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지형주차장은 늘어나는 관광객을 효율적으로 관리한다는 측면에서 주차비를
징수한다고 하는데 이해할 필요가 있는 듯했다. 전에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주차하고
다녀왔던 기억인데 88지방도를 끼고 가는 길이 예전 보다 다소 멀어진 느낌이다.
게다가 우회로로 회양목군락지와 서강전망대를 거쳐서 주차장으로 오는 코스는
우리 부부만이 택했던 길이니 다소 의외라는 생각이다.
다녀오는 곳마다 조금씩 시간이 지체되어 마지막으로 들리려던 요선정을 취소하고
일찍 귀로를 택해서 이번 여행은 매우 여유롭고 다정했던 여행이 되었다는 생각이며
조심스레 택했던 점심식사는 고기가 마음에 들어서인지 1인당 5만원이 넘겼으니
과음 과식이 되었고, 그 때문에 저녁을 예약한 화청옥의 갈비탕은 술 안주로 마무리
술자리를 만들어 대취할 수 밖에 없었다.
청령포 명승 제50호
이곳은 조선왕조 제6대 임금인 단종이 1457년(세조3)에 노산군(魯山君)으로 감봉되어
처음으로 유배(流配) 되었던 곳이다.
삼면이 깊은 강물로 둘러싸여 있고 한쪽은 험준한 절벽으로 막혀 있어서, 배로 강을 건너지 않으면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유배지로 적합한 곳이다.
단종은 1457년 6월 28일부터 두달동안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하다가, 그해 여름에 홍수로 청령포가
범람하여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관풍헌(觀風軒)으로 옮겨서 유배생활을 하였다.
1726년(영조2)에는 단종의 유배지를 보호하기 위하여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는 금표비(禁標碑)를
세웠고, 1763년(영조39) 9월에는 영조가 친필로 ‘단묘재본부시유지(端廟在本府時遺址)’라는 비문을
써서 단종이 살던 집터에 비를 세우고 비각을 건립하였다.
2000년 4월에는 단종이 거처하던 곳에 정면 5칸, 측면 2칸 반 규모의 겹처마에 팔작지붕 형식으로
기와집을 복원하였고, 부속건물로 정면 5칸, 측면 1칸 반의 규모로 홑처마에 우진각 지붕 형식의
초가집을 건립하였다.
청령포 종합 배치도[①단종어소(端宗御所), ②단묘재본부시유지비(端廟在本府時遺址碑),
③관음송(觀音松), ④금표비(禁標碑), ⑤망향탑(望鄕塔), ⑥노산대(魯山臺)]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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