 설명을 하고 명주작업관으로 가서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는 시연, 직조하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각종 직조기와 도구들을 둘러 보았다. 양잠과
관계된 옛 선조들의 글과 연관된 지식들도 담아 보았다. 명맥을 잇고자 정부가 노력한다는
결과물이 한시적으로 생산되고 운영되는 것이라 많은 사례를 보지는 못하고 떠났다.
누에의 생활사[월년란-알까기-1령-2령-3령-4령-5령-누에올리기-누에고치-실뽑기
월년란←알낳기←나방←번데기↲
누에의 한 살이[누에는 알-애벌레-번데기-나방으로 완전 탈바꿈하면서 뽕잎만 먹고 사는 곤충이다.
누에는 야생 뽕나무 잎을 먹는 해충이었으나, 누에의 비단실을 이용하기 위해서 집에서 기르는 과정에
야성을 잃고 인류에게 도움을 주는 자원곤충이 되었다.]
허준(許浚)의 동의보감(東醫寶鑑)[허준의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청원(淸源)이고 호는
구암(龜岩)이다. 선조 때 내의(內醫)가 되어 왕실의 진료에 공을 세웠다.
1592년(선조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어의(御醫)로 왕을 끝까지 호종(扈從)하고 돌아와
1604년 호종공신(扈從功臣) 3등에 책록되고, 1606년 양평군(陽平君)에 봉해졌다.
후에 대간의 반대로 직위가 취소되고, 1608년 선조가 죽자 치료를 소홀히 했다는 죄로
한때 파직당했다. 1610년(광해군2) 16년의 연구 끝에 완성한 <동의보감(東醫寶鑑)>은
조선 한방의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18세기에는 일본과 청(淸)
나라에서도 간행될 만큼 높이 평가되었으며 지금도 여러 나라에서 번역 출판되고 있다.]
<동의보감>의 편찬 목적[이 책의 편찬 목적은 임진왜란으로 전국토의 대부분이 황폐하여
병자가 쉽게 치료를 받을 수 없는데다가 의서마져 부족하였고, 의원과 의서는 있으나
새로운 학술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일부 의원들이 처방의 뜻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해 약을
잘못 쓰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선조는 허준 등에게 새로운 의서의 편찬을 명하였다.
이에 허준은 의원으로서 본분을 다하기 위하여 이 책을 편찬하게 되었다]
<동의보감>에 기록된 잠사기록[뽕나무 뿌리(桑根白皮): 폐기로 습이 차고 가슴이 그득한 것,
수기로 부종이 생긴것을 낫게 하며 담을 삭이고 갈증을 멈춘다.
누에 똥(蠶砂): 성질은 따듯하고 독이 없다. 풍비로 몸을 잘 쓰지 못하는 것과 배가
끓는 것을 치료한다]
뽕과 누에, 비단의 어원(語原)[뽕나무(桑) 뽕나무의 한자인 상(桑)은 잎이 많은 나무라 하여 木
(나무목)자 위에 十(열십자)가 3자(字) 있는 상형자로 48자(十,十,十,十,八)를 나타낸다.
따라서 48세가 된 사람을 뽕나무 나이인 상년이라 한다.][누에(蠶) 누에는 하늘에서 내린
벌레라고 하여 천충(天虫)이라 하는데, 한자 잠(蠶=누에 잠)은 이런 의미를 지닌 뜻 글자이다.]
[실(絲) 한자 사(絲=실사)는 실타래 모양을 본떠서 만든 상형문자이다. 한편으로는 누에의
실샘이 한 쌍으로 되어 있어서 이 모양을 표시한 것이라고도 한다.][비단(帛) 한자 백
(帛=비단 백)은 비단을 입은 옷모양을 상형화한 문자이다]
잠(蠶)의 육덕(六德)[천하(天下)의 생령(生靈)을 의피(衣被)함은 인(仁)이요
식상순직(食桑殉職)하야 주은(主恩)에 보답(報答)함은 의(義)요
탕화(湯火)의 액(厄)을 불사(不辭)함은 충(忠)이요
필(必)히 사안사기(四眼四起)함은 신(信)이요
물상(物象)에 따라 성견(成繭)함은 지(知)이요
발의화용화아산란(發蟻化蛹化蛾産卵)함은 신(神)이라]
전통명주 짜는 과정
누에치기[양잠이라고 하며 춘잠,추잠으로 나눈다. 누에알을 부화시켜 잎을 먹이고 키워
고치를 얻는 작업]
실뽑기[솥에 물을 붓고 끓을 때 고치 한줌을 넣고 나무 젓가락으로 저어 실끝을 찾아
왕채(물레)에 묶어 손잡이를 잡고 돌려 실이 풀려 나오게하는 작업]
실내리기[왕채에서 내린 실을 물에 우려 말린 다음 실올을 풀어 다시 실태에 감는 작업]
베날기[열개의 날상이의 구멍으로 실끝을 통과시켜 한 묶음으로 한 후 날틀에 걸어 한필의
길이에 맞추어 실을 나는 작업]
바디실꿰기[날기작업이 끝나면 올을 바디에 한올 한올 꿰는 과정]
베메기[한쪽 끝을 도투마리에 메고 다른쪽 끝은 “끌게”에 말아 고정시킨후 밀가루,쌀풀을
뱃솔에 묻혀 골 고루 칠한 다음 왕갯불로 말리면서 도루마리에 감는 과정]
꾸리감기[북안에 넣어서 씨실을 공급할 수 있도록 알맞게 모양을 만드는 작업]
4. 소회: 잊었던 아니 잊혀져 가는 양잠의 지식의 끈을 잡을 수 있는 자리였다는
생각을 하면서 부유해지는 경제활동에서 얼마나 유지하게 될까? 고개를 갸웃둥
할 밖에~조선시대에는 왕후가 직접 양잠에 동참하여 국민을 이끌었는데, 혁명정부
시절엔 돈이 되는 일이라면 모두가 매진했던 시절의 한 부분으로 발전했던 날들을
회상하면서 다음 행선지로 떠나게 되었다.
친잠례(親蠶禮)[친잠례(親蠶禮)란 궁궐에서 왕후가 친히 뽕을 따고 누에를 치는 행사로
왕이 행하는 친경례와 더불어 조상숭배 정신과 권농의 정신을 갖고 있다. 친잠은 왕후가
내외명부를 거느리고 궁중 후 원에 마련된 채상단에서 뽕잎을 따고 누에를 치는
예식으로 양잠의 본을 보여 비단 생산에 힘썼던 궁중의 례를 말하며, 조선조엔 역대
왕후가 친잠례를 거행하여백성의 의복을 풍요롭게 하였으며, 왕은 친경례(親耕 禮)를
행하여 식량을 풍족하게 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실크로드의 동쪽, 경주[비단길의 끝 경주(慶州) 실크로드의 서양측 종착지는 로마, 동양측
종착지는 옛 당나라의 수도 장안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신라의 고도 경주에 까지
서역의 문화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할 경우 경주를 종착지로 볼 수 있다. 가장 진귀하고
이질적인 예는 경주 계림로 14호분에서 나온 36cm 길이의 장식보검이다. 검 전체에 루금
(鏤金,아로새김)기법으로 구슬과 같은 것을 일렬로 돌아가며 새겨 놓았고 각종 보석이
그 속에 박혀 있는 이 보검은 누가 봐도 중동에서 만든 것이다. 중국 신강성 키질 벽화에
같은 형태의 보검이 출현된 예가 있다. 경주의 황남대총에서 나온 봉수형유리병은 5세기
대의 것으로서 다른 무덤에서 나온 잔,컵 등과 함께 지중해,남러시아,이란 등의 지방에서
출토되는 유리그릇과 형태와 제작 기법이 유사해 아주 이른 시기부터 서역과의 교류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Silk Road 비단길이라는 뜻으로 동방에서 서방으로 간 대표적 상품이 중국산의
비단이었던 데에서 유래 하는데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이 붙인 이름으로
장안(長安)에서 로마에 이르는 고대의 대상로(隊商路)이다. 기원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험난한 사막과 히말라야 산맥을 1마리의 낙타에 목숨을 의지하고 동서교역을 담당하는
상업에 종사하였고, 출토유물은 그들의 교역범위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겠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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