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

동유럽 여행기 (9)-2

아름답지만~ 2015. 7. 3. 07:13

뢰머광장 한켠 바닥에 명패가 붙은 곳, 히틀러가 이곳에서 책을 태운 자리라고 한다. 우산을 쓰고 인증하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시청사의 모습도, 그 앞의 유스티티아도 프랑크푸르트 대성당(Kaiserdom St./ Bartholomǟus) 입구 오른쪽의 환전소 건물등이 오스트차일레(Ostzeile)와 뢰머광장(Rőmerberg)을 둘러싸고 있는 형태이다.

                                                    뢰머광장 한켠 바닥의 책을 태웠다는 자리는 독일어를 몰라도 그림으로 추정가능

()시청사(Rathaus; Rőmer): 원래 귀족의 저택이었던 3채를 1405년 프랑크푸르트 참의회가 구입해 시청사로 개조했고, 중앙의 한 채 이름을 따서 뢰머(Rőmer)라 명명되고, 프랑크푸르트의 시청사는 Rőmer로 불리운다. 2차 세계대전 때 손상되어 그 이후 원형대로 복구되었으며, 뢰머 2층에는 신성 로마제국의 대관식을 기념해 축하연을 베풀던 방인 카이저쟈르(황제의 넓은 방)9세기 샤를르마뉴 대제에서 1809년 프리드리히 2세까지 신성로마제국 황제 52명의 초상화가 걸렸다고 하나 일반인 전시는 하지않고 있다고 한다. 이 건물 발코니 쪽에는 세 개의 깃발 즉 유럽연합(EU), 독일 및 프랑크푸르트가 속한 주 헷센 주의 깃발이 걸려 있으며 발코니에서는 유명인들을 환영하는 행사가 있는데,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차범근이 분데스리선수시절(85~86) 환영받았다고 한다. 발코니 기둥에는 4명의 황제가 각기 다른 물건을 손에 쥐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대성당(Kaiserdom St, / Bartholomǟus): 95m에 이르는 붉은 사암으로 된 고딕양식으로 카롤링거 왕조의 루드비히 대제 때인 852년에 완공되어 왕실의 예배당 겸 주교구 성당으로 사용되었으며 13세기와 15세기 두 번에 걸쳐 개축이 되었다.

1356년에는 황제선출이 있었으며 1562년부터 1792년까지 230년간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대관식이 거행되어 카이저돔이라고 불리운다. 정식 명칭은 예수의 12사도 중 하나인 바르톨로메오가 주보 성인으로 1239년 성 바르톨로메오에게 헌정되어 성 바르톨로메오 대성당이다.

뢰머광장의 환전소 앞에는 미네르바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1893~1894년에 프리드리히 쉬어홀츠가 만든 동상으로 긴창을 들고있으며 지혜와 전쟁의 여신을 말한다고 한다. 뢰모광장과 이웃한 파울광장(Paulsplatz)에는 장크트파울교회(St. Paulskirch;바울교회)와 기념동상 통일기념비(아인하이츠덴크말;Einheitsdenkmal)가 있다.

통일기념비(Einheitsdenkmal-Unity Monument); 오벨리스크 형태의 19세기 독일의 여러 개의 주를 통합한 기념비로 라히프치히 전투(Battle of Leipzig) 90주년을 맞은 1903년에 개막식을 가졌다.(by카페;청주장로성가단)

장크트 파울교회(St. Paulskirch): 1789년부터 건축이 시작되었으나 나폴레옹 점령으로 일시 중단되었다가 1833년에야 신고전주의 형식으로 완공되었다. 1944년까지 루터교의 프랑크푸르트의 중심 교회로 이용하였으며, 현재의 건물은 세계 제2차대전으로 파괴된 것을 재건한 것이다. 건설 직후 프랑크푸르트 의회 회의장소로 이용되었고 18483월 혁명 후 그해 518일 이 곳에서 제 1회 독일국민회의가 열렸다. 58개 항목의 국민권리를 채택하여 헌법의 기초가 마련되었는데 이것이 100년뒤 독일연방기본법의 근간이 되었다. 즉 독일의 민주주의가 시작된 장소인 것이다. 독일 국기의 검정 빨강 노랑의 모습도 여기서 만들어 졌으며, 동서독 분단 당시에는 독일 통일이 실현되는 상징적인 장소였다. 현재는 교회의 기능보다는 전시나 행사의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평화상 수여, 괴테의 시상식이 이 곳에서 개최된다.(by카페 이서동빠 등)

성 파울교회 벽면에 붙여진 동상은 과거 포로수용소의 유태인의 학살을 잊지 말자는 뜻으로 세웠다고 하며, 동상 밑에는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포로수용소들의 명단이 열거되어 있다. 과거를 무시하고 치욕적인 과거를 묵살하려는 이웃 일본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교회 벽면에는 여러 인물들이 부조되어 있었다.

                                                      유태인 학살을 잊어서는 안됀다는 생각과 나치가 운영했던 강제수용소의 명단들

슈페너(Philip Jacob Spener; 1635~1705): 슈페너가 시무했던 교회로 그의 대표적 작품인 경건의 열망이 왼편에, 가운데는 교회와 사회개혁자 그는 프랑크푸르트 루터교의 선임목사였다. 이것은 한 손에는 복음을 들고, 다른 손에는 사회개혁의 깃발을 높이 치켜들었던 슈페너의 사역을 너무도 잘 집약한 말이다. 비록 이곳의 짧은 사역기간(1666~1668)이지만 복음과 사회개혁을 분리치 말아야 한다는 신념을 주창했다.

게오르그 아우구스트 진(Georg August Zinn; 1901. 5.27~1976. 3.27): 프랑크푸르트 출신으로 독일 사회민주당에서 정치활동을 했고, 헷센주의 총리를 역임(1950.12.14.~1969.10. 3)했다.

줌 스테인(Henrich Friedrich KarlReichs Freiherrn vom zum Stein; 1757.10.25.~1831. 6.29): 정치인이며 외무부장관을 역임

데오도르 호이스(Theodor Heuss; 1884. 1.31~1963.12.12.): 1948년 이후 정치가로 처음 FDP회장, 정치학자, 언론인과 독일 연방 공화국 초대 대통령(1949. 9.13~1959. 9.12)이었고 후임은 하인리히 뤼브케였다. 브렉켄하임(Brackenheim)에서 태어나고 슈트트가르트(Stuttgart)에서 사망했으며, 정당활동은 자유민주주의당에서 했으며 종교는 독일개신교이다.

죤 에프 케네디(John Fitz Gerald Kennedy; 1917. 5.29~1963.11.22.): 매사츄세츠 브루클린에서 태어났으며 텍사스의 달러스에서 자동차로 퍼레이드를 하던 중 오스왈드의 총격에 의해 사망하였다. 미국의 35번 째(44) 대통령이다. 2년의 짧은 재임기간 중 미국의 자유주의에 대한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다.

2차대전 중에는 해군장교로 근무했으며, 일본군의 피습으로 타고있던 배가 침몰할 때 위험을 무릎쓰고 동료를 구해 영웅이 되었으며, 하원의원(1947~1953)과 상원의원(1953~1960)을 역임하고 1960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로마카톨릭의 신자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요한나 키르치네르(Johanna Kirchiner; 1889. 4.24~1944. 6. 9):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서 출생해 나치에 저항하였으며 체포되어 처형당한 인물. 그의 상패가 장크트 파울교회 외관에 걸려 있다.

블로그에서 중앙역이 걸어서 15분 거리라는데 버스로 오니 곧 타우누스거리(Taunsstraße)의 코너에서 하차하고 한국 사람이 안내한 곳으로 들어서니 한국인이 경영하는 김 선물센터이다. 아내가 몇 년전 들렸던 곳이라고 한다. 들어올 때는 안 산다고 들어와 이것저것 나름대로 선물 보따리를 모두는 챙겨고 한시간 여를 소비한 후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가서 휴대용 가방과 부칠 가방의 물품들을 분류하여 챙긴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Frankfurt Hbf(tief): 독일에서 이용객이 가장 많은 역이며, 유럽 각지로 향하는 열차편이 모이는 기점이기도 하다. 지상에 25선의 두단식 승강장을 가지고 있는 터미널역이다. 지하에는 각각 프랑크푸르트 U반과 라인-마인 S반을 위한 터널이 있으며, 각각 24(U반 역의 1선은 여객 미취급)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 역사 앞에는전차 노선의 역사가 세워져 있다. 승강장 번호는 지상역이 1에서 24까지, 지하 S반역이 101에서 104까지 매겨져 있다. (by 백과사전)

한 사람이 짐을 부치는 과정에 예매가 잘 못되어 함께 갈 수 없다고 한다. 429일의 비행기 표라고 하던가? 이때는 이미 함께했던 가이드 이경아는 비행기의 자리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가버린 뒤이고 원창범 사장은 얼굴색이 누렇게 변하는 듯하다. 떨어진 승객과 원사장네는 남고 비행기에 올라 조마조마한 시간이 흐르며 마일리지가 쌓인 몇 사람이 호사스런 자리인 비지네스칸으로 배정된 속에서 비행기 문이 닿치기 전 떨어졌던 일행이 탑승한다. 우리들 함께했던 모두는 주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박수로서 그들을 맞이해 함께 돌아올 수 있어서 여간 다행스럽운게 아니었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비행기가 이륙해 고도가 안정되자 가볍게 물수건과 과자 그리고 저녁식사가 나온다. 위스키로 잠을 청하고 7시간 정도가 지나 아침을 주었다. 그리고 다시 2시간여를 날아 인천국제공항에 기체를 사뿐히 내려 앉친다. 오랫동안 함께했던 일행들은 각자의 집을 향해 몇몇은 서울로, 몇몇은 수원으로 각자가 뿔뿔히 헤어졌다.

4. 에필로그;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난 다음의 귀로가 오점으로 남는다면 남을 수 있는 여행, 여행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었고 무엇을 남기고 왔을까? 간단히 기억을 더듬어 사진만 정리해도 될 것을 성격 때문에 이리저리 자료를 찾아 헤매고, 잘못된 자료는 수정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마무리 지은 두 달반의 정열이 너무도 지리했던 기간이 되어 버렸다.

아주 유명하다는 곳을 오랜 비행시간에 보상이라도 해 주려는 듯 욕심껏 지정했던건 한국인 특유의 욕심스러움일 것이다. 우리의 여행 스타일이 다른 나라의 관광객과 어울리지 못한다는게 바로 이런 스타일일 것이다. 자료를 정리하면서 아차 여기도 다녀왔으면 하는 아쉬운 곳들이 너무도 많았기에 더욱 아쉬운 여행이라는 긴 여운이 남는 건 나 혼자의 생각이었을까 되새겨 보고 싶다. 모두 함께하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랜 기다림, 구석구석 뒤져서 가급적 다 기록하려는 욕심이 너무 늦게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해외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두산 여행-2  (0) 2015.09.01
백두산 여행-1  (0) 2015.09.01
동유럽 여행기 (9)-1  (0) 2015.07.02
동유럽 여행기 (8)-2  (0) 2015.07.02
동유럽 여행기 (8)-1  (0) 2015.07.02