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은 신라의 왕도였던 경주의 남쪽에 솟아 있는 금오산(金鰲山)과 고위산(高位山) 두 봉우리를 비롯하여 도당산•양산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를 통틀어 남산이라고 부르고 있다. 산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지만 동서로 가로지른 길이가 약 4km,남북의 거리는 약 8km에 40여 계곡이 있고 이곳에는 수많은 불적(佛蹟)이 산재되어 있으며, 여러 전설과 설화들이 깃들어 있다.
위는 남산안내도인데 둥근 흰점이 유적지 등이며,아래는 용장골의 계곡의 아름다움가 흐르는 물이 아주 깨끗하다.
신라건국 전설이 깃든 나정(蘿井),신라왕실의 애환이 서린 포석정터,김시습이 거처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지었다고 하는 용장사터(茸長寺址)등 많은 신라시대 유적을 간직하고 있다.그 뿐 아니라 신라가 불교를 국교로 한 이후 남산은 부처가 머무는 영산으로 신성시 되어 많은 사찰과 탑이 건립되고 불상이 조성되었다.현재까지 조사된 바에 의하면 이곳은 122여 개소의 절터, 57여 개소의 석불, 64여 기의 석탑이 산재하고 있는 야외박물관으로 불려지고 있다. 2000년1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위는 멀리 설잠교가 보이는 용장골의 풍경,아래는 산정에 삼층석탑이 멀리 보인다.
금오산 정상석을 담았고,아래는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주변의 공사중이라 출입금지구역이다.
1.다녀온 날: 2013년 3월15일~2013년 3월16일<금•토요일>
2.여정 요약:①KTX<수원역:08시55분>-대전역-김천(구미)역-동대구역-신경주역<11시22분>-택시로 용장1리<11시57분~12시23분>
②남산 등산;용장1리<12시24분>-용장골-설잠교<13시05분>-용장사지<13시22분>-마애여래좌상•석조여래좌상-금오산<14시14분>-상선암<15시>-삼릉계석불좌상•삼릉계곡선각여래좌상<15시37분>-삼릉계곡선각육존불-삼릉계석조여래좌상-삼릉계곡마애보살상-삼릉<16시15분>-경애왕릉-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16시50분>-태진지-지마왕릉-포석정<17시13분>-나정<17시45분>~택시로-안압지<18시10~18시55분>-식사(화림 한정식)<~20시02분>-첨성대•계림 등<20시09분~20시39분>-택시-시외버스터미널-서림모텔<21시>
용장사지 주변의 대나무 군락지 모습,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 못미쳐서 만나는 석문바위
위는 지나온 길을 더듬어 보았으며(계곡을 따른 편),날이 따뜻해지니 진달래가 꽃망울을 터트리고,
이는 삼릉 못미쳐 송임의 뒤틀린 모습들,아래는 말끔히 단장된 포석정 주변의 경치
③아침식사-시티투어(천마관광)<09시04분>(11명)-켄싱턴리조트(4명)-대명리조트(4명)-KT경주수련관(18명)<09시38분>-불국사(4명)<09시54분~11시15분>-민속공예촌<11시22분~12시10분>-분황사<12시26분~12시45분>-점심식사(황실식당)<12시56분~13시35분>-김유신장군묘<13시42분~14시08분>-대릉원<14시15분~14시45분>-경주박물관<14시53분~16시08분>-동궁•월지(旧안압지)<16시11분~16시40분>-첨성대<16시50분~17시08분>-KTX<신경주:17시39분~18시24분>-수원<20시44분>
불국사 경내의 모습중의 정원수들을 담았습니다.
역사과학관의 석굴암 축소 모형도가 여럿 다른 해부로 조성되고,아래는 분황사 모전석탑의 감실모습
위는 김유신장군 묘역으로 향하는 길,아래는 황남대총이 보이는 목련의 개화를 목전에 두고~
3.산행: 꽤 오래전(1999년) 차를 가지고 경주의 유명하다는 곳을 돌아 다니며 맨 나중에 들린 포석정에서 남산으로 오르는 많은 등산객을 보며 아쉽게 발을 돌린적이 있다. 언젠가는 남산을 구경하리라는 마음만을 간직한체 꽤 오랜 세월이 흘렀다.
두 가족 네명이 시간 절약을 위해서 택시를 타고 삼릉을 가자고 하니 용장골코스가 수월하다고 해 적지않은 돈을 지불하고 입구에서 내렸다. 손쉽게 찾은 식당은 삼미집(T 054-745-2323),정식을 먹고는 용장골을 향했다.
점심을 먹고 용장골로 오르는 길목을 담았습니다.
※용장골(茸長溪)이라는 말은 신라시대의 사찰인 용장사가 있던 계곡이라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다.남산의 50여개의 많은 골짜기중 하나이며 길이가 약3km되는 남산에서 가장 크고 깊은 골짜기로 산에서 흐르는 물이 깨끗하다.용장사지를 비롯해 현재 22개소의 절터가 확인되고 있으나 용장사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그 이름이 전해내려 오지 않는다.
용장골을 오르며 계곡의 아름다움을 연속적으로 올려 보았습니다.
우측으로 하천을 낀 길은 10여분을 가니 삼거리(←용장마을0.45km,→고위봉2.2km,↑통일전주차장7.05km/금오봉3.1km/이영재2.35km/용장사지2.0km),용장사지 방향으로 계측기를 통과해 안내판과 산매화를 거쳐서 삼거리(←용장마을0.75km,→금오봉2.8km/용장사지1.7km,↓통일전주차장6.75km/고위봉1.9km)를 지나니 용장골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반석,소폭포,분재같은 소나무 등이 한동안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한다. 계곡을 끼고 등로는 휘돌아 그리 멀지않은 설잠교를 만난다.
※설잠교(雪岑橋)는 조선초(1465~1470년) 매월당 김시습(金時習)이 용장사에 머물면서 금오산실을 짓고 “유금오록(遊金鰲錄)”에 155수의 시를 남겼고, 특히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지은 곳으로 이 유서깊은 용장골에 다리를 놓으매 매월당 김시습을 기려 설잠교라 하였다.김시습(1435~1493년)의 자는 열경(悅卿),호는 매월당(梅月堂) 또는 동봉(東峯),법호는 설잠(雪岑),관향은 강릉이다.
설잠교의 모습과 주변에 핀 생강나무의 꽃
설잠교를 지나며 등로는 가팔라지며 난데없는 대나무 숲이 푸르름을 뽐내며 이어지며 용장사터는 출입금지 표시를 하고 누군가의 묘2기가 있으며,그 뒤로 용장사터의 안내문이 쓸쓸히 한 구퉁이를 지키고 있다.
용장사지 근처에 잘 자란 대나무숲과 절터를 지키는 이름모를 묘소는 어느 분의 것일까?
※용장사터(茸長寺址)는 금오산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린 가장 큰 봉우리를 주산(主山)으로 삼아 용장사 절터가 자리하고 있다. “갑술년삼월일 용장사(甲戌年三月日 茸長寺)”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고 신라,조선시대의 유물들이 함께 출토되어 천년전의 역사가 최근까지 이어진 유서깊은 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남아 있는 거대한 돌축대들은 이 절의 규모가 얼마나 컷던가를 말해주며,앞을 내다보면 은적골 절터와 삼각산이 발아래 보이고,멀리 고위산이 드높게 보인다. 건물터로 추정되는 이곳에서 동북방향으로 바라보면 위쪽에 삼륜대좌불과 마애여래좌상 등이 있으며 그 정상에 삼층석탑이 우뚝 솟아 마치 도솔천을 연상케 한다. 용장사는 통일신라시대 대현(大賢)스님이 범상종을 개창했던 절이며,조선시대의 대학자이자 스님인 김시습(김시습,설잠)이 머물던 곳이다.
용장사터를 지나면서 산은 바위가 어우러져 거칠게 변하며 멀리 산정의 삼층탑을 조망해 보며 산모퉁이를 돌아 올라 이정표(←금오봉1.1km,↓용장마을2.45km)를 지나니 삼각 바위문이 나타난다. 많은 사람이 통과해 본 모양이지만 우회한다.
위의 사진 제일 높은 곳이 고위산이고,아래는 바위봉 제일 높은 너머에 삼층석탑이 있는 곳이다.
잠시후 석조여래좌상과 마애여래좌상이 나타나고 이곳을 지나서는 유격훈련을 받는듯 오르는 길에는 수백년을 버텨 온 소나무들을 지난 곳에 용장사곡 삼층석탑이 오똑하게 서 있다. 탑의 위치가 주변이 확트인 자리 인지라 주변 조망이 아주 좋다.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보물 제187호,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 산1-1>
이 불상은 용장사터에 있는 미륵장육상(彌勒丈六像)으로 추정되는 석불이다. 삼륜대좌 위에 모셔진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으며,1932년 일본인들에 의해 복원된 것으로 머리 부분은 없어졌다. 손과 몸체 일부가 남아 있는데 대좌에 비해서 불상은 작은 편이다. 목에는 3줄의 뚜렷한 삼도(三道)가 있고 어깨는 넓지 않고 다소 좁은 편이나 당당함을 잃지 않고 있으며,좌측 어깨에는 매듭 지어진 가사끈이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이 석불은 특이한 둥근 형태의 대좌 뿐 아니라 석불 자체의 사실적 표현이 작품의 격을 높여준다. 제작시기는 조각 양식으로 보아 8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을 담았으며, 이번 여행을 함께한 어부인도 한컷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보물 제913호,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 산1-1>
이 불상은 자연 암벽을 이용하여 조각되었는데,머리 둘레의 두광과 몸 둘레의 신광은 2줄의 선으로 표현하였다. 얼굴은 풍만하고 머리에는 나선형 머리카락을 표현하였으며,귀는 눈에서 목까지 상당히 길게 표현하였다. 목에는 3개의 선으로 표현된 삼도가 뚜렷하다.조각수법으로 8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과 주변의 바위틈을 헤집고 살아가는 소나무
※용장사곡 삼층석탑<보물 제186호,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 산1>
용장사의 법당터 보다 높은 곳에 세워진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자연 암반을 다듬어 아랫기단으로 삼고 그 위에 면마다 기둥새김 셋이 있는 윗기단을 설치하여 산 전체를 기단으로 여기도록 고안되었다. 층마다 몸체돌 하나에 지붕돌 하나씩 3층으로 쌓았는데,지붕돌과 몸돌을 별도의 석재로 조성하였다. 1층 몸돌은 상당히 높은 편이고 2층부터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지붕돌은 밑면의 층급받침이 4단이고 처마는 직선을 이루다가 귀퉁이에서 경쾌하게 들려 있다. 윗부분이 없어진 탑의 높이는 4.5m밖에 되지 않지만,하늘에 맞닿은 듯이 높게 보여 자연과의 조화미가 돋보인다.
용장사곡 삼층석탑과 주변의 바위틈에서 수백년을 견디었을 소나무들
이곳을 지나 잠시후 만나는 임도(←통일전주차장3.5km,↑용장마을3.0km/용장사지0.55km,→포석정주차장5.0km/금오봉0.7km)는 완만한 경사로 금오봉을 향하고, 15분여 만에 금오산 정상에 선다. 금오산에는 정상석 이외에도 비파골(琵琶谷)의 전설글,남산(南山)과 망산(望山)의 유래글 등 많은 간판이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정상의 이정표(←포석정주차장4.7km/삼릉주차장2.6km/상선암1.0km,→통일전주차장4.2km)를 지나며 등산로는 흙길로 부드럽게 이어지고,가는 길 11시 방향에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은 많은 비계철을 설치해 공사중인 것이 보인다.입구에는 공사안내판이 출입금지와 함께 서 있으나 조금 접근해 보니 쉽지가 않아 포기했다.
길 찾는데 유용하라고 정상에 있는 간략도,또 이곳에 얽힌 전설을 소개하는 글이 있다.
정상을 지나면서 등산로는 흙길이 나타나기도 하고,삼릉계곡의 마애석가여래좌상은 비계철을 설치하고 공사중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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