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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서울현충원(시립대 수의과) 돌아보기<2012. 9.15>-2

아름답지만~ 2012. 9. 18. 23:42

 

솔냇길로 다시 나와 잠시후 삼거리(장군묘역 근처)에서 박정희 대통령 영구차를 보존한 곳을 들린후 박정희 대통령 묘역으로 들었다. 영부인 육영수 여사와 따로 봉분을 한, 우리시대 두 분의 죽음을 TV로 생생히 기억하는 일행들로서는 참배의 의미가 남달랐으리라.

위: 박정희 대통령의 영구차 모습, 아래: 피라칸사의 모습

                        

※ 육영수 여사께서는 一九二五년十一월 二九일 나시어 一九七四년八월十五일 돌아가심

※ 박정희 대통령은 一九一七년十一월十四일 경북 선산에서 태어나시어 一九七八년 제九대까지 대통령을 역임하시다가 一九七九년十월二十六일 서울에서 서거 十一월三일 국장으로 안장되시다.

                                                                            위, 아래: 박정희 대통령 묘역의 원경과 근경

                                                  위: 육영수 여사 영전에 <모윤숙 헌시>, 아래: 박정희 대통령 영전에 <이은상 헌시>

잠시 머리와 발을 쉬게한 곳은 공작지로 내려서는 계단과 시맨트 바닥, 가져온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10여분 간 허기를 달래며 담소하고 휴식을 취한 후 팔각정과 약수터를 지나 임시정부요인 묘역과 애국지사 그리고 외국인 묘소를 둘러 보았다.

                                                                위: 애국지사 묘역의 중심제당, 아래: 헤어진 식구들을 기다리며

※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 양기탁(梁起鐸)의 묘

평양에서 1871. 4. 2. 태어나고 독립운동과 동아일보 등의 언론활동을 하시다가 옥고와 연금생활 후의 1920년 다시 만주로 탈출, 1934년 국무위원 1935년까지 주석으로 재임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 홍진(洪震)의 묘

충북 영동에서 1877년(고종14)에 태어났으며 검사생활을 하다가 1910년 한일합병후 애국지사 변론을 하는 등 변호사 생활을 했으며, 1919년 독립만세 이후 독립운동에 가담했고, 상해로 망명해서는 독립운동에 깊이 관여하는 등 8•15 해방까지 임시정부에서 활동하시었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 박은식(朴殷植)의 묘

황해도 해주에서 1859. 9.30. 태어났으며 1925.11. 1. 중국 상해에서 돌아 가시었다.

주자학자로서 출발해 개화자강론자•애국계몽사상가•학자•언론인•독립투사로, 민족이 처한 조건의 변동에 따라 자신의 사상과 행동을 발전시키면서 전생애를 민족의 해방과 독립에 바쳤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 이상룡(이상룡)의 묘/ 배위 김우락 합장

경북 안동에서 1858(철종9)에 태어났으며 1932년 돌아 가시었다.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다가 만주로 망명해 서로군정서의 독판(督辦),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령을 지냈다.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만초(萬初), 호는 석주(石洲) 일명 계원(啓元) 상희(象羲)

※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총리대리 경의무총장 신규식(신규식)의 묘

충북 청원에서 1879(고종16) 1.13.태어났으며 임정내의 분열을 비관 단식하다가 1922. 9.25.사망.

한일합병 후 중국에서 교민들의 독립운동을 지도하는 한편, 한국인과 중국인의 협력에 힘썼다. 상해 임시정부 수립 후에는 법무총장으로 국무총리대리•외무총장 등을 겸임하면서 임시정부 내의 통합에 노력했다.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공집(公執), 호는 예관(睨觀)•여서(余胥)•일민(一民)•청구(靑丘)•한인(恨人), 이명은 정(檉)•목성(木聖)

※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 노백린(盧伯麟)의 묘(1875<고종12>~1925)

1895년(고종32)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에 건너가 공부하고 1899년11월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00년 귀국하여 육군 참위(參尉)에 임관, 보병교관이 되었다. 이후 정령(正領)까지 승진하면서 육군무관학교장•헌병대장 등 군 요직을 두루 거쳤다.

1914년 하와이로 건너가 국민군단(國民軍團)을 창설했고,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여 비행사양성소를 설립했다. 1919년 3•1운동 뒤 상해 임시정부의 군무총장에 취임했으며, 국무총리를 맡았다가 1925년 4월 사임했다. 이후 워싱턴에서 구미위원부 외교위원으로 소련에 파견되어 활동하다 병으로 죽었다. 1962년 건국훈장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3편으로 다시 올리겠습니다. 우리의 선열을 다루다보니 넘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