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축융봉에서 조망했던 하늘다리를 밟자고 아침을 우유와 빵으로 해결하고 입석으로 향했다. 입석에서 출발해(08시10분) 계단으로 이루어진 길을 오르며 10분여 만에 청량사와 응진전 삼거리서 (청량사 1.0km, 응진전 0.6km) 응진전으로 향했다. 응진전에는 삼거리서 17분만에 도착한 것이다.











금탑봉 허리 부분에 위치한 응진전은 요사채 무위당(無爲堂)과 조그마한 텃밭을 만들어 놓았으며, 응진전은 절벽 밑에 위치해 좀 위험스러워도 보였다. 응진전 석가삼존불에게는 오늘 여행의 무사를 빌고 자리를 떴다. 조금 가다가 축융봉 자락의 끝부분 밀성대 쪽을 보니 정자가 보인다. 응진전을 떠나 10분여 만에 풍혈대를 올라 구경후 다시 청량사 쪽을 향했다.






응진전(應眞殿) 금탑봉(金塔峯) 중간 절벽 동풍석(東風石) 아래에 위치한 청량사(淸凉寺)의 부속 건물의 하나였을 것으로 보인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주심포계(柱心包系) 맞배 기와집으로 내부에는 석가삼존 불(釋迦三尊佛)과 16나한상(羅漢像)이 봉안되어 있다. 특히 16나한과 더불어 법당 내부에 공민왕(恭愍王; 1351~1374)의 부인인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의 상(像)이 안치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공민왕의 청량산 몽진(蒙塵)에 대한 역사적 사실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앞뒤가 모두 절벽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뒤쪽 절벽위에는 동풍석이, 요사채 옆의 절벽 사이에는 감로수 (甘露水)가 흘러나온다. 또한 법당 앞에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데 주세붕(周世鵬; 1495~154)은 자신의 자(字)를 따서 경유대(景遊臺)라 이름하였다.
동풍석(東風石) 설화 어느 스님이 좋은 절터를 찾아다니다가 마침내 자리를 찾았다. 다만 바위 하나를 치워야 했다.
그래서 힘센 스님이 절벽 아래로 그 바위를 밀어버렸다. 그런데 다음 날 보니 떨어진 바위가 제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
놀라 절을 짓지 않았다. 현재 응진전 뒤 높은 절벽 위에 바위가 버티고 있는데 여러 사람이 세게 밀어도 건들거리지만
한 사람이 밀어도 건들거리고 바람이 불어도 건들거릴 뿐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 동풍석이라 부른다.




5분도 걷지 않아 총명수와 치원암터가 있는 곳에 다다르고, 다시 어풍대를 만나고 이곳서 보는 청량사 전경은 어제의 맛보다 훨씬 감격적이었으며 응진전서 이곳까지는 거의 수평 길이었다. 갈림길 이정표(청량사 0.4km, 김생굴 0.2km)를 보고 김생굴 쪽을 향해 보았으나 곧 곧추선 오름길과 다시 늘어나는 거리로 되돌려 삼거리로 돌아와 청량사로 향하는 조잡한 계단길을 거쳐 청량정사가 솟대시인의 집과 이웃하고 솟대시인 집에 안내글이 있고 문이 잠겨 담지를 못했다.













청량정사 앞 쓰러진 고목은 슬픈 사연을 안내한다. 청량사 경내를 거쳐 유리보전에서 무사 산행을 기원하고 뒷실고개를 향하는데(09시26분), 석축계단과 나무계단이 처음부터 이어져 얼마나 급하게 고도를 높이는 지 뒤실고개 까지 오름(09시57분)도 만만치 않았는데 이정표(청량사 0.8km, 자소봉 0.7km, 하늘다리 0.5km)를 보니 더 힘을 내야 했다.












뒤실고개 이정표에서 아래는 자소봉으로 이어지는 철계단길이 가파르게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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