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기 등

주상절리 파도소리길-1

아름답지만~ 2019. 4. 4. 21:41

주상절리가 있는 이곳을 필자가 지나간 때는 국방경비 때문에 개방되기 이전인 듯 했다.

시티투어가 가장 좋아하는 코스일 것 같았다. 2시간여 자유시간을 주는 동안 버스와

가이드는 충분히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곳이니까. 버스에서 내린 곳은 양남면 하서4리로

다소 이른 점심시간이다. 점심을 먹고 돌아본 주상절리는 17년 찾았던 서악리의 주상절리는

소꼽 작난에 불과할 뿐이었다. 내륙의 작은 계곡 속이었으니 그러려니 생각은 들지만,

추억으로 매김하고, 이곳은 시원한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길은 노약자도

그리 어려운 코스는 아니었다.

주상절리 파도소리길 안내도[1.기울어진 주상절리, 2.포토존,쉼터, 3.누워있는 주상절리,

4.정자,쉼터, 5.위로솟은 주상절리, 6.대나무숲, 7.야생화단지, 8.주상절리 조망공원, 9.부채꼴

주상절리, 10.포토존, 11.출렁다리, 12.읍천항공원, 13. 오촌벽화길]

주상절리: 마그마에서 분출한 1000⁰C이상의 뜨거운 용암은 상대적으로 차가운 지표면과 접촉하는

하부와 차거운 공기와 접촉하는 상부에서부터 빠르게 냉각된다. 빠르게 냉각하는 용암은 빠르게

수축하게 되어 용암의 표면에는 가뭄에 논바닥이 갈라지듯이 오각형 혹은 육각형 모양의 틈(절리)이

생기게 된다. 이렇게 냉각 수축 작용으로 생긴 틈이 수직방향으로 연장되어 발달하면 기둥모양

(柱狀)의 틈(節理)이 생기게 되는데 이를 주상절리(柱狀節理; columnar joint)라 한다.

신생대 말기에 이 지역에 분출한 현무암질 용암은 흔히 관찰되는 수직 주상절리는 물론, 경사지거나

심지어 누워있는 주상절리뿐 아니라 국내외적으로 희귀한 부채꼴 주상절리와 같이 다양하고 독특한

주상절리들을 형성하였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내는 다양한

주상절리들은 독특한 형태가 가져다주는 심미적인 가치를 지닐뿐 아니라 먼 옛날에 있었던 화산활동을

연구하는 데에 중요한 학술적 자료가 된다.(위 안내글 복기)

 

 

 

 

 

 

 

 

 

 

 

 

 

 

 

 

 

 

 

1. 찾은 날: 2019년 3월 21일

2. 가는 길: 시티투어 동해안 코스 이용

3. 둘러보기: 경주에서 지진에 대한 안내판을 보기는 이번이 처음인 듯했다. 점심은 전리횟집

(양남면 진리길 36)에서 회덮밥과 소주 등을 먹었다. 다소 미흡해도 단체로 찾아든 손님에게

차려준 것으로는 괜찮은 편이라 해야할 것이다. 점심을 먹은 후 전봇대와 커다란 안내판을

사진으로 담고 걸었다.

 

 

 

파도소리길에서 만나는 휴게소 안내판, 애교 있다고 해야할까?

 

곧 주상절리길과 사랑의 열쇠 간판을 지났다. 사랑의 열쇠로 가면 무엇이 있을까? 다른 분이

쓴 걸 보니 신라 충신 박제상의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주상절리길을 걸으며 주상절리와

파도가 비빔밥을 만드는 길과 기암 위에서 애처럽게 보인 끈질긴 생명력의 나무들도 보면서

폐속 깊이 청정 에너지를 넣으며 걸었다.

방파제 벽면에 신라 충신인 박제상(朴堤上)에 관한 이야기 “삼국시대 초기 신라는 국제 무대에서

아주 힘이 약해서 주변국가에 많이 휘둘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실성왕 때는 내물왕의 왕자인 미사흔을 왜국에 볼모로 보내야 했고 내물왕의 왕자 복호는 고구려에

볼모로 보내는 뼈아픈 수모를 겪었다. 그로인해 내물왕에 이어 왕위에 오른 눌지왕은 늘 슬픔에

젖어 있었다. 그 마음을 아는 박제상이 복호를 구출해 온 뒤 다시 마사흔을 구하기 위해왜국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그의 아내가 율포항으로 달려왔을 땐 이미 배는 항구를 뜨고

있었다. 무사히 잘 다녀오라는 아내의 피맺힌 절규를 뱃전에 선 박제상도 들었다. 그는 슬픔을

삼키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사랑의 자물쇠는 부부의 애틋한 사랑과 재회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세워졌다.(신문글 중에서)

 

 

 

 

 

 

 

 

                                             사진이 많아 2부로 이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