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자료들 정리
1.건봉사(乾鳳寺)에서
①건봉사 불이문(乾鳳寺 不二門) 강원도 문화재 자료 제35호
소재지: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
1920년에 건립된 건봉사 경내 출입문으로, 사찰의 건물 중 한국전쟁 때 유일하게 불타지 않은 건물이다. 1단의 낮은 기단 위에 원통형으로 다듬은 높이 1.61m의 4개 돌기둥 위에 둥근 나무기둥을 세워 지은 건물로, 다포 양식에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돌기둥에는 길이 90cm 크기의 도안화된 금강저가 음각되어 있는데, 이는 천왕문(天王門)을 따로 건립하지 않고 불이문에 사찰 수호의 기능까지 보탠 것을 의미한다. 상당 중앙에 걸려 있는 불이문 현판은 해강(海剛) 김규진(金圭鎭)의 글씨로, 매우 단정하면서도 힘이 있다.
②금강산 건봉사 : 건봉사는 전국 4대사찰의 하나로 만해 한용운 선생의 건봉사 급 건봉사 말사사적지(乾鳳寺 及 乾鳳寺 末寺史蹟誌)에 의하면, 신라(新羅) 법흥왕 7년(서기 520년)에 아도화상이 원각사(圓覺寺)를 창건하였고, 그 후 도선국사가 중수한 뒤 서봉사(西鳳寺)라 하였으며, 고려말엽 나옹화상이 중수하고 건봉사(乾鳳寺)로 개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라 경덕왕 17년(서기 578년) 발징화상이 중건하고 정신, 양순 등과 염불만일회(念佛萬日會)를 열었는데, 이것이 염불만일회의 효시가 되었으며, 현존하는 “등공탑비”는 서기 782년 염불만일회에 참가했던 31인이 아미타불의 가피를 입어 극락왕생하였다고 전하고 그 부도를 모신 것이다.
서기 1465년 세조임금이 건봉사를 원당(願堂)으로 삼은 뒤, 어실각(御室閣)을 짓고, 전답과 친필 동참문을 하사하였다고 전한다. 그 후 서기 1878년 4월 3일 큰 불로 인해 3,183칸이 전소(全燒)되었으나, 여러차례 복원작업을 통하여 서기 1911년 9개의 말사를 거느린 31본산의 하나가 되었다.
건봉사는 임진왜란 때에 사명대사가 의승병을 기병한 호국도량이었으며, 당시 통도사에 있던 부처님 진신치아사리를 왜병(倭兵)이 일본으로 가져간 것을 사명대사가 사행(使行)하였다가 다시 찾아와 이곳에 봉안하였다. 또한 구한말인 서기 1906년 “봉명학원”을 설립하여 개화사상과 신문화를 받아드린 관동지방 교육의 도장이 되었으나, 그후 일제에 의해 강제폐교되었다.
이 지역은 한국전쟁 중 휴전직전까지 2년여에 걸쳐 아군 5,8,9사단 및 제10군단과 공산군 5개 사단이 16차례의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건봉산 전투 전적지이며, 이때 건봉사는 완전히 폐허가 되었으나 서기 1994년부터 대웅전, 팔상전, 염불만일원, 종각 사지 등이 각각 복원되었고, 지금도 사찰복원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전쟁 전 건봉사는 총 642칸과 보리암 등 124칸의 18개 부속암이 있었다.
③고성군 보호수 지정번호:강원-고성-10, 지정일시:2008년12월12일, 수종:팽나무, 수령:약 500년
위치:고성군 거진읍 냉천리 잡35, 수고:15m, 나무둘레: 400cm
나무유래: 이 팽나무는 강원도 기념물 제51호로 지정된 건봉사지 내에서 약 500년동안 자라왔던 나무로 한국전잴 중 766칸의 건봉사 사찰이 소실되었으나 유일하게 남아있는 불이문(1920년에 건립, 가원도 문화재자료 제 35호)을 지켜주었다고 전해지고 있다.고성군에서는 건봉사를 지켜주는 상징목으로 2008년12월12일 보호수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④고성 건봉사 능파교 보물 제 1336호, 소재지: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 38-1
건봉사 능파교는 대웅전 지역과 극락전 지역을 연결하는 홍교(虹橋;무지개 모양의 다리)로서, 규모도 크고 잘 보존되어 있다. 능파교를 처음 축조한 시기는 숙종 30년(1704년)부터 숙종 33년(1707년) 사이로, 이것은 숙종 34년(1708년)에 건립된 불이문 옆에 있는 능파교신창기비(凌坡橋新倉記碑)의 비문에 기록되어 있다. 그 후 능파교는 영조 21년(1745년)에 대홍수로 붕괴되어 영조 25년(1749년)에 중수하였고, 고종 17년(1880년)에 다시 무너져 그 석재를 대웅전의 석계(石階;돌계단)와 산영루(山暎樓) 수축(修築)에 이용되기도 하였다.
그 규모는 폭 3m, 길이 14.3m, 다리 중앙부의 높이가 5.4m이다. 다리의 중앙부분에 큰 아치(아치)를 틀고 그 좌우에는 장대석으로 축조하여 다리를 구성하였는데, 홍예는 하부지름이 7.8m이고 높이는 기석의 하단에서 4.5m이므로 실제 높이는 조금 더 높다.
능파교는 축조연대와 건립자 등을 알려주는 비석이 함께 있어 홍예교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며, 보존상태도 양호하고 우리나라 석교(石橋;돌다리)의 아름다운 조형미를 잘 보여주는 중요한 다리이다. 2003년 능파교 홍예틀과 접하는 호안석중 변형된 부분을 해체하여 원형을 찾아 보수하단 중 능파교가 훼손되어 문화재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2005년10월에 복원되었다.
⑤십바라밀석주
능파교를 건너면 대석단(大錫壇)이 보이고, 대석단의 중앙통로 좌우로 높이 158cm의 사각형 석주(石柱) 2기가 서 있다. 이 석주에는 십바라밀(十波羅密)의 도형이 음각되어 있어 이를 십바라밀석주라고 부른다. 이는 다른 절에서는 볼수 없는 것으로 비록 조성연대는 1920년이라 하지만, 시각적인 교육효과를 지닌 중요한 문화재이다. 십바라밀은 대승불교의 기본 수행법인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의 6바라밀에다, 이 여섯 가지를 보조하는 방편(方便), 원(願), 력(力), 지(知)의 4바라밀을 첨가하여 구성한 것이다. 십바라밀도는 이들 열까지 수행의 방법을 상징화하여 나타낸 것으로, 그 하나하나에 깊은 의미가 새겨져 있다.<좌에서 우로 설명>
반월(半月) 이는 지계바라밀을 나타낸다.
계율을 지켜 그릇됨과 악한 것을 방지하고 선행을 쌓아감이 마치 초생반월(初生半月)이 어둠을 감하고 밝음을 더욱 자라게 하는 것과 같이 해야 한다고하여 반달모양을 묘사한 것이다.
가위(剪刀) 이는 정진바라밀을 나타낸다.
반야(般若)의 지혜에 의거하여 수행하되 결코 물러나지 않음을 마치 가위로써 물건을 자름과 같이 나 아감만 있을 뿐 물러남이 없음(有進無退)을 보여주고 있다.
금강저(金剛杵) 이는 지혜바라밀을 나타낸다.
지혜는 능히 두터운 번뇌의 산을 파괴하여 불성(佛性)이라는 보배광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한다. 지혜로 써 피안에 도달하는 것은 마치 견고함(堅)과, 예리함(利)과 밝음(明)의 세 가지 특성을 함께 갖춘 금강 저가 거침없이 나아가는 것 같다고 하여 이러한 모양을 나타낸 것이다.
전후쌍정(前後雙井) 이는 원바라밀을 나타낸다.
위 아래로 하나씩의 우물을 둔 것은 귀하고 천함, 높고 낮음을 표시한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신분을 갖춘 사람일지라도 불교에 귀의하여 해탈하겠다는 원(願)을 세우면 반드시 피안에 이를 수 있게 된다. 이것을 나타내기 위해 아래 위로 우물을 배열한 것이다.
성중원월(星中圓月) 이는 지바라밀을 나타낸다.
삼계(三界)와 삼세(三世)의 세간적인 지식(遍知)을 세 개의 조그마한 원으로 표시하고 불교의 정지(正智) 를 바깥의 큰 원으로 표현하였다. 곧 정자를 갖추어서 반야의 지혜를 올바로 성취하는 것을 나타낸 것 이다.
원월(圓月) 이는 보시바라밀을 나타낸다.
곧 재물과 진리와 두려움을 없애주는 3종의 보시를 베풀되, 그들을 만족시킴이 마치 청정한 허공에 보 름달의 광명이 두루 비치는 것과 같이 해야한다고 하여 둥근 달을 묘사한 것이다.
신날(鞋經;혜경) 이는 인욕바라밀을 나타낸다.
해탈의 바라밀법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외부로부터의 모든 욕됨을 참고 나아가야만 가능하다. 마치 신 날이 돌부리 등 바깥의 모든 장애물로부터 발을 완전하게 보호하여 앞으로 나아감을 도우듯이, 인욕의 자세로 나아가면 어떠한 어려움이 부딪혀 와도 해탈의 저 언덕으로 나아가는 발을 보호하여 쉽게 도달 할 수 있음을 묘사한 것이다.
구름(雲) 이는 선정바라밀을 나타낸다.
마음을 한 곳에 모아 깊은 삼매(三昧)를 이루게 되면 마음속의 모든 열기와 번뇌가 소멸되어 청량을 얻 게 된다. 이 선열락(禪悅樂)이 마치 열기로 가득 찬 대지를 구름이 덮어서 시원함을 안겨 주는 것과 같 다고 하여 선정을 구름 모양으로 묘사한 것이다.
좌우쌍정(左右雙井) 이는 방편바라밀을 나타낸다.
물 한점 없는 사막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중생을 편안한 세계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갖가지 방편이 필요 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필요하 것은 물이다. 따라서 하나의 원천에서 좌우로 두 우물을 나누어 모든 중생들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듯이, 보살은 갖가지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하여 피안의 세계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고리두테(卓環二周) 이는 역바라밀을 나타낸다.
수행을 할 때 힘을 투입하면 집중력이 생겨서 올바른 깨달음을 이룰 수 있게 된다. 집 주위에 담장을 쌓고 주야로 잘 돌보면 재산을 보존할 수 있다는 것과 같다하여 고리두테의 형을 취한 것이다.
2.고성군 관내의 유적들
①고성 육송정 홍교 보물 제1337호 소재지: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해상리/탑현리
육송정 홍교는 건립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건봉사 능파교와 함께 영조 21년(1745년)의 대홍수로 붕괴되었던 것으로 볼 때 비슷한 시기(숙종 30년,1704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조 24년(1748년)에 편찬된 간성군읍지(杆成郡邑誌)에 이 홍교가 언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고 기록되어 있어 능파교 보다 더 오래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간성읍 해상리와 탑현리의 경계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하천의 폭이 12.3m정도 되는 곳에 석축을 쌓고 길이 10.6m의 다리를 놓았다. 홍예의 기초는 자연지형을 잘 활용하였는데, 동쪽은 암반을 그대로 이용하여 그 위에 홍예들과 비슷한 크기의 장대석으로 1단의 지대석을 두었다. 서쪽은 3단의 지대석을 쌓은 뒤, 그 위에 홍예를 올렸는데, 1단에 2개씩의 장대석을 이어서 만들었다. 서쪽 지대석의 높이는 1단이 묻혀 있어 정확히 알 수 없으나, 2단이 70cm, 3단이 60cm로 매우 거대하다. 홍예와 날개벽 사이의 교각 면석은 장대석을 사용하지 않고 자연적인 냇돌(川石)을 사용하였는데, 아래쪽에는 큰 돌을 위쪽에는 작은 돌을 사용하였다. 이 다리는 단칸 홍예교로 자연지형을 잘 이용하여 축조된 석교(石橋;돌다리)이다.
2003년 보수공사 시 홍예석을 제외한 면석과 호안석축 및 주변정비 공사를 실시하려 하였으나 사업추진 중 홍교의 변형 및 훼손이 심하다고 판단되어 문화재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홍예석을 해체하여 2006년 6월에 복원되었다.
②351고지 전투 전적비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관리번호:17-2-27, 관리자:육군 제5861부대
동해안의 요충지인 월비산(459고지), 208고지, 351고지의 피아공방전은 1951년 7월15일부터 1953년 7월18일까지 계속되었으며, 개전 이래 수십 차례에 걸쳐 국군 제 5,11,15,수도사단 용사들과 북한군 제 6,7,19사단은 월비산, 208고지, 351고지를 뺏고 뺏기기를 반복하다가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으로 인하여 피아 전투가 종식되었다.
이 비는 휴전되기까지 동해안의 요충지인 351고지를 확보하기 위해 목숨을 바쳐 참전한 장병들의 전공을 기리고,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쳐 산화하신 호국영령들의 명복을 빌며 후대에 그 위혼을 전하고자 1957년 7월15일 제 3군단에서 현내면 대진리에 건립•관리하여 오던 중 통일전망대가 설치되어 1988년12월26일 그날의 격전지가 직접 바라다 보이는 이곳에 이전하였다.
③천학정(天鶴亭) 소재지: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교암리 177번지
천학정(天鶴亭)은 1931년 한치응(韓致應)의 발기로 최순문(崔淳文), 김성운(金成運)과 함께 정면 2칸, 겹처마 팔작지붕의 단층으로 건립하였다. 동해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천혜의 기암괴석과 깍아지른 듯한 해안절벽 위에 건립되어 시원한 바람과 함께 경치가 아름답고 남쪽으로는 청간정(淸澗亭)과 마주보고 북으로는 능파대와 죽도가 가까이 있어 한층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본 정자는 1994년에 전체적인 보수로 말끔히 정비하였다. 1995년 5월 고성군수 장상(張相)
④고성 8경 천학정(天鶴亭) ◦ 고성군 토성면 교암리 소재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동해바다의 신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천혜의 기암괴석과 깍아지른 듯한 해안절벽 위에 건립되어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며, 남쪽으로 청간정과 백도를 마주보고 북쪽으로는 능파대(凌波臺)가 가까이 있어 한층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넘실거리는 푸른 파도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모든 근심걱정이 일시에 사라지고 드넓은 동해의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으며, 특히 천학정의 일출은 계절에 따라 가히 선경(仙境)이라 할만 하다.
⑤청간정(淸澗亭)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2호 소재지: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청간리
1560년(명종 15) 군수 최천이 크게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정자의 창건연대는 그보다 훨씬 이전으로 추정된다. 1881년(고종 18) 화재로 타버린 것을 1928년 면장 김용집(金容集)의 발의로 지금의 정자를 재건하였으나, 한국전쟁 당시 전화를 입어 다시 보수하였다.
청간정의 현판은 1953년 5월 이승만 대통령이 친필로 쓴 것이다. 1981년과 2012년 다시 고쳐 짓고 주변 환경도 정비하였다. 동해를 바라보고 설악산을 뒤로하고 자리잡은 이 정자는 입지선정의 우수성을 엿볼 수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바위 위에 얹혀진 돌로 된 초석과 목조의 몸체, 기와지붕이 주위의 아름다운 자연과 잘 어우러져 강원도 루(樓)형식 정자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⑥해파랑길이란?
‘해파랑길’은 동해안의 ‘떠오르는 해’와 푸르른 ‘동해바다’를 벗삼아 함께 걷는 길이란 뜻으로 부산 오륙도해맞이공원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를 잇는 약 770km의 광역탐방로입니다.
※일부지역의 경우 군사보호구역으로 야간통행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여행문의 및 안내
고성군청 관광안내 033-680-3361~3, 고성군청(해변안내) 033-680-3357, 통일전망대 033-682-0088
화진포관광안내소 033-680-3677, 봉포포관광안내소 033-680-3676, 사)한국의 길과 문화 02-6013-6611
코스안내(50코스) 통일안보공원-통일전망대 총거리 11.7km 소요시간 2시간40분
통일안보공원-3.7km-명파초교-1.2km-제진검문소-4.8km-DMZ박물관-2.0km-통일전망대
☆여행포인트: 통일안보공원에서 제진검문소를 지나 통일전망대를 가는 해파랑길의 마지막 코스다. 50코스는 짧지만 분단된 조국의 아픔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의미를 담는다. 특히 제진검문소부터 통일전망대까지는 걷기가 안될뿐 아니라(자가용이나 택시이용) 코스 시작점인 통일안보공원에 신고 후 허가를 받아야 차량을 이용해 통행이 가능하다.
코스안내(49코스) 통일안보공원-거진활어회센터 총거리 11.8km 소요시간 5시간30분
통일안보공원-0.8km-금강산콘도-1.3km-대진등대-4.9km-역사안보전시관-4.8km-거진활어회센터
☆여행포인트: 거진항을 출발하는 49코스는 거진등대의 해맞이공원을 거쳐 역사안보전시관, 화진포의 성(김일성 별장)을 둘러보며 아픈 역사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는 길이라 할 수 있다. 산과 호수, 바다를 모두 걷는 해파랑길 49코스는 강원도 고성지역의 지리적, 역사적 특성을 모두 느낄 수 있는 길이라고 할 만하다.
숙박 고성관광홈페이지 033-680-3361~3, 굿스테이 02-729-9600, 송지호 오토캠핑장 033-680-3164
⑦송지호 산소(O₂)길 현황 위치:고성군 죽왕면 오봉리 송지호 주변 일원, 길이: 약 5.2km(도보 2시간)
◦코스: 송지호 철새관광타워~왕곡마을, ◦중심테마: 옛 한옥마을 및 호수탐방
노선의 특징: 송지호 호수의 우수한 자연경관을 볼 수 있으며, 호수주변 황토길을 따라 왕곡마을까지 왕복코스로 이용할 수 있음. 송지호 철새관망타워를 이용하거나 왕곡마을의 옛마을 체험도 가능.
☆주변관광지: 송지호 호수,왕곡마을,철새관망타워,해양심층수 연구센터,송지호해변,송호정,송지호 오토캠핑장
설악산 자료는 다음편에 이어집니다.
'국내 여행기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의과 동기생 모임-1 (0) | 2014.10.27 |
---|---|
결혼 45주년 강원도 여행-5 (0) | 2014.03.25 |
결혼 45주년 강원도 여행-3 (0) | 2014.03.24 |
결혼 45주년 강원도 여행-2 (0) | 2014.03.24 |
결혼 45주년 강원도 여행-1 (0) | 2014.0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