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누각이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고려 명종 때의 문인 김극기(金克己)가 쓴 죽서루 시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12세기 후반에는 이미 존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후 1403년(태종 3) 당시 삼척 부사 김효손(金孝孫)이 고쳐 지었다. 절벽 위 자연 암반을 기초로하여 건축되어 있고, 루(樓) 아래의 17개 기둥 중 아홉 개는 자연 암반을 기초로, 나머지 여덟 개의 기둥은 돌로 만든 기초 위에 세웠으므로 17개의 기둥 길이가 각각 다르다. 상층은 20개의 기둥으로 7칸을 형성하고 있다. 자연주의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진수로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 할 수 있다. 현재는 정면 7칸 측면 2칸 규모로 지 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이지만 원래는 5칸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원래 건물인 가운데의 5칸 내부는 기둥이 없는 통칸이고, 후에 증축된 것으로 보이는 양측 칸의 기둥 배열은 원래의 양식에 구애받지 않고 서로 다르게 배치되어 있다. 마루는 우물마루[넓은 널을 짧게 잘라 끼워놓은 마루]이며 천장은 연등 천장 인데, 좌측 툇간[건물에 덧달아 낸 칸, 물림칸] 일부는 우물천장으로 하였다. 누각에 걸린 글씨 중 ‘제일계 정(第一溪亭)’은 1662년(현종 3) 부사 허목(許穆)이 쓴 것이고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는 1711년(숙종 37) 부사 이성조(李聖肇)가 썼으며, ‘해선유희지소(海仙遊戱之所)’는 1837년(헌종 3) 부사 이규헌(李奎憲)이 쓴 것이다. 이 밖에 숙종, 정조, 율곡 이이 선생 등 많은 명사들의 시(詩)가 걸려 있다.
송강 정철 가사의 터
정부는 1991년 2월을 우리나라 가사문학에 커다란 업적을 남긴 송강 정철(松江 鄭澈)의 달로 정하고 기 념 표석을 두 개 세웠는데 하나는 ‘관동별곡’에 나오는 관동팔경의 하나인 삼척의 죽서루 경내이고, 다른 하나는 ‘성산별곡’의 무대인 전남 담양의 식영정 부근이다. 높이 3m의 8각 대리석으로 기단의 둘레가 2.4m인 「송강 정철 가사의 터」 표석은 종전의 일반적인 시비(詩碑)와는 달리 팔각형의 장대표석과 8각형 의 기단으로 이루어졌는데, 기단 8각의 각 면마다 송강의 대표작과 친필, 수결(手決), 세움말, 가사창작의 배경 등을 담아 송강의 생애와 문학에 관한 미니박물관 역할을 하도록 만들었다.
관동별곡 원전[진쥬관(眞珠館) 둑셔루(竹西樓) 오십천(五十川) ᄂᆞ린 물이 태백산(太白山)
그림재ᄅᆞᆯ 동ᄒᆞㅣ(東海)로 다마가니 ᄎᆞᆯ하리 한강(漢江)의 목멱(木覓)의 다히고져
왕뎡(王程)이 유ᄒᆞᆫ(有限)ᄒᆞ고 풍경(風景)이 못슬믜니 유회(幽懷)도 하도할샤 ᄀᆞᅟᅵᆨ수(客愁)도 둘듸업다.
진주관 죽서루 오십천 내린 물이 태백산 그림자를 동해로 담아가니
차라리 한강의 목멱에 대고 싶구나 왕정이 유한하고 풍경이 싫지 않으니
그윽한 회포도 많기도 하구나 나그네의 설움도 둘 데 없다.
송강이 45세에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가사문학의 대표작인 관동별곡을 지었다.
관동제일루라고 호칭되는 죽서루는 태백산맥에서 발원하여 오십구비나 흘러
동해로 흐르셔는 오십천물이 응벽담을 이루는 절벽 위 죽림 속에 세워졌다.
이 누각의 북쪽으로는 삼척도호부 객사인 진주관과 옹벽헌이 있었고
남쪽으로는 연근당 서병당 등의 건물이 있었다. 선인들은 이곳에서 절경에 취하여 많은 시를 읊었다.
죽서루 한시
천전견연(天傳見娟) 강계불연(江界不娟) 영하인월(映下人月) 취음봉진(翠音峯盡)
주선수비(珠仙數飛) 루계상운(樓界上雲) 죽상강해(竹上江海)
강 하늘에 죽서루 천상누각 되어 비추이고 하늘의 선녀 소리 들리어 오건마는
사람은 아니뵈고 산봉우리만 강상에 있어 바닷구름 다 지나가도 달빛만이 곱게 비치네
죽서루 차운(竹西樓 次韻) 율곡 이이(栗谷 李珥)
‘죽서루에서 시를 차운하다’라는 시에서
누가 하늘을 도와 이 아름다운 누각을 세웠는가
그 지나온 세월 얼마인지 알 수가 없구나
들판 저 멀리 산봉우리에는 감푸른 빛 서려있고
모래사장 부근에는 차가운 물 고여있네 시인은 본래 남모르는 한이 많다지만
깨끗한 이 곳에서 어찌 나그네의 근심을 일으켜야만 하리오
온갖 인연 모두 떨쳐버리고 긴 낚싯대 들고는
푸른 절벽 서쪽 물가에서 졸고있는 갈매기와 놀아보리
(by 경주이씨익재공후판윤공파 블로그)
죽서루(竹西樓)
관동선계척주루(關東仙界陟洲樓) [관동에서 신선이 노는 척주의 누각]
허함빙위하역추(虛檻憑危夏亦秋) [빈 난간에 위태롭게 기대니 여름도 가을 같네]
천상옥경린북좌(天上玉京隣北左) [하늘나라 서울 옥경은 북쪽 왼편에 이웃해 있어]
몽중은황청서류(夢中銀潢聽西流) [꿈속에서 은하수가 서쪽으로 흘러가는 소리 들리네]
소렴욕권로화습(疎簾欲捲露華濕) [성긴 발 걷으려 하니 반짝인 이슬 촉촉하고]
일조불비강색수(一鳥不飛江色愁) [새 한 마리 날지 않아 강 빛은 수심만 가득하네]
난하고주장입해(欄下孤舟將入海) [난간 아래 외로이 떠있는 배는 바다로 들려 하는데]
조간응불울릉구(釣竿應拂鬱陵鷗) [낚싯대 울릉도 가는 갈매기를 뒤쫓아 휘두르네]
서기1992년임신10월9일(西紀一九九二年壬申十月九日 일죽 홍태의 서획 (一竹 洪泰義 書劃)
번역 한상철
용문바위 [신라 제30대 문무왕(文武王)이 사후(死後) 호국용이 되어 동해바다를 지키다가 어느 날 삼척의 오십천으로 뛰어들어 죽서루 벼랑을 아름답게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호국용이 오십천으로 뛰어들 때 죽서루 옆 바위를 뚫고 지나갔는데 그것이 용문바위이다. 그후 용문바위는 아름다움과 장수, 다복의 기 원처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용문을 드나들며 소원을 빌었다.]
죽서루 선사 암각화 [암각화는 바위나 절벽 또는 동굴 내의 벽면에 물상(物象),기호(記號),성혈(性穴) 등을 그리거나 새겨 놓는 것을 말하는데 죽서루 선사 암각화는 바위 위에 여성 생식기 모양의 구멍을 뚫어 놓은 성혈암각이다. 성혈은 선사시대에 풍요,생산,다산을 상진하는 것으로 한국적인 원시신앙의 형태로 발전하여 조선시대에는 칠월칠석날 자정에 아녀자들이 성혈터를 찾아가서 일곱구멍에 좁쌀을 담아놓고 치성을 드린 다음 그 좁쌀을 한지(韓紙)에 싸서 치마폭에 감추어 가면 아들을 낳는다는 민간신앙이 성 행했다. 성혈의 제작은 암반을 쪼아 깊이 판 다음 원형의 돌 또는 나무로 연마, 구멍을 넓혀서 만든다. 죽서루 경내의 성혈은 죽서루 용문바위 위에 직경 3~4cm, 길이 2~3cm 크기이며 모두 10개이다.]
죽서루를 끼고 흐르는 오십천 물가도 절벽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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