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은사지 하면 생각나는 곳, 2000년대 초반 들리면서 석탑의 크기에 놀라고 금당지의
지하공간을 만들어 용이 된 부왕이 드나들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과 아직도 문화재
발굴이 좀더 진척되었으면 했던 곳으로 생각나는 곳이다. 문무대왕릉은 그 후에도
부산서 동해안을 따라 올라가며 곰배령 들렸을 때 지나가는 길에 주차비만 없앤 기억이
있는 곳인데 시티투어로 가니 주차비도 없는 곳에 차를 대어 찾았다.
1. 다녀온 날: 2019년 3월 21일
2. 가는 길: 시티투어를 이용해 도착
3. 둘러보기: 감은사지 앞은 주차장이 조성되어 방문객들이 편안하게 둘러보고 나갈 수
있었으며, 전에 들렸던 기억과는 발전되었다는 모습이었다. 또 왕이 용이 되어 쉴 곳이
되는 금당지의 지하공간이 조금 더 정비된 듯했으며, 대종천(大鐘川)과 인접해 있는
감은사지의 예전은 더 가까이에 있는 듯 배들이 접안해 묶는 시설도 있는 것을 확인했으며,
감은사 3층 석탑을 해체•수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금동사리함 네 면에는 사천왕상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4장의 사진은 배가 접안하면 묶을 수 있는 돌뿌리가 나온 것을 볼 수 있다.
황룡사 대종과 감은사 대종이 서로 헷갈리지만 안내인은 몽골이 쳐들어 왔을 때, 대종천을
이용해 배로 대종을 운반해 가다가 동해에서 침몰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3년 5월 포항에
거주하는 어부 김기창(56)씨가 감포 앞바다에서 어구를 찾다가 대종을 발견했다고
신고하면서 대종찾기가 재개되었었다.
당시 문화재청은 탐사선을 동원해 한 달여간 탐사작업을 벌였지만 해류가 심하고 물이 흐려
성과없이 작업을 포기했지만, 신고자 김기창씨는 ‘내가 직접 만져 보았던 종을 꼭 찾고야
말겠다’며 지금까지 생업을 미뤄둔 채 3년여 대종찾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황룡사 대종은 신라 35대 경덕왕13년(754)에 만들었으며, 길이 1장6촌(약 6.18m)이고
두께가 9촌(27cm)이며 무게는 49만7천581근이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어
약 50만근으로 112톤의 무게이다.
금당지의 지하공간을 위한 누마루형 석재들이다.
자리를 옮긴 문무대왕릉을 바라보는 바닷가로 나서니 두 무리의 기도하는 사람들이
보이고 모래사장에는 수많은 종이컵이 포개져 있어 들여다보니 촛불을 켜놓았는데
바람이 세니 일부는 꺼져 있었다. 바닷가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대왕암을 넘겨다
보지만 가까이 갈 수 없으니 오히려 주어진 시간이 남았다.
4. 소회: 워낙 남은 것이 두 탑만이라 문화재 발굴에서도 나올게 별로인지 기대보다
크게 변하지 않았으며, 문무대왕릉은 멀리 바다 너머로 조망하므로 잠시의 시간이면
충분하게 둘러볼 수 있으니 토속신앙의 경배처로 변함을 인정해야 할 것인가?
이번 여행에 함께한 초교 친구들과 부인네들
야생화: 위는 큰개불알꽃이며, 아래는 흰민들레꽃이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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