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기 등

아내와 다녀온 여행(포항 등; 2023.11.27.~29.)-4

아름답지만~ 2023. 12. 6. 22:43

29일은 우리식의 아침밥을 하기로 하고 전날 준비해준 목욕표를 들고 산책을 돌다가 0530분 오픈하자마자 들어가 묵은 피로를 풀고 우유를 사들고 와 기장떡과 카스테라로 아침을 때웠다. 처형도 시내에 볼 일이 있다고 해 목적지까지 모셔다 드리고 구미의 도리사를 향했다.

위: 도리사 서대에서 바라본 낙동강 구미湺가 가까이 보이고 구름 속에 황악산이, 아래: 구미산이 가까이

고속도로를 탈출한 후 일반국도 지방도를 돌아서 도리사 산문을 들어서면서 고즈넉한 분위기와 중간에 미나리 판매 간판을 보고 가파른 고갯길을 따라 도리사에 도착해 입구에 주차 시키고 사찰 내로 들어갔다. 초전지라지만 꽤나 규모가 있고 산중에 꽤 너른 터를 잡고 있어 이곳 저곳을 돌아 보고 마지막으로 서대에 올라 탁트인 경치에 매료되었다가 귀로에 들어 나가다가 미나리 만지는 곳이 있어 미나리 사고 탁트인 고속도로를 달려 졸음을 피할 겸 중간 중간 고속도로 휴게소를 이용하며 올라오는데 수도권으로 들어서며 차량이 많아져 집까지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구미 도리사 석탑(龜尾 桃李寺 石塔) 보물 제470

구미 도리사 석탑은 도리사 극락전 앞뜰에 세워져 있으며, 높이는 3.3m이다.

이 석탑은 몸돌과 지붕돌 윗부분의 층단 구성이 일반적인 석탑과는 전혀 달라 독특한 모습이다. 탑의 기초인 기단은 동서남북 네 면에 길고 네모난 돌을 6~7장씩 병풍처럼 둘러 세워, 보통 석탑의 기단보다 높게 만들었다. 기단의 남쪽 면 가운데에는 문짝을 새겼다. 기단 위에는 3층의 몸돌과 지붕돌은 2층과 달리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었다. 각 층의 지붕돌 윗면은 계단 모양의 층단을 이룬다.

이러한 형태로 볼 때, 이 석탑은 벽돌로 쌓은 석탑인 전탑의 양식을 모방해 만든 모전석탑(模塼 石塔)으로 보인다. 조각 양식과 돌을 다듬은 수법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 중엽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아도화상 좌선대

아도화상의예언처럼 집안으로 칡넝쿨이 들어오자 모례장자(털례)는 칡넝쿨 길을 따라 이곳까지 와 보니 바위 위에는 아도화상이 좌선하고 있었습니다.

반가움에 절을 한 뒤 이곳에 머물게 된 연유를 묻자 겨울인데도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활짝 피어있는 모습을 보고 이곳이 성스러운 길지임을 알아 이곳에 절을 짓고자 한다하였습니다.

이에 모례장자의 시주로 절을 지어 복숭아꽃과 오얏꽃에서 이름을 따 도리사라 하였으며, 이 바위는 아도화상이 좌선을 하고 앉았던 자리입니다.

아도화상사적비(阿度和尙事蹟碑) 및 도리사불양답시주질비(桃李寺佛糧畓施主秩碑)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91

아도화상 사적비와 도리사불양답 시주질비는 도리사 남쪽의 비탈진 소나무 숲에 남쪽을 향하여 나란히 서 있다.

아도화상 사적비는 효종 6(1655)에 세운 것으로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전한 내용을 적은 것이며, 뒷면에는 자운비(慈雲碑)라는 글자를 음각으로 새겼다.

받침돌은 자연석이며 비석의 머릿돌 앞면에는 쌍룡을, 뒷면에는 4용을 조각하고 그 사이에 구름을 타는 용을 조각한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불양답시주질비는 도리사 운영에 보태기 위해 논과 밭을 보시한 사람의 이름과 그 양을 기록한 것으로, 숙종 38(1712)에 세웠다. 비석의 앞면과 뒷면에는 연꽃 봉오리와 줄기를 돋을 새김 하였고, 머릿돌 중앙에는 보주를 새겼다. 이 비석은 능철(能哲)스님의 책임 아래에 만들었으며, 김성원(金成元)이 글자를 새겼다.

보주(寶珠): 위가 뾰죽하고 좌우 양쪽과 위에 불꽃 모양의 장식을 단 구슬

칡넝쿨에 얽힌 사연

아도화상은 불교의 시작이 될 터를 찾아 떠나며 모례장자에게 칡넝쿨이 집으로 넘어오거든 그 넝쿨을 따라오면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모례장자는 몇 년 후 담을 넘어온 칡넝쿨을 따라가자 바위에 앉아 정진하고 있는 아도화상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법성게(法性偈)

법성게는신라(新羅) 의상대사(義湘大師; 625~702)께서 방대한 화엄경(華嚴經)의 가르침을 730210자로 요약한 게송입니다. 의상대사는 661년 중국으로 건너가 화엄종(華嚴宗) 2조 지엄대사(智嚴大師) 문하에서 7년을 수학하고 668년 자신이 깨달은 바를 엮어 대승장(大乘章) 10권을 집필하였습니다. 이를 스승인 지엄대사에게 보이자, 지엄대사께서는 문장은 수려하나 핵심 내용이 미약하다고 평가하였습니다. 이에 의상대사는 마당에 장작불을 피우고 자신의 저술인 대승장을 태우면서 부처님! 당신의 뜻에 부합하는 문장은 타지 않게 하소서하고 기원 하였습니다. 이때 거센 불길에도 210자가 타지 않았고, 이를 수습하여 다시 게송을 지은 것이다.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 법의 성품은 원융하여 두 모습이 없고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的) 모든 법은 움직이지 않아 본래 고요하네

무명무상절일체(無名無相絶一切) 이름도 없고 형상도 없어 온갖 분별 끊겼으니

증지소지비여경(證智所知非餘境) 깨달아야 알 수 있지 달리 알길은 없다네

진성심심극미묘(眞性甚深極微妙) 참된 성품은 참으로 길고도 오묘하여

불수자성수연성(不守自性隨緣成) 자기 성품 고집하지 않고 인연 따라 나타나니

일중일체다중일(一中一切多中一) 하나 속의 일체요 일체 속의 하나라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 하나가곧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며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작은 티끌 하나 속에 온 우주가 들어있고

일체진중역여시(一切塵中亦如是) 낱낱의 티끌마다 온 우주가 들어있네

무량원겁즉일념(無量遠劫卽一念) 한량없는 긴 세월이 한순간의 생각이고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時無量劫) 한순간의 생각이 한량없이 긴 세월이라

구세십세호상즉(九世十世互相卽)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한 생각이지만

잉불잡란격별성(仍不雜亂隔別成) 뒤엉키지 않고 각각 따로따로 나타나네

초발심시편정각(初發心時便正覺) 깨닫고자 하는 그 마음이 바로 깨달은 마음이요.

생사열반상공화(生死涅槃常共和) 삶과 죽음의 고통 속에 항상 열반이 함께하니

이사명연무분별(理事冥然無分別) 이치도 현상도 까마득하고 분별마져 사라진

십불보현대인경(十佛普賢大人境) 시방세계 부처님과 보현보살의 경계로다

능인해인삼매중(能仁海印三昧中) 거룩하신 부처님 해인 삼매 가운데서

번출여의부사의(繁出如意不思議) 불가사의한 온갖 법을 맘대로 펼치시니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 하늘 가득 이로운 보배 비처럼 쏟아지고

중생수기득이익(衆生隨器得利益) 중생들은 그릇에 따라 이익을 얻는다네

시고행자환본제(是故行者還本際) 그러므로 수행자가 본래 세계로 돌아가려면

파식망상필부득(叵息妄想必不得) 헛된 생각 쉬지 않고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

무연선교착여의(無緣善巧捉如意) 한없는 자비와 훌륭한 방편에다 여의주 손에 쥐고

귀가수분득자량(歸家隨分得資糧) 분수껏 밑천 얻어 진리의 고향으로 돌아가라

이다라니무진보(以陀羅尼無盡寶) 다함 없는 보배인 신묘한 다라니로

장엄법계실보전(莊嚴法界實寶殿) 온세상을 아름다운 보배궁전으로 꾸미고

궁좌실제중도상(窮坐實際中道床) 마침내 진리의 세계 중도자리에 앉고 보니

구래부동명위불(舊來不動名爲佛) 한 걸음도 움직인 적 없었네, 그 이름이 부처로다.

4) 결언

여러 해를 여행해 봤지만 친척집에 머물며 여행해 보긴 처음이다. 오랜만에 찾은 집을 빈손으로 간 자체도 결례지만 처형의 연세가 82세나 되었으니 매사가 귀찮은 나이가 아닌가. 그래서 식사를 외식으로 하길 바랬지만 첫날은 별안간 대게가 생기는 바람에 그걸로 포식했고, 아침에 밥을 먹고 간 내연산에서 우리 부부는 구경하기 바빴으나 처형께선 얼마나 지루한 시간이었을까? 다음 날 헤어지면서도 내 마음은 온통 미안함 뿐이었고, 화성시의 집으로 와 안부 전화를 아내에게 해 통화하니 성격이 좋아서일까? 아무 일 없고 오히려 미안하단 말씀 뿐이다. 볼 곳을 몇 곳 밖에 보지 못했으나 도리사를 방문한 건 제대로 맥을 짚은 것 같은 마음이다. 깊어가는 겨울만 아니면 차 끌고 더 돌아다니고픈 마음이다.

11월27일부터 11월29일까지의 여행의 마무리를 짖습니다. 끝까지 졸필을 읽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